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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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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빌며 한 뼘 성장하다

기적을 바라는 아이들의 1박2일 여정 따라가며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밍밍한 맛’으로 빚어낸 수작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등록 2012-01-20 12:21 수정 2020-05-03 04:26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성장’이라는 기적을 조명한다. 가족이 재결합할 꿈을 좇던 아이들이 자신의 소망이 ‘세계’를 향해 열려야 함을 어렴풋이 깨닫는 것, 이것이 진짜 기적 아닐까. (주)미로비전 제공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성장’이라는 기적을 조명한다. 가족이 재결합할 꿈을 좇던 아이들이 자신의 소망이 ‘세계’를 향해 열려야 함을 어렴풋이 깨닫는 것, 이것이 진짜 기적 아닐까. (주)미로비전 제공

“흔히들 부모·자식 간의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잖아요. 반대라고 생각해요. 어린아이들의 부모를 향한 사랑, 오름사랑이라고요.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설령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버림받는다 해도 부모를 사랑해요.” -일본 드라마 중에서

의 원제는 이다. 그러나 앞의 사족은 영화의 분위기를 잘 표현한다. 간절하고 묵직한 기적에 대한 염원보다, 기적을 반신반의하는 기대와 설렘과 호기심이 잘 느껴지지 않나. 은 아이들이 소망하는 기적과 소망의 과정 중 일어나는 성장이라는 기적을 ‘밍밍한 맛’으로 빚어낸 수작이다.

“아빠가 파친코를 그만하게 해주세요”

화산 연기가 피어오르는 산 아래 초등학교에 다니는 6학년 코이치는 6개월 전 오사카에서 엄마와 함께 규슈 남단 가고시마의 외가로 와 살게 되었다. 아빠와 동생은 아빠의 고향인 규슈 북단 후쿠오카에서 산다. 가족이 두 동강이 난 이유는 밥벌이를 등한시 하는 철없는 뮤지션 아빠(오다기리 조)에게 화가 난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리려 했으나, 동생이 아빠와 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코이치는 화산재가 날리는 곳에서 화산 폭발의 공포 없이 일상을 누리는 가고시마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네 식구가 다시 함께 살기 원하는 코이치는 차라리 화산이 폭발해 마을이 소개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규슈 횡단 고속철도가 개통돼 마을을 지나게 된다는 술렁임 속에서 아이들은 시속 250km의 속도로 마주 달리는 기차가 스치는 순간,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하며 그 순간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괴담’을 주고받는다. 코이치는 화산이 폭발해 가족이 함께 살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기 위해, 상·하행선의 열차가 스치는 지점에 가는 여행을 계획한다. 그러나 동생은 천하태평이다. 아버지와 둘이 사는 것에 불만이 없는 듯 마당에 심은 채소 타령이나 하고, 형의 소원은 이기적이지 않냐 되묻기도 한다. 동생의 소원은 가면라이더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소원이 있다. 야구 선수가 되거나 짝사랑하는 선생님과 결혼을 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게 되거나 여배우가 되는 것 등등. 아이들은 소원을 빌려고 부모와 선생님 몰래 돈을 모으고, 수업을 빼먹으며 1박2일의 여행을 떠난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를’ 기적은 어찌되었을까.

영화는 기적을 소원하는 아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들의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담는다. 야구 선수가 소원이던 아이는 애완견이 죽자 개를 살려달라는 소원으로 바꾸고, 같은 반의 아역배우에게 주눅 들곤 했던 소녀는 위기의 순간 멋진 연기로 일행에게 기적을 선사한다. 선생님을 짝사랑하던 소년은 아빠가 파친코를 그만하게 해달라고 빌고, 동생은 아버지가 하는 일이 다 잘되게 해달라고 빈다. 코이치는 화산 폭발을 빌지 않는다. “가족보다 세계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은 기적을 믿는 아이들의 순박한 동심을 그린 영화가 아니다. 영화 속 아이들은 순진무구한 존재가 아니다. “아빠 없는 아이는 손들어보라”는 담임 선생에 대해 아이들은 “인권침해다. 엄마한테 말해서 선생님을 자르게 하겠다. 코이치 힘내”라 말한다. 코이치는 동생에게 “아빠를 잘 부탁한다. 혹시 애인이 생기지 않게 감시해라. 그러라고 널 아빠에게 붙여놓은 것”이라 말한다. 동생은 아빠에게 “나도 불편함을 참고 있으니, 양육수당의 반을 달라. 새 기타 사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라며 협상한다. “형과 나는 끈으로 묶여 있다”는 동생에게 친구 메구미는 “꼭 그렇지도 않다. 가족도 안 보면 잊혀진다”는 조언을 해주고, 하룻밤 숙식을 제공받은 노인에게 “대신 소원을 빌어주겠다”고 제안하는가 하면 “너무 착한 사람들이라 사기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말한다.

평범한 일상의 매순간이 기적

마침내 기적의 순간, 아이들은 천진한 표정으로 소원을 외치고 “우리가 해냈다”고 말한다. 개가 살아나지 않았음에도 크게 실망하지 않고 집 마당에 묻어주겠다고 한다. 아이들이 기적에 대해 품었던 마음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아이들은 소망을 품고 그것을 빌기 위해 여행하는 것 자체에 성취감을 느끼고, 용기가 한 뼘 자라남을 느낀다. 메구미는 엄마에게 여배우가 되기 위해 도쿄로 떠나겠다 말하고, 그림을 잘 그리고픈 아이는 여전히 서툴지만 다시 크레용을 든다. 또한 영화는 아이들이 부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한다. 메구미는 엄마가 여배우를 그만두고 술집을 하게 된 게 자신이 태어나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동생은 “내가 아빠를 닮아서 엄마가 별로라고 생각할까봐”라고 말한다. 철없던 동생은 아빠의 성공을 기도하고, 아빠의 작은 성공을 ‘기도발’이라 여긴다. 다른 소년도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고 아빠가 파친코를 그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던가.

영화는 자신의 스타일과 주제를 스스로 웅변한다. 절대 핑크색일 수 없는 희고 밍밍한 가루칸 떡처럼 영화는 은근한 재미를 추구한다. 초짜는 잘 모르는 중독성의 맛! 아빠의 말처럼 쓸모 있는 것들로만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쓸모없는 것들로 여백의 미를 살렸고, 인디음악처럼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영화 같다. 영화는 하이라이트인 아이들이 소원을 말하는 기적의 순간에 과자 봉지와 코스모스 같은 기억 속 심상한 화면들을 삽입한다. 우리 일상의 매초가 기적이 열리는 순간임을 이보다 더 강하게 암시할 수 있을까. 화산재가 날리는 마을에 살면서도 매 순간 일상의 평화를 누리고, 나의 소망이 ‘세계’를 향해 열려야 함을 어렴풋이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성장이라는 기적이 아니겠는가.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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