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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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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철학적 근본 질문

부담없이 즐기는 서울 이수역 ‘싱싱오징어바다’
등록 2011-11-10 16:04 수정 2020-05-03 04:26

와잎이 떠났다. 지난 마감일, 와잎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베프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도미했다. ‘아내가 결혼(식에 가려고 출국)했다’ 정도 되겠다. 와잎은 집안의 현금을 몽땅 싸들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결혼식 가는 거 맞니? 카지노 가니? ‘리빙 라스베이거스’ 찍니? “술 먹고 늦게 다니지 말고 조신하게 있어~. 경거망동은 죽음이야~.” 와잎이 냉장고에 붙여놓고 간 포스트잇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순간, 이건 ‘내가 써놓은 건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거기에 있었다. 역시 우리 부부는 한 몸이었어~ 라는 서글픈 자각.

암튼 와잎이 없는 주말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자유여, 해방이여~ 만세삼창이 터져나왔다. 8·15 해방에 버금가는 가슴벅참이라고 생각하며 돌아보니 아들녀석이 거실에서 뒹굴고 있다. 아~ 불완전한 자유여, 불가능한 해방이여~. 먹이고, 입히고, 치우고, 씻기고 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었다. 입에서 단내가 났다. 그사이 아들녀석은 2분에 한 번꼴로 “엄마, 언제 와?”라고 물어댔다. 처음 몇 번은 엄마? 천천히 와야지~ 라고 생각하며 “엄마, 여섯 밤만 자면 와~”라고 흐뭇한 미소로 대꾸하다, 30번 넘게 같은 문답을 하자 부아가 치밀었다. 엄마, 찾지도 마~ 너와 날 버리고 간 무정한 에미야~ 라고 말은 못하고 그저 여섯 밤만 되뇌었다. 녀석은 눈을 여섯 번 껌벅이더니 다시 묻는다. “여섯 밤 잤는데 엄마 왜 안 와?” “….” 도대체 언제 오는 거냐? <csi> 찍는 거 보고 올거냐?
이렇게 토요일 저녁을 보낼 수 없었다. 급만남(?)이 필요했다. 동네 후배를 호출했다. 장소는 서울 지하철 이수역 앞 ‘싱싱오징어바다’. 술 사준다는 말에 후배녀석은 얼씨구나 좋다고 뛰쳐나왔다. 과자 사준다는 말에 아들녀석도 얼씨구나 좋다고 따라나왔다. 토요일 저녁, 남자 셋이 모였다. 참담했다. 모든 안주가 1만원 남짓으로 균일한 싱싱오징어바다는 가볍게 한잔 마시기 좋은 곳. 먼저 광어회 작은 거랑 아들녀석 먹일 새우튀김, 그리고 소맥을 시켰다. 이윽고 나온 광어회는 가격 대비 맛이 괜찮았지만 새우튀김은 약간 눅눅했다. 아들녀석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도 “엄마 언제 와?”라고 4분에 한 번꼴로 물었다. 후배녀석과 말하는 도중 “엄마 언제 와?”라고 물어 나도 모르게 FTA로 말하려다 엄마라고 발음하게 되는 지경이었다. 후배녀석은 “의 ‘생활의 발견’이구만~”이라며 혀를 쯧쯧 찼다. 술값 니가 낼래?
우리끼리 먹기는 적적해(?) 정봉주씨에 필적할 만한 진보 정치인 김아무개씨도 급섭외했다. 술 먹자는 말에 정치인은 이미 먹고 있다며 좀 있다 합류하겠다고 했다. 잠시 뒤 정치인이 도착하자, 아들녀석은 갑자기 응가가 마렵다고 했다. 정치인은 자기 오자마자 똥 얘기를 하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양변기를 닦고 휴지를 깔고 바지를 벗기는 동안 아들녀석은 ‘빤스’에 똥을 지렸다.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변기에 아들녀석을 앉히고 세면대에서 빤스를 빨았다. 비누가 없어서 그냥 물로 빨았다. 더러워서 못 살겠다. 아들녀석은 똥 다 쌌다고 닦아달란다. 갑자기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난 누구고, 지금 여긴 어디지?’라는 철학적인 근본 질문이 일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와 함께 보낸 금쪽같은 내 주말, 아들녀석의 빤스를 힘껏 짜며 난 울부짖었다. 술 먹여도 좋다, 주사도 좋다~. 돌아와라, 무자비한 와잎아~. 컴온 베베, 리빙 라스베이거스! xreporter21@gmail.com

</c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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