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이 6월21일 개봉한다. 영화는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자료들을 인지적으로 배치해 통찰을 끌어낸다. 참사 현장을 담은 동영상과 법정 자료, 여기에 5명의 인물을 인터뷰한 장면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관객에게 현장과 법정을 경험시키며 배심원이 돼줄 것을 요청한다. 숯덩이가 된 진실을 한겹 한겹 들추며, 역사적 재심 청구를 요청하는 영화 을 만든 두 명의 감독을 만났다.
경찰의 진술을 통해 드러난 진실성소수자 문제를 주로 다뤄온 ‘연분홍치마’ 소속이다. 용산 참사 다큐멘터리를 만든 계기는.
홍지유(이하 홍) 연분홍치마는 성적소수 문화 환경을 위한 활동가 모임으로 5명의 활동가가 9년째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은 우리 활동의 일부일 뿐이다. 용산 참사를 다룬 영화를 만든 건 기존 고민의 연속선상에 있다.
김일란(이하 김) 2009년 1월 용산 참사 이후 4월에 카페 ‘레아’에 ‘촛불방송국’이 만들어졌다. 간간이 들르다 6월부터 상주하다시피 했다. 레아는 문화예술인들의 네트워크가 이루어지는 거점이었다. 영화는 우리 힘으로 만든 게 아니라,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를 비롯한 수많은 활동가와 함께 만든 것이다.
인터넷 방송 ‘칼라TV’나 ‘사자후TV’ 화면, 경찰 채증 영상까지 들어 있는데 어떻게 받은 것인가.
김 인터넷 방송은 아무 조건 없이 선뜻 주셨다. 경찰 채증 영상은 우리가 공판 과정을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었다.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봐서 이슈가 되면, 채증 영상 쓴 것을 당국이 문제 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법 조항이 없고, 이미 끝난 사건이라 재판에 영향을 주지도 않기 때문에 처벌이 쉽진 않다고 한다. 싸움이 걸려오면, 공공선을 위해 왜 재판 자료가 공개되면 안 되는지, 공개재판의 녹음이 왜 불허되는지 법원의 권위주의에 맞서 싸울 생각이다.
유족의 처지가 아닌, 경찰의 시각에서 냉철하게 재구성하겠다고 방향을 잡은 이유는.
홍 사건 직후 증거는 현장 동영상뿐이었다. 그러나 공판을 보며 사회가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루고 해석하는지를 포함한 그 전체가 용산 참사란 생각이 들었다. 화염병이 화재의 원인이라지만, 경찰특공대 투입이 화염병 등장 2시간 전에 결정됐고, 현장에 투입된 이들은 건물 구조나 인화성 물질의 존재도 몰랐다. 검찰이 2심에 가서야 공개한 초기 수사기록에는 유증기로 눈이 따가웠다는 경찰 쪽 진술도 많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조차 원인 불상 화재라고 했다. 화염병이 원인인지 단정할 수 없다는 거다. 철거민들에 의해 경찰이 죽었음을 검사가 입증해야 하므로 법적 논리로는 당연히 무죄다. 그런데 유죄가 선고됐다. 법의 논리가 정치 논리와 따로 있지 않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김 분노에 지치지 않고, 해소하지도 않고, 분노를 지속하려면 냉철함이 필요했다. 사건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얼마나 다급했는지 알 수 있다. 2008년 촛불집회를 겪은 정부는 촛불의 재연이 두려웠지만, 동시에 폭력·비폭력, 불법·합법의 논리에 촛불시민들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약한 고리를 알아차렸다. 주민인 그들을 ‘전철련’(전국철거민연합)으로, ‘도심 테러리스트’로 호명해 촛불시민들과 분리시키고자 무리한 은폐·조작이 필요했다. 경찰의 법정 진술을 통해 그 허구성을 밝히고 싶었다.
엔딩 크레디트에 희망이 숨어 있다법정 장면에서 중요한 문답이 오간다. 변호사는 경찰특공대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 지시를 따라야 했느냐고 묻고, 경찰서장에게 경찰이 물러나고 협상을 하는 게 맞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둘 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겐 주권자인 국민의 정체성은 없고, 경찰로서 상명하복의 임무만 있다. “다 죽어”란 말이 현장에선 적개심에 찬 말로 들렸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그게 아니었단 증언도 인상적이다. 철거민과 말단 경찰이 서로를 적개심에 찬 존재로 인식하게끔 생지옥에 몰아넣은 것이다.
홍 마지막에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느냔 질문에, 순경은 잠깐의 침묵 뒤 불법 폭력시위가 원인이라고 답한다. 그런 공백 속에 진실이 숨어 있다.
영화는 사건과 법정에 주목하지만, 다 보고 나면 맥거핀(중요하지 않은 것을 중요한 것처럼 위장해 관객의 주의를 끄는 일종의 트릭)이었단 생각이 든다. 국가가 무리한 요구를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핵심이라는 박성훈씨의 말, 그리고 취임 직후 무관용 원칙에서 쌍용차 사태까지 이어진 ‘몹쓸 교훈’을 짚어준 박진씨의 말이 본질 아닌가. 하지만 용산이 ‘몹쓸 교훈’이기만 했던 건 아니다. 레아를 지키며 1년을 싸웠기에, 이후 두리반이나 희망버스 등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거다. 영화는 지독히 절망적인데, 영화를 만든 연대 주체와 834명의 배급위원 명단이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에 희망이 숨어 있다. 이게 반전이다.
김 우리는 이 영화가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기를 원한다. 사건의 법적 판단은 끝났지만, 이 영화를 많이 보고 국정조사를 비롯한 전면적인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누가 이 죽음을 위로하고 상처를 치유할 것인가.
글 황진미 영화평론가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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