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라는 단어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과거 현장이라 하면 ‘위장취업’ 같은 불법적 방식으로 진입해야 하는 공장과 같은 곳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긴장이란 위장취업의 불법성보다 현장에서 무언가를 도모하고, 그리하여 어떤 충돌이 일어나는 한복판에 있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충돌의 현장은 도처에서 나타났다. 노동자의 파업과 투쟁만이 아니라, 재개발을 앞둔 동네에서, 원전 폐기물을 묻을 지역에서, 급기야는 광우병 쇠고기 문제로 서울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뒤덮이기까지 했다.
부단히 도덕적 물음을 던지는 이들
현장의 확대란 곧 어떤 공동체가 처한 위기의 양상이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의미이며, 그 위기의 해결책을 시민들 자신이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요구하는 대상과 그 범위의 변화는 모호하기만 한 ‘공공성’이라는 개념을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외환위기 이후 충돌이 벌어지는 현장은 노동의 공간만이 아닌 일상의 공간으로 확대됐다. 광우병 공포, 축산의 산업화가 낳은 구제역의 잔혹함, 토건자본의 이익을 위해 지역민들의 갈등을 촉발한 4대강 사업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은 더 이상 ‘쟁취’가 아닌 ‘탈출’을 요구한다. 철학자 파올로 비르노의 지적처럼, 아마도 이는 “다양한 집단과 공동체들이 동시에 겪는 위험과 공포로부터의 탈출”에 대한 요구일 것이다. 요컨대 이런 위험과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요구에 대한 응답이 오늘날의 ‘공공성’이자, 그 방안을 논하는 시공간이 바로 ‘공론장’이 될 것이다.
공공성과 공론장의 이런 변화는 전통적 저널리즘의 취재 방식과 뉴스 가치에 상당한 변화를 몰고 왔다. 출입처와 데스크를 오가며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한 주류 저널리즘은 도처에서 불거지는 현장의 확산 속도를 따라가기엔 너무 경직돼버렸다. 1980년대 말부터 노동현장에 상주하며 영상운동을 해온 이들도 더 많은 카메라와 기동력을 요구받으며 변화에 직면했다. 일상 현장으로 산개된 이들 현장 카메라를 가리켜 ‘당사자 저널리즘’(Native Journalism)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이슈가 된 현장에 몇 차례 들른 뒤 회사로 복귀하는 주류 저널리즘과 다르며, 그렇다고 충돌의 현장에서 휴대전화로 증거자료를 남기는 일반인들과도 다르다.
이런 모호한 정체성과 참여 방식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고정된 직업이나 경직된 어떤 제도와도 관계를 맺지 않는, 그리하여 전문화라는 고립된 영역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사려 깊은 구성원의 한 명으로서 부단히 사회에 도덕적 물음을 던지는 이들. 바로 이런 이들을 에드워드 사이드는 ‘아마추어’라고 불렀다. 언론의 기본적인 공적 기능조차 상실된 지금 한국에서 진정한 아마추어인 이들 현장 카메라가 갖는 의미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이들은 실천적으로도 그런 변화들을 통해 기존 저널리즘의 오래된 뉴스 가치와 규범적인 객관성에 끊임없는 의문을 던진다. 여전히 저널리스트들은 취재원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중립적 판단을 내리는 심판관이 되어야 하는지, 뉴스가 되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기준은 무엇인지, 게이트키핑이란 과연 무엇인지 등의 질문들이 그런 것이다.
아마추어들의 네트워크를 향해
그럼에도 진정한 아마추어 저널리스트인 현장 카메라의 가치는 오랫동안 간과돼왔다. 아직도 이들의 영상은 주류 미디어엔 별다른 허락 없이 쓸 수 있는, 유용한 자료화면으로 취급받기 일쑤이다. 현장에서도 이들이 인정받기는 쉽지 않았다. 이들은 현장의 요구라면 언제라도 들어줘야 하는 ‘활동가’면서도, 저널리스트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되묻는 외로운 존재였다. 그러나 2012년 지금, 이들이 분화된 현장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이라는 네트워크가 그것이다. 그동안 산개한 공공성의 현장을 지켰던 이들이 저널리스트로서의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현장의 연대를 이루겠다고 한다. 이 네트워크에서는 그들 각자의 몸이 또 다른 미디어가 되어 그 사회적 가치를 확인받으려는 인정투쟁의 장이 펼쳐질 것이다. ‘아마추어’ 저널리스트의 정체성이 그렇듯,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공공성을 온몸으로 실현하고 있는 모든 ‘아마추어’들의 네트워크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김동원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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