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잔 하고 가세요.” 10월8일 토요일 밤, 오늘의 축제가 끝난 어둑한 서울 문래동 철공소 거리를 혼자서 되돌아가기는 어쩐지 쓸쓸했던 참이다. 오쿠다 마사시가 인사치레로 슬쩍 던진 그물에 넙죽 걸려드는 시늉을 했다. 철공소 거리엔 조촐하게 술판이 벌어졌다. 둥근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어깨를 붙인 채 맥주를 들이켰다.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물레아트페스티벌 김은정 예술감독과는 1시간 전 안면을 텄다. 미디어아트 두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안정윤 작가는 수줍은 미소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들려주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키가 큰 게 분명한(확인한 바 없지만) 마이미스트 이정훈씨, 온앤오프무용단 대표이자 물레아트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인 한창호씨, 비눗방울 퍼포먼스 예술가인 개구쟁이 노신사 오쿠다 등이 축제의 여운을 함께 즐겼다.
철거할 때까지 작업 이어나갈 것
물레아트페스티벌이 올해로 5회를 맞았다. 물레아트페스티벌은 김은정·한창호씨(알고 보니 이들은 부부 사이!)의 삶터이자 춤터인 ‘춤공장’이 벌인 춤판에서 시작된 축제다. 두 사람은 2001년 서울 이문동 시장골목 지하에 처음 춤공장의 둥지를 틀었고, 토요일마다 시장 어귀에서 춤판을 벌였다. 그런데 여름이면 춤공장에 비가 들어찼다. 상습 침수지역의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마땅한 곳을 물색하다 발견한 곳이 지금의 문래동이다. 무엇보다 임대료가 저렴했다. 한창호씨의 말로는 2005년 당시만 해도 문래동 철공소 거리는 “남자도 혼자서 길을 걸으면 움찔움찔하게 되는 곳”이었다. 소수의 예술가들이 개별적으로 문래동에 터를 잡긴 했지만 역동적인 예술가들의 움직임은 아직 움트기 전이었다. 미국 뉴욕 덤보댄스페스티벌에 참여한 뒤 한창호씨는 춤축제가 아니라 다양한 예술 장르를 끌어안은 다원축제를 머릿속으로 구상한다. 그렇게 뜻 맞는 예술가들과 의기투합해 2007년 첫 물레아트페스티벌을 열었다.
물레아트페스티벌의 ‘일꾼’이 아닌 ‘춤꾼’ 한창호씨는 중학교 때부터 태권도 선수로 살았다. 체대에 다니던 그는 무용 관련 교양수업을 듣던 중 어느 교수의 권유로 춤을 배우게 된다. “늦바람, 춤바람이 무섭더라.” 이후 현대무용을 전공으로 삼은 그는 제도권 안에서 여러 시도를 해보려 하지만 번번이 좌절한다. 거리를 무대로 삼게 된 일은 그러니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나의 뿌리, 나의 일상에서 동시대의 현실에까지 눈을 돌려 몸으로 이미지를 그려내는 한창호씨는 궁극적으로 “사람 냄새 나는 작품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는 ‘건강함, 아름다움, 진정성’이란 단어들을 유독 힘주어 말했다.
맥주를 권하며 문래동 예술가의 일상을 엿보게 해준 오쿠다는 비눗방울 퍼포먼스 예술가다. “인터뷰 안 좋아해요. 그래도 예쁘니까…”라고 수준 높은 농담을 기자에게 던진 이 일본인 예술가는 현재 문래동 철공소 거리에 작업실 겸 거처를 마련한 상태다. 일본 돗토리현이 고향이며, 1981년 마임 활동을 시작했다. 1988년부터는 비눗방울 퍼포먼스로 무대에 서는 일이 잦았다. 한국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건 1994년, 한·일 마임예술가들끼리 교류를 하면서부터다. 문래동에는 4년쯤 전에 발을 들였다. 4년 동안 문래동에 예술가가 들고 나는 것을 지켜본 그는 최근 문래동이 변했다고 말했다. “솔직하게 얘기해도 되나? ‘문래예술공장’이 생기자 재미가 없어졌다. 위로부터 지원이 많아지니까 창작활동이 하고 싶어서 혼자서 으쌰으쌰 하려는 사람들의 ‘어떤 힘’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그럼에도 “철거해야 하니 나가달라고 할 때까지는 이곳에 살며 작업실을 유지해나가겠다”고 했다. 그에겐 장소보다 사람이 중요한 것 같았다. “한국과 교류하며 마임하는 친구들이 생긴 게 제일 소중하다. 한국이란 나라를 좋아해서 오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여기 온다.”
마임예술가 이정훈씨는 ‘한때’ 문래동 예술가였다. 2010년 1년 남짓을 산 뒤 문래동 생활을 정리했다. “가난한 예술촌은 겨울이 힘들다. 난방비에 몸이 움츠러들게 된다. 그렇기에 따뜻한 일들도 생겨나는 거지만.” 수도관이 강추위에 꽝 하고 터지면 작업실도 그대로 스케이트장이 되기 십상이다. 그럴 때면 4층짜리 건물에 함께 입주해 있는 작가들이 얼음을 깨주러 올라온다. 지하의 퍼포먼스 작가, 2층의 타악 예술가, 3층의 만화·일러스트 작가들이 4층의 이정훈씨 작업실에 모여 훈훈하게 일손을 나눈다. 자연히 작업실은 공연장이 됐다가 술집이 됐다가 카페가 됐다가 토론의 장이 된다. “너나없이 모두가 작가였다. 어쩜 다들 말도 직설화법으로 하는지. 그런 얘기는 또 작품에 많이 반영된다. 지금은 문래동 작가가 아니지만 다시 문래동에 들어가라면 갈 마음이 있다. 매력적인 곳이다.”
삶과 예술이 자립적으로 얽히는 공간
가벼워진 맥주캔이 바닥에 쌓여갈 때쯤 누군가가 걸어왔다. “오늘 공연 다 끝났어요?” 그는 문래동의 유명인사, 세현정밀 사장 김덕진씨다. “열아홉에 문래동 와서 지금이 마흔둘인데, 그래도 이 동네에선 막내예요. 취미로 10년째 사진을 찍고 있고요. 저한테 사진 맡기면 이렇게 맥주 마시는 장면도 찍고, 잘 찍을 텐데. 허허허.” 모두가 따라 허허허. 고유한 색을 지닌 씨줄과 날줄이 엮여 한 폭의 아름다운 천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문래동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노동자와 주민과 예술가들이 자립적으로 동시에 상호적으로 얽히고설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움직임, 그 작지만 확실한 움직임을 이날 보았다. 녹슨 철공소 간판이 빽빽하게 걸린 문래동 거리를 예술가들이 비틀거리며 걸었다. 그 걸음이 예뻤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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