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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의 투표, 한-미의 소름 돋는 평행이론

등록 2012-07-11 20:43 수정 2020-05-03 04:26
<b>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b><br>토머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1만6천원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토머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1만6천원

가난한 사람들은 왜 선거 때 부자들을 위해 투표할까?

미국의 진보적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토머스 프랭크가 던진 이 질문은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정치 성향을 ‘보수’라고 답하고 총선 때 새누리당에 투표한 비율은 스스로도 경제적 ‘하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중·상층보다 훨씬 높았다.

시작은 낙태 반대 운동

1990년대 이전까지 진보세력과 민주당의 표밭이던 미국 대륙 중앙부의 캔자스주는 지금 공화당 보수우파의 아성이 됐다.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질문이 바로 의 원제(What’s The Matter With Kansas)다. 미국 내륙 주들은 상대적 빈곤 지역이다. 왜 그 지역 다수 유권자들이 감세와 복지 축소, 민영화, 규제완화 등으로 빈익빈 부익부를 조장하는 신자유주의 정책 신봉자들 집단인 공화당을 지지하는 걸까? 그들은 왜 엉뚱한 표적에 분노를 터뜨릴까?

그것은 중·하층의 어려운 경제 현실을 은폐하고 그들이 자신의 계급적 실체를 배반하는 계급적 정체성, 곧 전도된 계급의식을 갖게 만드는 데 성공한 공화당의 ‘문화전쟁’ 탓이라고 지은이는 분석한다. 그리고 민주당의 전략 실패도 빠뜨릴 수 없다.

책을 보면, 본디 민주당 표밭이던 캔자스 인구밀집 지역의 중·하층 블루칼라들이 공화당 지지로 돌아서기 시작한 계기는 낙태 반대 운동이었다. 공화당 우파가 끌어들인 보수 기독교 우파는 낙태 반대, 진화론 교육 반대, 동성애 반대, 줄기세포 연구 반대, 생태주의와 수돗물 불소화 반대 등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쳤다. 이는 중·하층의 경제적 곤궁이라는 현실을 그들 뇌리에서 지우고 미국 사회의 쟁점을 도덕·윤리 논란으로 몰아갔다. 러시 림보 같은 극우 방송인과 등 네오콘 선전지들뿐만 아니라 등 주류 신문·방송들도 가세했다.

방직공과 제철소 직공, 미용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채식하며 와인과 ‘라테 커피’를 마시고 새로운 패션을 선도하는 명문대 출신의 비판적 지식계층을 잘난 체하는 혐오스러운 자유주의자(리버럴)로 인식하고 계급의 적으로 오인하게 된 것도 이 문화전쟁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을 맥주나 마시고 총기를 소지하며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애국적이고 소박하고 선한 미국인으로 규정했다. 우파들이 주입한 전형적인 공화당원 마인드다.

좌파에게 배운 수법으로 벌이는 ‘성전’

자신들을 박해당하는 희생양으로 설정한 이 보수반동 전사들은 좌파들로부터 배운 수법, 곧 ‘경제를 뺀 좌파 세계관’으로 무장한 채 ‘성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리버럴의 비판적 리얼리즘을 무신론이나 자유주의적 편견으로 매도하는 반지성주의가 팽배했다. 걸핏하면 ‘종북’과 ‘빨갱이’를 들고나오는 우리 사회 보수반동의 전략도 이와 흡사하다. 중요한 것은, 우파들이 권력을 탈환하려고 불철주야 새로운 전략·전술 개발에 돈을 쏟아붓고 현장으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이제 다수 노동자들은 자신의 부를 빼앗아간 자본가와 의사·변호사·목사를 우군으로 여긴다. 대기업은 국립공원을 경매에 부치고, 고속도로·전철 민자화를 추진하며, 수돗물 등 공공사업 민영화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그들의 탐욕을 제어하던 ‘뉴딜 체제’는 거의 해체됐다. 우리 사회도 이를 모방하나 싶게 닮아가고 있다.

공화당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휩쓴 미국 중서부 내륙은 지금 민주당과 리버럴만 몰락한 게 아니라 지역경제와 사회가 급속도로 망가지고 일부에선 공동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한승동 기자 한겨레 문화부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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