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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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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불러보았네

컴필레이션 음반 <서울 서울 서울>이 담은 27곡의 노래를 들으며 느낀
인구 1천만 도시의 팍팍함, 그리고 공간에 대한 고찰
등록 2012-04-20 16:25 수정 2020-05-03 04:26

2010년 3월 서울 청계천문화관에서 열린 ‘서울을 노래하다-서울대중가요’ 전시회에 따르면 서울을 다룬 노래는 1141곡에 달한다. 이 리스트는 ‘최초의 서울 노래’로 간주되곤 하는 1926년의 에서부터 2010년에 슈퍼주니어와 소녀시대가 발표한 까지를 포괄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식민지, 근대화, 산업화, 빈부 격차, 사랑, 이별, 이상, 현실을 노래하는 이 목록에 27곡이 더 끼게 되었다. 인디 레이블인 비트볼에서 기획한 두 장짜리 컴필레이션 (Seoul Seoul Seoul)이 발매된 덕이다. 음반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을 보면 ‘역대급’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이제 막 성가를 올리기 시작한 신인부터 인디 팬들에게 익숙한 중견까지 고루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 인디신의 지형도를 얼추 그릴 수 있는 음반이라 해도 별 무리가 없다.

인디 뮤지션들이 서울을 노래한 27곡을 한데 모은 음반 <서울 서울 서울>이 나왔다. 음반에서 떠나고 싶어 하는 정서를 노래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인디 뮤지션들이 서울을 노래한 27곡을 한데 모은 음반 <서울 서울 서울>이 나왔다. 음반에서 떠나고 싶어 하는 정서를 노래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정서

수록곡들은 다양하고 개성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타이틀 격으로 홍보되는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은 둔중한 베이스가 포인트를 주는 가운데 구성진 멜로디가 끼어든다. 9와 숫자들의 는 낭만적이면서도 헛헛한 여운을 남긴다. 얼마 전 해체한 서울전자음악단의 이나 하헌진의 은 ‘서울의 블루스’를 각자의 손끝에서 구현한다. 일렉트로닉 뮤지션인 이디오테잎과 트램폴린은 과 를 통해 화사하면서도 날카로운 음악을 들려준다. 이진욱의 처럼 고탄 프로젝트를 연상시키는 달달한 일렉트로닉 탱고도 있다. 오!부라더스의 는 밴드가 늘 그래왔듯 1950년대 로큰롤을 ‘뻔뻔하게’ 재현한다. 로다운30의 팬들이라면 에서 밴드가 내놓은 색다른 소리에 놀랄 수도 있다. 선명한 분위기 전환이 인상적인 아침의 도 그냥 넘기기 어렵다. 수록곡들이 균일한 수준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그건 이런 종류의 기획에서는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음악의 질과 양 모두에서 이만한 규모의 컴필레이션 음반은 앞으로도 드물 것이다. 물론 이건 틀릴수록 좋은 예측이다.

음반이 드러내는 서울에 대한 시각과 태도는 음악과는 다른 맥락에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가사가 없는 음악을 제한다면 음반의 수록곡들은 대부분 서울을 익숙하고 상식적인 태도로 대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에서 누군가 ‘그 좋은 데서 뭐하러 올라놨냐’고 묻자 화자는 ‘돈 좀 벌려고 그랬’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벌어도 벌어도 모자라’라고 푸념하고, 마지막에는 ‘내가 보고(가고) 싶은 곳은 이젠 서울 아니오’라 노래한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곡 제목은 다. 서울전자음악단 역시 ‘옛날 모습들 어디로 갔나’라며 한탄한다. 오!부라더스의 는 이시스터즈의 1962년 히트곡 에 대한 답가인 양 ‘서울의 여자들 너무합니다’라고 능청을 떤다. 플라스틱피플은 에서 ‘다리 너머 서울에는 금지된 무언가’가 있다고 읊조린다.

음반 <서울 서울 서울>

음반 <서울 서울 서울>

이 태도와 정서는 ‘서울’이라는 구체적 공간보다는 ‘도시’라는 추상적 공간에 대한 통념을 다소 편안하게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구체적 지명을 언급하는 순간에도 그 지명들은 다른 도시의 다른 지명과 무난히 호환 가능한 것처럼 들린다. 그게 틀렸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유효한 통찰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앞서 말했듯 서울을 다룬 노래는 1141곡이다!).

2009년 기준으로 1㎢당 1만7219명이 사는 인구 1천만 명의 ‘메가시티’에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나 사라진 것에 대한 향수, 혹은 너무한 아가씨들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코스트코와 멀티플렉스, 나이트클럽에 매혹된 영혼은 어쩌면 싸이의 나 유브이의 처럼 생각하지는 않을까? 서울이 삶의 터전이며 서울이 아니고서는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떨까? 좀더 정직하게 말해, 우리는 서울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벗어나지 않는 걸까? 만약 당신이 서울에서 나갈 생각이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이라는 공간이 야기하는 ‘효과’에 대해 이야기할 만한 게 정말 더는 없을까?

공간 역시 인간을 규정한다면

‘디자인 서울’을 비판하는 김목인의 나 낙원상가를 매개로 ‘음악하는 여자애들’에 대한 ‘음악하는 사내놈들’의 시선을 드러내는 바비빌의 , 모임 별의 같은 순간들이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거기서 나온다. 인간이 장소를 바꾸는 것만큼이나 장소도 인간의 활동과 생각을 규정한다. 물론 그 ‘활동’에는 음악도 포함된다. 우리는 그 점을 더 생각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우연찮게도 의 가사집에는 ‘당신에게 서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다음에 ‘무엇인가 서울에게 당신은’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내게는 그게 그저 말장난 같지만은 않다.

최민우 음악웹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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