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의도 정치권과 언론계에서는 ‘럭셔리 답사여행’이 화제가 됐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 등 3명이 중국 둔황석굴을 다녀왔는데, 일반 패키지 여행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둔황석굴을 전공한 한국인 전문가가 따라붙었다고 한다. 둔황석굴에 대한 현지 가이드의 ‘겉핥기’ 설명 대신 제대로 된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싶어서였다. 우르르 몰려다니지 않고, 딱 4명이서만 현지에서 빌린 미국산 지프 차량을 타고 둔황 지역을 돌았다. 상당한 비용이 들었겠지만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제대로 된 답사여행을 하고 온 셈이다.
“삶의 실마리를 찾으러 나섰다”
보고, 먹고, 찍고, 사고. 외국 명승유적 여행이라고 하면 으레 이렇다. 관광책자만 봐도 다 나오는 뻔한 설명을 들으며 관광을 하고, 입에 맞지도 않는 싼 음식을 비싸게 사먹고, 무슨 건물인지도 모르고 사진을 찍고, 가이드 손에 이끌려 쇼핑하는 걸로 끝난다. 이런 여행을 싫어하는 이가 많지만, 누구나 럭셔리 답사여행을 할 수는 없다. 비용도 문제지만 코스를 짜기도, 전문가를 섭외하기도 어렵다. 한겨레신문사가 대안을 마련했다. 이 성균관대 유학대학원과 함께 4박5일 일정으로 지난 11월4일(1차 27명), 11월11일(2차 37명) 진행한 ‘중국 공자·맹자 유적지 답사여행’은 중국 여행과 답사여행에 대한 통념을 뒤집었다. 전문가 사전 특강과 중국인 교수의 현지 안내, 5성급 호텔 숙식이라는 ‘럭셔리’한 구성이면서도 비용은 일반 중국 여행과 별 차이가 없다.
공맹의 도리를 어긴 이들의 기사만 주로 써오던 사회팀 기자가 공맹 답사여행에 따라나섰다. 11월11일 아침 인천공항에 모여든 37명이 공자님, 맹자님을 찾아나선 이유는 다양했다. 논어를 3번 읽었다는 안옥희(52)씨는 “공자의 발자취를 언젠가 꼭 따라가고 싶었다”고 했다. 최경락(57)씨는 “공자님처럼 살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고 했다. 곽태석(54)씨는 “삶의 돌파구를 찾고 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고” 공자를 찾았다. 대학 철학과에 재학 중인 박지현(22)씨는 “서양철학만 배웠지 동양철학은 사실 무지했다. 이번 기회에 흥미를 가져보려 한다”고 했고, 곽은경(22)씨는 에 실린 광고를 우연히 보고 무작정 공맹을 찾아나섰다. 사업을 하는 이태주(42)씨도 “공맹의 유적지를 제대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직원들에게 일을 맡기고 나섰다. 국회에서 근무하는 이덕난(38)씨는 이번 여행을 위해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해놓고 아들 건(11)이의 손을 잡고 나섰다. 아내 현영실(52)씨와 여행을 온 이정희(57)씨는 “중국에 공이나 치러 가지 웬 공맹이냐는 말도 들었다”며 “삶이 무엇인지 책을 읽고 교회에 다녀도 잘 모르겠더라. 한 가닥 실마리를 찾으러 나섰다”고 했다.
중국 산둥성 중남부에 있는 취푸는 공자의 고향이다.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 있는 공묘, 공자의 후손이 거주했던 공부, 공자와 후손의 묘가 있는 공림이 있다. 맹자가 태어난 쩌우청은 취푸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다. 마찬가지로 맹묘·맹부·맹림이 있다. 맹림에서는 맹자의 후손이 직접 사당 문을 열어주기도 했다. 공자나 맹자나 ‘모두 훌륭한 분들’로 알고 있지만, 중국인들의 공자·맹자 대접에는 확실히 차이가 났다. 성인으로 추앙되는 공자의 사당인 공묘는 중국 3대 건축으로 불릴 정도로 규모가 크다. 반면 성인에 버금간다는 의미로 ‘아성’(亞聖)으로 불리는 맹자를 모신 맹묘와 맹부는 공자에 견줘 규모가 매우 작다. 공림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공자와 맹자의 묘를 직접 눈앞에서 보는 순간, 이런 차이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묘한 감흥에 사로잡히게 된다. 성현 앞에 절로 무릎이 구부려지고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공자님” “맹자님” 소리가 나온다.
버스 이동 시간에 얻은 수확
공묘와 맹묘에서는 바라는 바를 적을 수 있는 빨간 나무조각을 10위안에 판다. “좋은 글, 좋은 문장으로 세상을 밝히게 해달라”는 지극히 기자스러운 소원을 적어 걸어두었다. 최고령인 이은경(80)씨는 공자의 고향인 취푸에서 생일을 맞았다. 그날 저녁 생일상으로 공자 가문의 전통요리인 ‘공부가연’이 차려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답사여행객들은 여행에 앞서 한국에서 공자를 공부했다. 오석원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장으로부터 2시간에 걸쳐 ‘공자 사상의 이해’를 주제로 특강을 들었다. 앞서 1차 여행을 앞두고는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가 ‘금융위기의 공자적 해법’이라는 특강을 했다. 여행에는 뜻밖의 재미가 있다. 2차 답사여행에는 서울신학대 유석성(60) 총장이 함께했다. 신학을 가르치는 대학의 총장이 유학의 대가들을 찾아나선 것이다. 유 총장은 동양철학도 깊이 연구해왔는데, 여행객들은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공자와 예수를 넘나드는 유 총장의 강의를 여행 내내 들을 수 있었다.
현지에서는 공자문화 지정대학인 중국 취푸사범대학의 최무신 교수가 공맹 유적지를 하나하나 안내하며 설명을 맡았다. 공묘·맹묘에는 왜 그렇게 문이 많은지, 어떤 편액은 왜 글자가 세로로 쓰여 있는지 일일이 설명해준다. 공자·맹자의 사상이 사방으로 퍼지고 하늘로 솟구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공맹 답사여행에서는 중국의 도교문화까지 접할 수 있다. 산둥성 타이안시에는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의 바로 그 태산이 있다. 중국인들이 오악(五岳) 가운데 으뜸으로 친다는 태산이다. 버스와 케이블카를 이용에 정상에 오르면 중국의 역대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흔적이 즐비하다. 옥황상제를 모신 사당에서 20위안을 주고 커다란 향을 샀다. 향을 사르며 특종 따위의 사사로운 소망이 아닌 ‘한-중 우호’와 ‘세계평화’를 빌었다. 정말이다. 향을 파는 중국인이 30위안을 거슬러주지 않으려 해 한-중 우호가 살짝 위기에 빠질 뻔하기는 했지만.
한-중 우호와 세계평화를 빌다
답사여행을 다녀온 이들은 “제대로 된 최고의 답사여행을 했다”고 호평했다. 호응이 좋아 예정에 없던 3차(12월23일 30명), 4차(12월30일 30명) 여행 일정도 잡혔다. 3·4차 여행에는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박사가 동행해 현지에서 특강을, 취푸사범대 최무신 교수가 현지 안내와 설명을 맡는다. 독자와 주주, 수능시험을 마친 수험생을 둔 이들에게는 할인 혜택도 주어진다. 공자님, 맹자님 찾아뵙는 데 이만한 기회는 없을 듯하다.
취푸·쩌우청·타이안(중국)=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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