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헌군주제인 21세기 대한민국. 그리고 대한민국 왕제와 북한 여성 고위 장교의 정략결혼. 소재만 본다면 문화방송 수·목 드라마 는 허무맹랑한 판타지다. 역사와 현실에 난데없이 퓨전을 들이미는 트렌드에 남남북녀의 오랜 신화를 덧입힌 드라마로 넘겨짚을 만도 하다. 하지만 6회까지 방영한 는 전개를 거듭하며 예상을 뛰어넘었다.
문화방송 드라마 <더킹 투하츠>는 입헌군주제라는 가상현실에서 분단된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를 적나라하게 그린다. 왕제라는 판타지로 평화의 가능성을 재는 드라마다. 김종학프로덕션 제공
이것은 현실의 한반도다
남과 북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정체성과 캐릭터를 만드는 현실적 장치로 사용되며, 입헌군주제라는 설정은 어떤 권력이 세상의 왕인가를 묻는 거대 서사의 재료로 활용된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정치권력은 총리에게 있는 입헌군주제하에서 ‘허수아비이며 마네킹’일지도 모를 왕이 고민하는 것은 전쟁 없는 한반도의 평화다. 그리고 두 주인공인 남한의 왕제 이재하(이승기)와 북한 여성 고위 장교 김항아(하지원)는 정략결혼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략적 동지 관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올림픽 남북한 동반 출전과 흡사한 형태인 세계장교대회(WOC) 동반 출전이라는 한시적 동지 관계로 만났다. 하지만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군사적인 훈련이기에 양쪽 모두에게 언제나 서로를 겨눌 수 있는 총이 준비돼 있다. 적도 아니지만 동지도 아닌, 혹은 둘 다인 이들이 접한 상황은 명백히 휴전 중인 한반도에 대한 은유다.
의 초반을 이끌어가는 동력 역시 그 대치의 긴장감에서 나왔다. 아무리 같은 편으로 함께 있어도 이재하에게 김항아는 ‘빨갱이’이고, 김항아에게 이재하는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즉시 사살해야 할 ‘인민의 적’이다. 그러니 일단은 화합을 목적으로 삼는 WOC 훈련이 극단의 상황에서도 이들이 동지로 남을 수 있는가를 실험하는 형태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안에서 서로를 한 번도 동지로 바라본 적 없는 남과 북의 청춘은 지속적인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사소하게는 눈과 귀를 홀리는 소녀시대로부터, 서로에게 느끼는 인간적 감정들, 실험의 일환이었던 전쟁 상황에서까지 그들은 지금까지 지켜온 자기 안의 이념과 정체성을 지켜낼 것을 요구받는다. 코미디와 정극의 널을 뛰며 오가는 편집 아래 가려졌지만, 이들의 고민은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이재하가 소녀시대를 좋아하게 된 북한군 리강석(정만식)을 놀리려다 멱살을 잡히는 장면은 4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남한의 왕제가 보기에 가벼운 놀림거리였지만 리강석에게는 남조선의 썩어빠진 문화에 자신에게 목숨보다 중요한 공화국의 이념을 넘길 뻔한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북한군이 남한의 왕제를 위협하자 직전까지 동지였던 이들은 모두 총을 빼들고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대치 상황을 만든다. 그 순간 의 세계는 여지없이 현실의 한반도가 된다.
이 상황 위에 ‘클럽 엠’(CLUB M)이라는 이름의 글로벌 무기상을 거대악으로 설정하고, 한반도 상황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지속적인 개입을 보여준 것은 가 남북관계를 단순히 로맨스를 위한 미끼로만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환기시켜준다. 가상이라고 해도 남북은 여전히 복잡한 세계정세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 클럽 엠은 “한국은 원래 분열이 취미”라며 조롱하고, 그 수장인 봉구(윤제문)는 돈이라는 권력이 만드는 악몽과도 같은 마술의 힘을 빌려 더 큰 분열을 꿈꾼다. 이 거대한 세계 속에서 모든 것을 뛰어넘는 사랑까지 해야 하니, 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은 드라마다. 이 많은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맞춰가거나 인물 비중의 완급을 조절하는 데서는 어설픈 면이 있지만, 한반도 현실에서 눈 돌리지 않고 그 긴장에 힘입어 달려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 막 4분의 1 지점을 지난 의 질주는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다.
<더킹 투하츠>. 김종학프로덕션 제공
가 꾸는 꿈
1회의 첫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보면 가 꾸는 꿈이 보인다. 무너지는 독일 베를린장벽을 보며 이 땅의 누군들 휴전선을 지우는 장면을 상상해보지 않았겠는가. 는 남한과 북한에서 뛰고 있는 두 개의 심장이 박자를 맞추는 순간을 꿈꾼다. 물론 개인의 사랑으로 남북 화합까지 바라는 의 이상은 남북의 평화, 전쟁 없는 한반도를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왕의 그것만큼이나 지나치게 순수한 구석이 있다. 남과 북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일이 인간 사이 장벽을 허무는 것으로 가능하다는 발상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차이를 무시해서 미안”하다는 화해의 제스처만으로는 총을 내려놓을 수 없다는 것을, 결국 전쟁 실험에서 항아를 쏘아버린 재하가 증명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평화를 꿈꾸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세상은 또 어떠할지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는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현실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될 것이다. 결국 벽을 허무는 일은 누군가 벽돌 한 장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하지 않겠는가.
윤이나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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