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연 확장’과 그 결과에 따른 ‘내포 확대’, 그리고 ‘다양성 제고’. 이 세 기치가 2011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에서 한국 영화들을 선정하며 역점을 두었던 방향이다. 단편과 다큐멘터리를 한데 모은 와이드 앵글 섹션은 논외로 치자. 개막작 부터 특별상영작 에 이르는 한국 영화 총 34편의 면모는 진정 다채롭다.
애니메이션, 3D, 장르물 등 새로 주목받아
다양성은 선정된 영화들의 외연에서 두드러진다. 유형부터 전례 없이 다채롭다. 3D 영화가 3편이나 된다. 을 3D로 변환해 첫선을 보이는 갈라 프레젠테이션의 와, 90% 이상 3D 카메라로 촬영돼 비전에서 선보이는 저예산 3D 영화 과 가 그 주인공이다. 세 영화는 향후 3D 담론과 연관해 어떤 계기가 될 전망이다. 특히 의 존재감은 예사롭지 않다. 여러모로 올해 BIFF의 발견으로서 손색없는 문제적 소품이다. 순제작비 7천만원을 들여 100% 3D 영화로 탄생한 트랜스 미스터리 드라마다. 가출해 무당이 된 처를 찾아나선 교수와, 그 처의 행방을 교수에게 통보하는 흥신소 직원을 축으로 펼쳐진다. 발군의 내러티브 추동력 등 영화적 수준에 대해선 굳이 말을 보태지 않으련다. 저예산 3D 영화지만 입체 효과가 단연 주목할 만하다. 국내외적으로 그 생명력과 유효성 등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논란에 오르고 있는 3D 테크놀로지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하기 충분하다.
두 편의 애니메이션도 주목할 만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동안 ‘돈 잡아먹는 하마’ 취급을 받아왔던 국산 애니메이션의 신기원을 연 (오픈 시네마)에 대해선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성인용 잔혹 스릴러 은 과는 또 다른 의의를 가질 문제적 애니메이션이다. 1998년 이후 줄곧 1인 작업 시스템으로 작업해온 연상호 감독이 1억5천만원의 저예산으로 빚어낸 장편 데뷔작이다. 수준급 작화나 여느 웰메이드 극영화 못지않은 진지한 내러티브 등이 인상적이다.
옴니버스(성) 영화 3편도 2011 BIFF를 넘어 한국 영화 전반의 다양성을 증거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키스를 소재로 신예 감독 8명이 합심해 완성시킨 8편의 흥미진진한 단편 모음 (파노라마), 박철수 감독과 김태식 감독의 불륜에 대한 발칙한 상상력을 극화한 2개의 중편 묶음 (파노라마), 4명의 거장 이장호·박철수·정지영·이두용이 영화적 연륜을 짙게 풍기는 ‘4인 4색’ 이다. 이들은 한국 영화의 활력과 개성을 웅변하는 존재다.
장르에 눈길을 주면 한층 더 다채롭다. 파노라마 섹션의 은 한국형 블록버스터 사극인 반면, 뉴커런츠의 는 7천만원의 저예산으로 만든 전기성 사극이다. 은 한국을 넘어 세계 전쟁영화사에 남을 문제적 ‘전장 영화’다. 는 감동의 스포츠 영화다. 와 은 좀처럼 조우하기 쉽지 않은, 분단 드라마다. (이상 파노라마)은 탈(脫)조폭성 감성 멜로다. 은 반(反)음악영화를 표방하는 음악영화다. (이상 비전)는 반스토리성 복합 내러티브 영화다.
이렇듯 올해 BIFF의 한국 영화들을 한두 가지 경향으로 뭉뚱그려 말하기란 거의 ‘미션 임파서블’이다. 그럼에도 굳이 그 경향을 짚는다면 ‘가족’ ‘사랑’ 등 전통적 소재와 주제를 들어 몇몇 영화를 묶는 건 가능하다. 가슴 아린 성장영화이기도 한 (뉴커런츠)는 통렬한 가족 해체 드라마다. 는 가족 드라마 형식을 빌린, ‘입양대국’ 대한민국에 대한 슬픈 알레고리다. 는 가족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샴쌍둥이 형제 드라마다. (이상 비전)는 더불어 삶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웰메이드 ‘유사 가족’ 드라마다.
개막작 은 감동의 ‘치명적’ 러브 스토리다. 파노라마 섹션의 적잖은 영화들이 직간접적으로 사랑의 다양한 양상을 다룬다. 등 그 예가 수두룩하다.
통속을 비통속적으로 극화하는 방식
흥미로운 점은 통속적 소재와 주제를 극화하는, 비통속적 방식이라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다. 흔히 가족 사수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는 어머니를 가족 해체의 주범으로 내세우지 않는가. 이 영화를 보기가 여간 만만치 않은 건 무엇보다 역발상적 설정 때문이다. 비통속적인 건, 지극히 통속적 외양을 띤 도 마찬가지다. 점차 눈이 멀어가는 장애녀 정화(한효주)가 과거의 어떤 상처 때문에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전직 복서 철민(소지섭)을 ‘구원’한다. 그로써 영화는 육체적 장애가 정신적 불구를 치유하는 과정을 제시한다.
그러고 보니 적잖은 영화들이 장애 및 다문화 등 현대의 핵심적 이슈를 직간접적으로 짚는다. 등이다. 그 점에서 특히 는 큰 주목감이다. 완득의 아버지는 ‘꼽추’로 칭해지는 장애인이며, 엄마는 필리핀 여인이다. 게다가 담임선생은 완득 못지않은 트러블메이커다. 한데 그들에겐 이른바 ‘정상인’에게 부재하는 절대 덕목이 있다. 다름 아닌 진정한 사랑이다. 아름답지 않은가. 이만하면 올해 BIFF의 방향성을 대략이나마 피력한 것 아닐까.
전찬일 영화평론가·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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