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는 70만 부가 팔린 청소년 소설계의 베스트셀러다. 창비 쪽에 따르면 발간 직후 50만 부가 팔리고, 그 뒤 매년 10만 부씩 팔렸다니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인상이다. ‘완득이’라는 이야깃거리는 연극 로 공연된 데 이어 영화 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이야깃거리라고 해도 창작자는 뭔가 새로운 이야깃거리로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 관객들은 새로운 무언가를 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 마음이 만나는 지점에서 창작이 시작된다. 출판 3년, 활자 밖에서 육신을 얻은 완득이의 목소리는 어떤 것일까?
완득이는 착했다
기억의 시계를 2008년으로 되돌려보자면 기성세대에게 분노하는 청소년들의 좌충우돌 성장담에 질릴 때쯤 소설 가 나타났다. ‘완득이’가 아름다운 것은 선함을 열망하기 때문이다. 완득이는 우리 사회 부조리의 한복판에 있다. 아버지가 돈 벌러 갈 때면 방치되고, 아버지의 장애 때문에 수시로 난쟁이 아들이라 불리고, 학교에서 공개적으로 생활수급품을 받으며 자존심을 죽여야 하는 처지에다 뒤늦게 나타난 외국인 노동자 어머니라는 출생의 비밀까지. 덕분에 항상 교실 맨 뒤편에 홀로 앉는 전형적인 ‘독고다이 남성형’ 주인공이다. 게다가 말보다 주먹이 먼저 뜨는 10대다. 그러나 뒤늦게 나타난 완득이 어머니와 완득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까지, 독자들은 완득이가 자기 안에 갇혀 있는 10대라는 것을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여태 세상 뒤에 숨어 살던 완득이가 밖으로 나오고 있잖아요. …누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한대요.” 이것은 소설의 화자인 완득이가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 어쩌면 독자에게 숨겼던 이야기다. 아니 어쩌면 독자만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완득이가 자신과 관련 없는 일에 지독히도 무심한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촉을 세우고 있었으면서도 겉으로 비집고 나오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우리 몸, 우리가 그렇게 데리고 살자.” 말미에 아버지가 화해를 청할 때쯤 우리는 음습하지 않은 성장의 기억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김동수 플레이하우스에서 10월8일까지 공연한 연극 의 완득이는 좀더 껄렁하다. 하고 싶은 말을 죽이기보다는 폼 잡기 좋아하는 전형적인 10대다. 연극을 보러온 관객은 시시때때로 주먹을 휘두르는 완득이에게 환호하고, 담임 선생인 똥주는 관객을 학생으로 다루며 연극 속으로 끌어들인다. 관객과 호흡을 중시하는 현장 예술 형식에 맞춰 진화한 결과일 것이다.
영화의 완득이도 우울한 그늘을 지녔지만 본질적으로는 유쾌한 청춘스타 같은 캐릭터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완득이의 외로운 마음에 주목한다. 가난, 장애인 아버지, 결손가정, 이만하면 삐뚤어져야 할 조건을 고루 갖추었다고 생각하고 가출을 해본다. 그래봤자 아무도 없는 집에 다시 돌아와서 “집 나갑니다”라는 쪽지를 치워야 하는 것은 자신이다. 완득이가 착한 것처럼 완득이 주변 사람은 모두 착하다. 영화와 연극은 착한 사람들을 고스란히 이어받는다. “가난한 게 쪽팔린 게 아니라, 굶어서 죽는 게 쪽팔린 거야.” 영화와 연극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하느님, 똥주를 제발 죽여주세요.” 완득이의 기도는 사실은 세상 밖으로 자신을 끄집어내려는 멘토에 대한 앙탈에 불과하다는 것을 연극은 무시하고 넘어가고 영화는 자상하게 그려낸다.
공통점은 이것 말고도 수두룩하다. 영화 는 원작을 생동감 있게, 그리고 더 재미있게 잘 살려낸 영화다. 원작자인 김려령 작가는 “영화를 보는 관객이 완득이와 같은 심장박동으로 서서히 달렸으면 하고, 동주의 천연덕스러운 배려에 같이 감사했으면 한다”고 했다. 꿈을 향해 달려가지만 아직 그 꿈까지는 거리가 먼 완득이는 유아인을 만나, 아슬아슬한 제자 하나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조폭 스승 똥주는 김윤석을 통해 빛을 얻었다. 그러나 닮은 점을 좇는 것만으로 괜찮은 것일까? 원작소설을 굳이 여러 매체로 변주하는 데는 활자화된 장면을 비주얼로 그려내는 것 말고도 신통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해석의 차이가 아닐까.
씩씩한 완득이의 슬픔
영화를 만든 이한 감독은 시사회에서 “원작소설에는 완득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있어요. 아주 좋은 마음인데, 그 마음이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도 왜곡 없이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는 그 의도를 성취한 영화이기도 하다. 다만 “저 미련한 사람 때문에 가슴이 뜨겁다”던 소설 속 완득이의 눅진한 정서는 영화에선 완득이에게가 아니라 “세상 탓하고 남 원망이나 하다 인생 종칠까봐” 완득이를 뜨겁게 지켜보는 선생에게로 전이된 인상이다. 영화에서 완득이의 마음을 짚을 수 있는 대목은 수업 시간에 밀레의 그림을 해석하는 장면이다. “저 여자들 다 자기들 나라에서 배울 만큼 배운 사람입니다”라는 완득이의 말처럼 완득이는 그림 속 낯선 여자들에게서 어머니를 본다.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강해질 필요가 있다. 치사해도 어쩔 수 없다. 싸움은 이기고 봐야 하니까”라는 그의 인생 신조를 저 여자들도 지니고 있다고 우긴다.
2008년 는 도시 빈민과 장애인, 다문화가정에 접근하는 작가의 경쾌한 감각으로 빛을 얻었다. 2011년 도시 속 가 여전히 난생처음 만나는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라면 드실래요”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혼혈’이라는 사실(사실은 우리 모두가 혼혈이다)을 알게 되는 소년, 꼽추 장애인 아버지를 앞장서 보호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쪽팔려 하고 감추려 하는 소년이 가질 법한 내면의 혼돈은 어디로 간 걸까? 물론 착한 정서도 경쟁력이다. 그걸 알면서도 질문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관객에겐 완득이보다는 어른들의 마음에 이입하는 길이 더 가까운 탓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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