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문인 양 명쾌히 내뱉어진 전시 제목 ‘이것이 대중미술이다’ 안에는 상충하는 개념 둘이 나란히 붙어 있다. 대중과 미술 사이의 거리감은 불화로 칭해도 될 만큼 소원하며 차라리 무관한 관계에 가깝다. 문제의 두 단어를 결합한 타이틀을 쓴 배경에 대중과 미술의 오랜 불화를 조망하겠다는 기획 의지가 담긴 것 같진 않다. 아마 대중적 전시장에서 ‘대중미술’이란 기획 제목이 지닌 소구력 때문에 썼을 것이다. 괜한 트집이 아니라 전시가 열린 서울 세종문화회관은 전업 미술인들이 잘 찾지 않는 전시장이다. 목 좋은 곳에 있지만, 연중 이곳에서 개최되는 전시의 다수가 대관전이고 화단의 흐름을 짚는 기획전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으며 가족 단위 방문이 어울리는 블록버스터 미술전의 거점이라는 인상 때문일 것이다.
<font color="#00847C">팝아트 작가는 팝아티스트이길 거부한다</font>
주류 미술(인)과 대중의 인식 사이에는 이렇게 넓은 강이 흐른다. 그런 사정 속에도 언론인과 보통 사람마저 잘 아는 유일한 미술이 팝아트다. 사정이 이 정도면 팝아트를 대중미술로 칭한들 부족함이 없다. ‘이것이 대중미술이다’의 출품작도 자칭 타칭 팝 작가로 채워진 사정이다. 인구에 회자되는 높은 비율을 고려해도 팝아트를 대하는 대중과 주류 미술계 사이에는 또다시 큰 강물이 놓인다. 팝아트가 국내 화단에서 급부상한 시기는 대략 2005년 전후로, 이동기가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크게 열고(2003년) 낸시랭의 이름이 알음알음 방송을 통해 알려졌으며, ‘팝아트’라는 용어가 삽입된 그룹전 다수가 이 무렵 열렸다. 조선일보가 자사 창간을 기념해 만든 대학생 아트페어 ‘아시아프’(2008년부터 현재)에서 꾸준히 출품되는 작업 성향도 단연 팝아트다. 그렇지만 주류 화단이 팝아트를 평가하는 관점은 여전히 완고해서, 이미 코리안 팝의 고전으로 대우받는 이동기나 해외시장의 성과로 뒤늦게 국내에서 대접받는 (현란한 색채 감각과 대중 아이콘의 도입으로 곧잘 팝아트로 호칭되는) 김동유와 홍경택 정도다. 그 외의 팝아트는 화단에서 비주류에 속한다. 캐릭터를 강조하는 팝아트의 대중성에 대한 집단 거부감도 있는 것 같고, 전시장 속 작품이 아닌 방송에서 재현된 언어와 몸으로 대중적 존재감을 확인하는 낸시랭은 ‘자기가 속한 부류일 수 없다’는 막연한 완고함도 작용하는 것 같다. 해서 어딜 봐도 팝아트에 속하는 어떤 작가는 자신이 팝아티스트로 호칭되는 걸 단호히 거부한다(그 작가는 이번 전시 출품 제안도 거절했다고 들었다).
‘이것이 대중미술이다’는 개별 작품을 하나하나 품평하기에 어울리는 구성은 아니다. 3개의 섹션으로 구성돼 팝아트를 설명적으로 제시한다. 그것이 미술관이 하는 역할인 건 맞는데, 구시대적 전시 공간의 고집과 이미 다른 방향에서 활로를 찾는 미술의 신경향이 충돌한다. 섹션 셋과 전시 동선은 팝아트가 지금 놓인 자리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해외 팝아티스트의 소품 몇 점을 ‘K-POP & 해외 팝아트’ 섹션에 비치한 건 구색 맞추기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고 도리어 빈곤한 기획을 부각시킨다. 대중의 기대치를 고려해야 하는 전시장의 성격상 하나의 방점만 강조하는 문제적 전시를 기대할 순 없을 테다. 하지만 비평적으로 논해볼 만한 부분을 이 전시에서 찾는다면, ‘콜라보레이션 아트’ 섹션이다. 상업자본이 상품의 격조를 예술(가)의 도안과 이름값에 기대 끌어올리려는 전략인데, 현대미술 전개도의 한 방향이 콜라보레이션에 가담하는 건 국내외를 통틀어 공통된 현상이다. 콜라보레이션 아트에 성공만 한다면 글자 그대로 가장 시의성 있는 대중미술이 될 게다. 이 때문에 음반 겉표지와 화장품 로고 장식에 쓰인 마리킴의 캐릭터가 대형 프린트로 출력돼 다른 작가들의 그림 여럿과 나란히 걸린 모습은 어색하다. 이번 전시가 방점을 두진 않았지만 콜라보레이션 아트나 항간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유일한 미술인 낸시랭의 활약상은 현대미술과 그 창작자가 직면한 체질 변화의 어떤 양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font color="#00847C">변화 압박을 보여주는 어떤 유쾌한 사건</font>
전시 방식, 작가의 존재감 등 변화는 현대미술 전체가 당면한 과제는 아닐지라도 하나의 부인하기 힘든 변화상인 건 틀림없다. 흔히 2000년대 네오팝의 국제 스타 무라카미 다카시는 보수적 명품회사 루이뷔통의 고전적인 로고 디자인을 단숨에 뒤집어 가장 성공적인 콜라보레이션 아트의 선례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2010년 추수감사절 퍼레이드에서 도무지 저명 미술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로 분장한 차림으로 대중 앞에 서기도 했다. 모든 미술가가 각성하고 이와 같은 변신을 감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비평적 화두로만 떠올리는 미술의 동시대성이 미술계의 이너서클 외부의 변화 압박에 직면해 있는 현주소를 보여주는 유쾌한 사건처럼 보였다. ‘이것이 대중미술이다’는 아카데믹한 규율을 유지하는 전시 공간과 이미 미술의 논리를 벗어나 멀리 달아나는 어떤 미술 사이의 만남인 만큼 첫인상의 이율배반성은 높다. 그런데 이런 시각적 부조화마저 관객 없는 초대형 주류 미술 행사가 과도하게 많은 한국 화단의 반대편 시각예술의 징후로 읽어볼 만했다. 물론 아직까지 그것은 일각의 시도지만.
글·사진 반이정 미술평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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