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드라마에 ‘막장’이라는 단어가 붙게 되었을까. 아마도 형편이나 처지, 품성이 바닥을 보이는 사람에게 붙이는 ‘막장 인생’에서 연유했을 터이다. 그런데 뭔가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단어는 막장이 아니라 ‘끝장’이다. 그러니 막장 드라마보다는 ‘끝장 드라마’가 옳은 표현일 것이다. 끝장나게 짜증나는, 혹은 끝장나게 유혹적인 드라마들에서 실은 막장 인생은 등장하지 않는다. ‘막드’라면 빠질 수 없는 임성한 작가의 도 도 점 하나 찍고 복수를 위해 돌아온 아내를 그린 도 살림살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어려운 처지는 ‘고난’의 의미로 설정된 것이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량하고 출중한 그들의 능력을 빛나게 해주는 요소일 뿐이다. 그들은 가난하거나 버림받아서 더 아름답고, 더 비련하고, 더 당당한 인물이다.
문영남은 ‘막장의 본좌’인가
문영남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다르다. 그들은 정말 막장이다. 하는 짓도 막장이고, 사는 꼬라지도 막장이다. 여자들은 대부분 첩 끼고 사는 남편에게 시달리며 ‘조강지처’라는 완장 하나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남자들은 백수건달이거나 양아치가 아니면 직장이 있어도 만년 사원, 만년 과장 인생이다. 사채를 쓰는 건 기본이고 허풍은 필수다. 집안에서만 ‘절대 마초 권력’을 휘두르는 잉여들이다. 드물게 등장하는 부유층은 문자 그대로 ‘졸부’다. 무식할 뿐 아니라 꾀도 바르지 못해서 악역을 자처하지만, 번번이 제 꾀에 넘어가는 인물이다. 등을 쓴 작가 김운경은 똑같이 밑바닥 인생을 그려도 삶에 대한 선량한 희망과 의지로 주위에 헛바람 든 인생들마저 개과천선시키는 일종의 ‘서민 판타지’를 보여주었다. 문영남의 인물들은 그런 의지와 희망 따위와는 애초에 인연을 맺지 않았다. 제 인생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민폐이면서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 잘도 하는 철면피들이라 어떤 개선의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
작가가 그렇게 집요하게 막장 인생을 그려내도, 40% 가까운 시청자가 그의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그렇게 악착같이 공격하고 민폐를 끼치는 상대가 남이 아니라 바로 가족이라는 점이 수상하다. 가족 간 대항 구도가 형성되는 다른 드라마와 달리 문영남 드라마의 갈등은 가족 내부에서 더 집요하고 가학적으로 발생한다. 이 그랬고, 가 그랬으며, 최근 방영을 시작한 주말극 또한 그런 조짐이 보인다.
문제는 그 가족이 아주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누군가를, 어떤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가족이란 망망대해 같은 세상에서 한 배를 탄 나의 피난처요 의지요 나란히 잡은 손 같지만, 사실 가부장제 하의 가족이란 그렇게 낭만적이고 안온한 이름이 아니다. 희생을 강요하고 차별을 당연시해온 폭력적인 이름이기도 하다.
문영남 드라마의 불편함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같잖은 인생들이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다녀서가 아니라 우리가 기필코 삶 속에서 만나고야 마는 불편한 진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느냐” “도대체 네가 잘하는 게 뭐냐”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법이다”는 에서 나온 시어머니의 닦달이 낯선가. 서로를 나무라지만 결국 제 얼굴에 침 뱉는 의 가족들이 현실보다 막장인가. 문영남 드라마에서 가족은 가부장제하의 가족이 ‘가족애’라는 이름으로 숨기는 부당함과 허위를 낱낱이 드러낸다. 그것도 가족애라는 설정으로 까발린다. 막장이라기보다는 풍자에 가깝다. 가족을 그 따위로 그렸으니 좋은 소리를 들을 리 없다. 그러나 그런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문영남 드라마에는 ‘이런 일이 어디 있느냐’ 하는 황당한 비난 대신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비난이 따라붙는다. 그 지점이 바로 다른 막장 드라마와 문영남 드라마의 차이점이다.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문영남의 드라마는 가족의 실체를 낱낱이 해부하고, 졸부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것 정도가 자극적 요소의 전부다. 어마어마한 복수도 없고, 뜬금없는 죽음이나 재해도 없고, 빙의 같은 황당한 설정은 더더욱 없다. 갈 데까지 간 인생들이 좌충우돌하다 개과천선하는 단순한 줄거리다. 그렇게 보면 문영남의 드라마는 사실 전형적 풍자극에 가깝다. 탈춤에서 광대들이 역할이 정해진 탈을 쓰고 정해진 권선징악의 줄거리를 조금씩 변주해 공연하는 것과 비슷하다. 탈 대신 이름을 쓴다는 것이 다르다고 할까. 나대라·나아라·모성애·조은걸 등 문영남 식의 작명은 캐릭터로서의 인물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 부길라·아리영·아수라 같은 임성한의 4차원적 작명과는 맥락이 다르다.
지난 9월17일 방송을 시작한 주말 드라마 도 문영남 식 캐릭터 풍자가 변형된 레퍼토리다. 등장인물의 처지와 꼬라지가 어느 때보다 한심하다. 동기간의 집을 털어먹는 범죄행위까지 등장했다. 그야말로 징글징글한 가족의 결정체다. 막장 잉여들이 떼거리로 나오는 중이다. 대사엔 품위도 없고, 영상미 같은 건 원래 없었다. 스테이크보다는 순대국에 가깝다. 폼 재지 않고 봐야 재미있다.
그런데 가끔 궁금해진다. 끝장을 보더라도 가족의 본질을 파헤치고 말겠다는 너무나 현실적인 문영남 식 가족극의 풍자는 왜 바깥 권력에는 통하지 않을까. 경찰과 재벌을 만나면 맥없이 굴절되는 그의 대사에 문영남 드라마의 미덕은 어이없이 스러진다. 집에서만 끝장을 보는 가족들이다. 만약 문영남 드라마의 가족들이 투표해야 한다면 어떤 당을 지지할지는 분명하다. 처지에 대한 신랄함은 있지만 계급적 각성은 없기 때문이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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