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클릭, 또 클릭.
달콤하게 구워진 페이스트리 켜처럼 방문자 수가 쌓인다.
윤기 흐르는 쌀밥에 착 얹어먹기 그만인 다갈색 연근조림이 보기 좋게 조려졌다.
사백이십 번째 댓글을 단다. 내가 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작은 노력
‘아 맛있겠어요, 정말 대단하심. 오늘 저녁 메뉴 해결!’
당신은 나의 영웅, 난세에서 구원해줄 나의 호걸
좋은 카메라와 능숙한 포토숍으로 음식의 간을 맞추자. 포스팅하기 좋은 400픽셀의 크기.
사진을 위한 음식은 냉장고에 쌓여가지만, 가족을 위한 음식은 없다.
아니, 모든 것은 여기에 있다. 블로그 속 당신의 세상, 곧 내 것이 될 그 세상
“강지을입니다. 나이는 서른넷, 딸 하나와 남편이 있고요, 그리고….”
“아, 닉네임으로 소개해주세요. 블로그에서 더 자주 만날 테니.”
“저…, 아직 닉네임이 없어서요.”
강사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짧은 한숨을 쉬었다. ‘블로그 마케터 양성과정 전문반 3기.’ 매월 초에만 끄적이는 깨끗한 가계부의 소유자, 남편의 한 달 월급은 손에 쥔 마른 모레처럼 허무하게 사라지곤 했다. 그런 내게 마케팅이라니. 엄격한 서류 심사를 거쳐 탈락자가 생길 수 있다는 당구장 마크 옆 경고 문구는 자기소개서를 여러 번 검토하게 했다. 선발 기준이 공들인 지원서류가 아닌 3주에 50만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할 의사가 있느냐라는 건 알고 있었다. ‘마케팅’ ‘탈락자’ 같은 날선 단어의 획수들이 낱낱이 부서져 가시처럼 눈을 비집고 들어와 박혔다. 늦가을, 바싹 건조돼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곤충의 사체처럼 작은 한숨에도 부서질 것 같은 생활. 무엇이든 붙잡고 싶었다. 은밀히 여퉈둔 비상금 통장을 깼다. 무료 강의라는 내 말에 남편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영주엄마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통로 건너편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였다. 나와 같은 가방을 들고 있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생활비에서 10만원씩 1년을 모아 산 루이뷔통 가방. 아이의 전집, 남편의 새 양복… 돈을 모으며 얼마나 많은 유혹에 시달렸는가. 가시밭길을 뚫고 구입한, 나에겐 유일한 고가의 가방이었다. 성근 보풀이 그대로 보이는 저지 소재의 검정 바지, ‘쎄게’를 몇 번이나 주문한 것이 분명한 짧고 결 나쁜 파마머리, 오래전에 산 듯, 살이 쪄서 작아 보이는 녹색 실크 블라우스. 그녀의 모든 것이 거슬렸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옆에 놓인, 내 것과 똑같은 루이뷔통 가방이 그랬다. 길들인 태닝이 아닌 켜켜이 때가 탔고, 진품 여부를 가장 쉽게 알려주는 가죽 테두리의 박음질 선은 고르지 않았다. 분명 가짜였다.
“분당댁이에요. 서현동에 살고요….”
“전 예가체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앤셜리, 쌍둥맘, 야생자전거, 잠실댁, 두딸맘, 그리고 닉네임을 말하는 순간 모두의 눈빛이 야릇하게 빛난 경기지검…. 새로 구축할 그들의 세계에서 ‘보이고’ 싶은 존재감이 오롯이 드러난 이름들. 거의 30∼50대 전업주부들이었다. 나의 닉네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멋진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닉네임에 드러낼 만큼 좋은 동네에 살지도 못했다. 신통치 않은 영업사원인 남편과 딸 인형이. 현재의 삶에서 자랑스럽게 토막쳐 드러내 보이고 싶은 단면이란 없었다. 강의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절박함이 후회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 모두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강사 김위안입니다.”
마케팅연구소 근무, 카메라 회사에서 후원하는 사진대회 입상. 수강생들을 한명 한명 훑듯 쳐다보는 눈매와 얇은 입술은 이름처럼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최신 유행을 의식한 폭 좁은 타이와 꼭 맞는 콤비 차림에도 불구하고 사십 중반을 넘긴 게 분명한 그의 나이는 바지 위 옆구리 살처럼 자꾸만 삐져나왔다.
“지원하신 분들 서류를 보니 거의 전업주부시던데 살림이라면 저도 좀 압니다. 퇴직하고 집에 있어야 하던 기간이 있었어요. 새롭게 제 일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했거든요.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마누라는 집에 와도 피곤하다고 말도 안 걸고, 내가 뭐하는 건가 싶더라고요. 여러분도 다 아시죠? 그때의 절망스런 기분.”
수강생들 사이에서 공감의 웃음이 터져나왔다. 강사는 자랑스런 얼굴이 되어 입술에 침을 축였다.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이 월 200만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하죠. 그러나 외주를 주면 더 저렴하고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돈 가치만큼 못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자 이제 블로그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뭐든 하나만 잘하면 사이버 세계에서 돋보일 수 있어요. 여러분의 살림이 돈이 될 수 있습니다. 진짜 ‘생산적’인 살림을 할 수 있다는 거죠. 특히 남다른 노하우가 많으신 오랜 전업주부님들, 정말 기회가 왔습니다.”
약장사처럼 쉬지 않고 떠들던 그는 한껏 고조된 분위기 속에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파워포인트 페이지가 한 장씩 공중분해됐다. 블로그에 관한 개략적인 설명을 지나 실제 포스팅에서 오는 수익을 정리한 표에 화면을 고정했다. 업소 홍보 포스팅 건당 5만원, 중소기업 제품 포스팅 7만원. 대기업으로 넘어가면 제품마다 달라지는데, 10만원에서 단위가 높은 제품은 몇십 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방문자 수. 그러므로 이들을 유인할 자신만의 포스팅거리를 찾아 가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이며 강의실의 조명 스위치를 올렸다.
“제가 이번 기수 분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게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을 위한 멘토제입니다. 아주 대단한 분들을 모셨거든요. 곧 올라오실 겁니다.”
저 사람, 영웅호걸 아냐?
강의실은 들뜬 수런거림으로 가득 찼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네 명의 여인 중 푸근한 인상에 당당한 미소를 띤 낯익은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뛰었다. 수수해 보이는 회색 캐시미어 니트를 감싸고 있는 그녀 주변에 미세하게 다른 결의 공기가 포착됐다. 황금빛을 띤 그 품위 있는 공기는 그녀가 입은 앙고라 니트의 올을 가볍게 스쳐 나에게 불어왔다. 차갑고 우아하며, 또 늘 가슴 아픈 향기를 품고 있는 공기였다. 바로 돈,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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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호걸, 쌍둥이인 두 아들 영웅이와 호걸이의 엄마. 일명 한국의 ‘마샤 스튜어트’. 대량구매로 질 좋은 물건을 싸게 사서 나눠 쓴다는, 약칭 ‘공구’의 여왕. 블로그 이웃 수가 10만 명에 이르며 하루 방문자 수 3만 명 이상. 대한민국 대표 살림 블로거로 5권의 책을 출판했고 공구와 광고, 고정 코너를 포함한 방송 출연으로 엄청난 수입을 거두고 있다고 포털 사이트는 내게 알려주었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남편도 이제 그녀의 일을 돕고 있다고 했다. 대기업의 협찬 러브콜을 끊임없이 받고 있지만, 광고나 홍보가 힘든 중소기업을 위해 보석을 발견하듯 그들의 획기적인 제품을 주요 공동구매 대상으로 한다는 포스팅은 비장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이웃들의 제품 사용 후기, 기업체 관계자의 고마움 담은 손편지는 나를 비롯해 많은 이웃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잘 찍은 사진과 함께 간결함의 묘미를 잘 살린 살림 포스팅들, 훈장처럼 따라붙는 수백 개의 댓글, 순식간에 마감되는 공동구매. 그녀의 블로그처럼 살고 싶은 수많은 ‘이웃’들이 그녀의 블로그를 드나들었고, 찬양과 함께 경쟁적으로 공구에 참여했다. 그녀가 나와 영주엄마의 멘토가 되었다.
“일종의 현장학습이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여긴 포스팅할 레스토랑이지.”
직접 창가 자리로 안내하던 매니저가 사라지자 그녀가 카메라를 꺼내며 빙긋 웃었다. 고급 기종의 초고화소 카메라였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렌즈를 바꿔 끼우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지을씨죠? 참 예쁜 이름이네요. 블로그도 들어가봤어요. 인형이가 딸인가봐요?”
영주엄마는 빙긋 웃었다. 그 옆에 초라하게 놓인, 내 것과 똑같은 루이뷔통 가방이 너무나 신경 쓰였다. 닳을까봐 잘 들고 다니지도 못하는 장롱 속 내 가방이 생각났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는 모습은 왠지 내가 모욕당하는 느낌이었다.
“아, 전 아직 영주엄마 블로그 못 가봤어요.”
그녀의 푸석한 파마머리가 환한 조명 빛에 부서져버릴 것 같았다. 영주엄마의 블로그에 갈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실내 촬영을 마친 영웅호걸은 테이블 옆에 팔짱을 끼고 서서 세팅 상태를 섬세히 점검했다. 영주엄마가 마신 크리스털 물컵의 지문 자국과 립스틱 자국이 단숨에 포착됐다. 컵과 영주엄마를 번갈아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에서, 나는 신중함을 가장한 경멸의 메시지를 읽었다. 서둘러 매니저를 불러 새 컵으로 교환했다. 영주엄마의 얼굴은 컵에 찍힌 립스틱 색깔보다 붉게 변했다. 그 얼굴빛은 레스토랑의 자랑인 정통 프렌치 요리 코스를 지나 후식 커피가 나올 때까지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스테이크를 잘라 입속에 넣으며 나는 영웅호걸의 그 경멸에 공감을 보냈다. 그것을 당당히 표현할 수 있는 그녀가 미치도록 부러웠다. 그녀는, 그렇게 나와 ‘이웃’이 되었다. 그녀가 되고 싶었다.
“으깬호박님? 닉네임이 재밌어요. 블로그 이름도 특이하네. 감각이 좀 보이네요.”
인형의 집으로 어서 오세요…. 테이블 위에 놓인 은색 노트북 화면엔 휑한 나의 블로그 메인이 펼쳐져 있었다. 언젠가 그녀의 블로그에서 본 초경량의 최신 사양 노트북이었다. “저런 것도 협찬이 돼? 우와, 너도 잘해봐.” 남편은 어깨를 툭 치며 눈을 빛냈다. 레스토랑의 통유리창을 통과한 가을 햇살이 마우스를 잡은 영웅호걸의 손 위로 쏟아졌다. 약지에 낀 커다란 루비 반지가 햇살을 붉게 토해냈다. 물컵을 우아하게 집으며 그녀는 나와 영주엄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던 그 눈빛은 내게 익숙했다. 출산과 함께 한 퇴직 뒤, 그 전에 입던 작은 정장에 몸을 끼워넣고 취업을 위해 찾아갔던 회사 면접관들의, 바로 그 심드렁한 눈빛이었다. 돈을 벌고 싶군요.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넘쳐요, 넘쳐. 당신은 뭐지?
“아, 그게, 여섯 살 난 딸 이름이 인형이에요. 이인형. 그게, 뭔가 재미있는 닉네임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냥 생각이 안 나서요. 스매싱 펌킨스 팬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영주엄마, 흠, 아이 이름이 영주인가보네. 근데 블로그 이름이, 골든 슬럼버?”
“책과 영화, 그리고 제 소설을 연재하려고 해요.”
“긴 글은 사람들이 안 읽어. 서점이나 출판 쪽 포스팅은 돈도 안 되고, 그게….”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영주엄마는 입을 꾹 다물었다. 영웅호걸은 가방을 열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이 멈추었다. 그녀의 샤넬 핸드백이 눈에 들어왔다. 고급 송아지 가죽이 내뿜는 우아한 크랙들이 만유인력처럼 자연스럽게 시선을 잡아당겼다. 눈이 부셨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안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안 되는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레스토랑 입구로 걸어갔다. 영주엄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고급스러운 하얀 찻잔엔 싸구려 립스틱이 뭉쳐 관리되지 않은 입술 각질이 판화처럼 찍혔다. 나는 내 찻잔의 립스틱 자국을 엄지손가락으로 살며시 문질러 없앴다.
“다 식었네. 여기 식사는 파워블로거한테 무료인가봐요. 3인분이나. 이건 좀 너무한다.”
“식사 비용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이 집은 선택받은 집일걸요?”
왠지 영웅호걸을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엷게 웃었다. 볼 위에 놓인 기미가 먹장구름처럼 함께 움직였다.
영주엄마는 나보다 열다섯 살 이상은 많아 보였다. 마흔다섯으로 알려진 영웅호걸보다도 훨씬 들어 보였다. 마흔이 넘으면 관리 여부가 분명히 드러난다. 하긴, 마흔뿐인가. 어느 연령대이건 돋보이고 예뻐지려면 돈이 든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외모에 환호하는 이유는 단순한 시각적 쾌감보다 그 뒤에 놓인 경제적·시간적 여유에 대한 부러움 때문일지 모르겠다.
“근데, 제 이름을 기억하시네요. 강의실에선 그냥 다들 으깬호박으로 부르잖아요.”
“이쁜 이름에 재치 있는 닉네임이니 더 잘 기억하죠. 인형인 몇 살인가요? 우리 영주는 고등학생이랍니다.”
“인형이는 여섯 살이에요. 아이는 커가고, 저도 뭐라도 좀 하고 싶은데 잘하는 게 없네요. 뭘 하면 좋을지도 모르겠고요.”
영주엄마는 따뜻한 새 커피를 청해 내 앞으로 밀어놓으며 활짝 웃었다. 그녀 옆에 놓인 가짜 루이뷔통 가방으로 자꾸만 시선이 갔다. 나는 커피잔을 들지 않았다. 통화를 끝낸 영웅호걸이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아, 미안해요. 자꾸 전화가 와서. 공구나 광고 때문에 전화랑 메일이 엄청 와요. 이거 정리하는 것도 정말 일이라니깐. 아, 어디까지 했더라. 참, 내 블로그는 다들 들어오시죠? 공부한다 생각하고 자주 와보세요. 댓글도 잊지 마시고요, 하하. 생각난 김에 한번 들어가볼까요?”
영웅호걸의 소소한 살림 이야기. 깔끔하지만 세련된 메인 화면에는 5년 연속 파워블로그 메달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었다. 오늘 방문자만도 벌써 7만 명이 넘어섰다. 메인 화면에 걸린 공구 4개는 이미 마감된 상태였다.
“와, 공구가 벌써 마감이에요.”
그녀는 픽, 소리를 내며 웃곤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건 돈이 안 돼. 단가 낮은 공구는 안 하려고. 자기들도 공구 참여할 거지? 이번 건 마감이고, 내일부터 신형 착즙기 공구할 건데, 그때 참여해봐요. 지금 포스팅 올리려고 준비 중이야. 내가 공구해서 회사 살린 제품이 여러 개 되잖아. 이번 것도 그럴 거야. 나한테 초이스된 제품이지.”
자랑스러운 얼굴이 되어 영웅호걸은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말없이 그녀의 블로그를 쳐다보던 영주엄마가 질문을 던졌다.
“공구의 기준이 뭔가요? 직접 써보시고 좋으면 하시는 거죠? 전문 상거래 사이트도 아니고, 이렇게 판매가 많은데 AS 같은 제품 관리는 힘들지 않으세요?”
영웅호걸은 당황스런 표정이 되어 영주엄마를 쳐다봤다.
“당연히 써보고, 이웃들과 함께 쓰고 싶으니까 하는 거죠. 제품 관리를 내가 왜 해? 회사가 해야지. 난 단지, 좋은 제품을 ‘소개’해서 공구를 해주는 것뿐이에요. 내가 소개하는데 안 쓸 수 있어? 흠, 어쨌거나 열심히 포스팅들 올리고, 바람처럼 떠도는 네티즌들을 잡아봐요. 살림이 돈이 될 수 있다니까. 집에서 열심히 쓸고 닦고 보살핀다고 누가 알아주나?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주기 시작하면 그게 유명세가 되고, 돈이 되는 거지.”
그녀는 ‘일상’이라고 적힌 카테고리를 클릭해 열었다. 잘 가꾼 채마밭과 카펫 같은 잔디가 깔린 단독주택 마당에 두 남자 아이가 커다란 강아지의 목을 끌어안고 활짝 웃고 있었다. 카메라 렌즈는 축복처럼 마당 가득 쏟아지는 햇살까지 잡아냈다. 사진 속 잔디를 가르고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이번에 이사한 집이에요. 좋은 카메라는 필수라는 거, 느껴지죠? 포스팅거리는 이렇게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고. 너무 내 얘기만 했나. 참, 두 분, 전공은 뭐예요? 몇 학번이신지. 하하, 전 86학번이거든요. 부군들은 뭐하시나?”
“와, 정말 젊어 보이세요! 전 97학번이고요, 전공은 도서관학이에요. 재미없는 전공이죠? 남편은…, 의료업계 종사해요.”
제약회사 말단 영업사원인 남편의 직업을 그대로 말하기 싫을 때, 뭉뚱그려 설명하는 단어가 바로 ‘의료업계’였다. 뭐, 착각은 자유니까. 자세히 묻지 않는다면 그냥 넘길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살짝 흘려버리면, 누군가는 겸손함으로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제발 그녀가 꼭 두 번씩 말해야 하는 내 대학 이름을 묻지 않았으면. 확 달아오른 얼굴이 눈에 띄면 어쩌나 맘 졸이고 있던 찰나, 표정 없이 앉아 있던 영주엄마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전 고졸이에요. 남편은 자영업하고요. 나이는 마흔여섯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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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으로 어서 오세요.
12개월 할부로 카메라를 장만했다. 풍성한 과정 샷을 위해 세 식구가 먹을 분량 이상의 음식을 만들었다. 사진을 찍어 올린다. 포토숍은 무생채에 색감을 더했고, 드라이아이스를 곁들인 흰쌀밥에선 모락모락 맛있는 김이 솟았다. 실제 맛은 사진에 나오지 않으므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맛있게 찍힌 쌀밥은 드라이아이스 때문에 먹을 수 없으므로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다. “아이와 남편이 너무나 좋아해요.” 기름진 매시포테이토는 약간의 카레가루를 더해 노릇하게 튀겨져 사진발이 그만이었다. 10개의 댓글이 달렸다. 하루 두 끼밖에 먹지 못한 아이가 과자 봉지를 뜯었다.
엄마표 간식 코너는 특히 인기였다. 하루 방문자 수가 200명을 넘기 시작했다. 영웅호걸의 정원 너른 집 가격은 12억원에서 한 달 새 1천만원이 올랐다. 모니터 속 그녀의 집을 볼 때마다 24평 아파트는 1평씩 좁아졌다. 넓고 선명하게 찍히도록 할부로 광각 망원렌즈를 구입했다. 그래도 30평 이상으론 보이지 않았다. 기술이 부족한가. 영웅호걸의 사진교실 카테고리를 클릭해 숙독해나갔다. 놀라운 세계였다. 모든 것은 가공하기 나름이었다. 중요한 건 시각이미지. 이곳에서 진심은 양념과 같았다. 너무 많이 넣으면 느끼해지고, 너무 없으면 또 싱거운. 조절이 중요했다. 그녀의 블로그에 모든 것이 있었다.
새로운 일이 시작됐다. 레스토랑에서의 만남 이후로 내 공식 멘토가 되기로 한 영웅호걸은 야심작이라던 착즙기의 공구를 함께 진행하자고 했다. 그녀의 포스팅에 댓글을 달기도 하고, 내 블로그에도 공동구매로 이끄는 홍보 포스팅을 함께 올리기로 했다. 적은 액수이지만 수고비도 받았다. 가슴이 짜릿했다. ‘꿈’을 이뤄간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더 철저히, 그녀가 되고 싶었다. 그녀의 블로그는 내게 종교가 되었다. 믿고, 소망하고, 그 안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우아한 성공, 강남에 위치한 그녀의 집, 자연스럽게 사진에 노출되는 명품 소품들, 유학 예정인 아이들. 더 열심히 요리를 하고 사진 찍고, 아이디어를 메모하며 그녀의 블로그로 돌아가 공부하고 확인했다. 그리고 그녀가 사는 동네와 그녀의 집 시세 추이를 지속적으로 살폈다. 가야 할 길이 멀었다. 강남의 집값은 계속 올라갔고, 24평 아파트는 더 좁고 더러워졌다. 나의 사진술은 나날이 늘어갔다. 인형의 집은 깔끔한 음식과 살림 노하우로 호평을 얻기 시작했다.
“맛이 좀 이상하다. 뒷맛이 너무 역한걸. 뭔가 껄끄러운 것도 씹히고.”
밀린 공동구매 주문으로 4차에 이르러서야 나는 영웅호걸의 착즙기를 받을 수 있었다. 연이은 접대로 비틀거리며 들어온 남편을 위해 나는 양배추, 케일, 당근을 착즙했다. 완성 샷 한 컷, 그리고 시원하게 한잔하고 다 마신 주스잔을 함께 찍어 포스팅할 작정이었다. 간간이 남편의 의견과 같은 클레임이 있었지만, 영웅호걸의 말에 의하면 ‘몸에 좋은 채소 성분이 그대로 나오기 때문에’ 그런 맛이 날 수 있다 했다. 남편은 미심쩍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거 인형이는 먹이지 마라.”
입가에 채소즙을 묻힌 채 말갛게 웃고 있는, 잘 보정된 딸의 사진이 떠올랐다. 좋은 사진을 위해 보름 전 받자마자 아이에게 다양한 컬러의 채소를 조합해 여러 종류의 즙을 내서 주었다.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남편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래? 내가 이러는 게 싫으면 돈을 더 많이 벌어 줘보든가. 무능한 거 티내지 말고.”
남편은 주스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붉게 충혈된 눈은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었다.
“무능하고 용기 없는 건 너지. 세상으로 뛰어들 수 있어? 모니터 말고. 네가 뭘 할 줄 아는데? 냉정해져봐, 넌 그냥 식충이일 뿐이지. 파워블로거? 네가? 야, 인형이가 비웃는다. 집안 꼴을 봐라. 아무나 하는 살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영웅호걸인가, 나도 그 여자 남편 부럽더라. 뭐 너한테 기대하는 건 아니고.”
잠에서 깬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며 침실로 걸어간 남편은 양복을 벗지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늘 부인을 먼저 생각하는 남편이 삶의 이유라던 그녀의 포스팅이 생각났다. 아이를 얼러 재우며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컴퓨터를 켜고 카메라를 연결했다. 블로그 로그인. 사랑하는 남편의 숙취 해결! 케일·양배추 즙. 내용을 완성했다. 잠든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낮게 들렸다. 베개를 덮어 지긋이 눌러버리고 싶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 인형이의 우는 소리. 오늘밤도 악몽에 시달리려나 보다. 스포이트에서 물이 떨어지듯, 정수리로 똑똑 떨어지는 잠에 섞여 아이 우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윙윙거렸다. 어느 순간, 물이 뚝 끊겼다. 새벽 3시. 아이가 토사물 범벅이 된 채 침실 문 앞에 앉아 울고 있었다. 남편을 깨웠다.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향했다. 아이는 계속 토했다. 토사물이 아이와 나 사이에 접착제처럼 스며들었다. 위액 섞인 채소즙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음식에 섞인 불순물이 위경련을 일으킨 것 같다고 의사는 담담히 말했다. 링거액이 눈물처럼 방울져 아이의 몸으로 들어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자, 그냥 참고인 조서입니다. 질문에 사실대로 답해주시면 됩니다. 강지을씨, 맞죠?”
“네.”
“윤미연씨와의 관계는?”
“네?”
“아, 그 영웅호걸? 그 여자 이름이 윤미연입니다. 관계는?”
“…이웃이오.”
“네?”
“이웃 몰라요? 서로 이웃이었다고요.”
“….”
그녀가 공구한 착즙기 모터에선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중금속이 검출됐다. 위장장애를 일으키는 쇳가루가 즙에 섞여 나온다고도 했다. 그녀의 블로그는 패쇄됐고, 공동구매에 참여한 사람들이 개설한 안티카페에서는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더 놀라운 건, 착즙기 비용 45만원 중 30%가 그녀에게 커미션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다른 공동구매 건도 마찬가지였다. 중소기업을 선호한 이유가 드러났다. 대기업엔 그만한 대가를 요구할 수 없었던 까닭이리라. 나를 비롯한 추종자들은 그녀의 블로그 속, 천국처럼 펼쳐진 포토숍 사진에 경배하며 비싼 대가를 지급했다. 그녀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었다. 그저 잘 치장해 보여주면 되었다. 누누이 말하는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고화소의 축복받은 삶을.
한낮임에도 컴컴한 경찰서 복도에서 보충 조사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내 어깨를 누군가 두드렸다. 영주엄마였다.
“걱정하지 마요. 그냥 단순 조서라니깐.”
우리는 경찰서 앞, 나무들이 제법 우거진 작은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첫 강의 뒤 영주엄마는 수업에 나오지 않았지만, 멘토로 엮인 기록 때문에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경찰서에 익숙한 남편이 함께 왔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건물 입구 계단에서 누군가와 이야기 중인 한 남자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남편은 교사였고, 나는 학생이었지. 우린 야학에서 만났어요. 무슨 드라마 같죠? 오해 마요. 나이는 동갑이었다고요.”
잿빛 경찰서 건물이 가을 햇살에 은색으로 빛났다. 그녀는 갓 뽑은 자판기 커피를 내게 내밀었다. 남편은 변호사라고 했다. 붉게 물든 단풍 하나가 내 볼에 떨어졌다. 차가운 가을 공기가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얼굴이 뜨거웠다. 그녀에게 왠지 미안했다.
“아이는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남편이 아이 옆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두 번의 세척에 쓸려나갔을 아이 위장 속 쇳가루가 가슴에 와 박혔다.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맘고생이 심했겠어요. 그 여자, 참 할 말이 없네요. 꼭 필요하지만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보살핌의 역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주부의 힘든 역할을 멋진 사진으로 바꿔 사람의 맘을 흔들고, 그걸 이용해 돈을 벌고. 주부들, 그냥, 그 가사노동을 가족이 함께 독려하고 소중히 여기고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건지. 블로그를 통로로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끼리 소통하고 즐길 수 있잖아요. 자신의 일을 좀더 소중히 여기면 좋을 텐데. 진심은, 그들의 말처럼 양념이 아니고 그냥 그 자체니까요. 맛있든 맛없든.”
경찰서 입구에 서 있던 그녀의 남편이 이야기를 마친 듯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그녀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러고는 무언가 생각난 듯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굴 가득 엷게 밴 미소가 찻물 같았다.
“내 이름 모르죠? 김정순이라고 해요. 촌스럽지만, 다음에 만나면 영주엄마 말고 이름으로 불러줘요.”
그녀가 건네준 자판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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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새 깡말라버린 아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섰다. 오랫동안 제대로 환기를 하지 않은 탓인지 집안 공기가 탁했다. 창문을 열었다. 식탁 위의 착즙기가 눈에 들어왔다. 쓰레기봉투에 넣어 베란다 한구석으로 밀어놓았다. 그간의 일들이 유리창 밖으로 뿌옇게 밀려나갔다.
“엄마, 배고파.”
핼쑥한 얼굴로 웃음짓는 아이의 모습이 가슴 아팠다.
“그래. 뭐 해 먹을까.”
“맛있는 거.”
“그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이 앞에서 울지 않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닦지 않아 뿌옇게 변한 화장실 거울에 파리한 얼굴을 한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찬물을 받아 얼굴을 씻었다. 거울을 다시 보았다. 어깨 위로 물이 떨어졌다. 바싹 마른 수건으로 지그시 눌러냈다. 충혈된 눈의 여자가 울 듯이 서 있었다. 거울 속 그녀에게 한번 웃어주었다. 그녀 또한 환한 미소로 내게 답했다.
부엌에선 아이가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 먹고 있었다. 평소처럼 아이에게 소리 지르는 대신 조용히 옆으로 다가갔다. 아이는, 사진을 찍기 위해 시간을 들여 꼼꼼히 색을 잡아낸 주홍색 소스를 손가락으로 찍어 먹고 있었다. 화려한 색이 시선을 끈 모양이었다.
“이거 너무 맛있어. 이름이 뭐야?”
“사우전드아일랜드소스라고 부르지.”
“아, 어렵다. 이름이 뭐 그래?”
입가에 소스를 묻힌 채 아이가 환하게 웃었다. 나는 웃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영국의 어느 해안에는 크기가 다른 1천 개의 섬이 있어. 한 사람이 하나의 섬을 가지고 살지. 자신이 가진 섬에 가난한 사람은 작은 집을 짓고 부자인 사람은 큰 집을 짓는단다. 작은 집을 가진 사람, 큰 집을 가진 사람, 그들은 모두 행복하지, 자신의 섬 안에서. 섬과 섬 사이에는 작은 모터보트가 다녀. 버스나 택시, 지하철이 다닐 수 없으니까. 그들 중 돈 많은 한 섬의 주인이 고용한 요리사가 이 소스를 만들었대. 그들이 사는 1천 개의 섬이 박힌 예쁜 색깔의 소스를. 그리고 모두 맛있게 나눠 먹었지. 그리고 각자의 섬 안에서, 그리고 모터보트를 이용해 서로 만나기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단다.
우리의 섬, 인형이 밝게 웃고 있는 우리의 집으로 시원하고 개운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인터넷의 바다 어딘가에 떠 있는 또 다른 우리의 집이 생각났다. 어디선가 경쾌한 모터보트의 시동음이 울려퍼졌다. 입으로 짭짤한 물방울이 스며들었다. 작은 우리의 섬으로 튀어오른, 파도에 몸 싣고 날아온 바닷물이었다.
<hr>수상 소감
나를 찾는 글쓰기‘나는 나였으되 내가 아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일상의 지향점과 욕망은 항상 타자를 향해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엔 공부 잘하는 친구를, 회사에서는 일 잘하고 예쁘기까지 하던 옆 부서의 동료를, 그리고 결혼 뒤에는 ‘살림의 여왕’으로 불리던 주부 블로거들의 삶을 끊임없이 곁눈질하고 비교해댔습니다. 주어진 역할에 따른 최고의 모델을 찾아 그들의 일상을 욕망해왔던 거죠. 끝없이 좌절했고, 피로했습니다. 참, 지루한 시절이었죠.
피로엔 박카스라지만, 타인에 욕망에 지친 제겐 글쓰기가 회복제가 되었습니다. 서툴고 느린 자신을 보듬어주기,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기. 자신에 대한 성찰은 놀랍게도 타인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더군요. 과거의 욕망들 또한 나를 만든 한 과정이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내 안과 밖에서 보이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겨울눈 밟듯 꾹꾹 눌러 쓰기 시작했습니다. 햇볕 냄새를 뭉근히 풍기는 흰 빨래처럼 언젠가는 제 글이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면서요. 타자의 욕망이 아닌 건강한 꿈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누군가에겐 쌓인 눈을 녹이고 또 누군가의 얼굴엔 기미 같은 부끄러움으로 다가설 수 있는, 봄볕 닮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기회를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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