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4일 는 유럽연합(EU)이 비밀리에 유로 재무장관들에게 보고서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유로존의 국가 부채 위기가 은행권으로 확산돼 신용경색이 재발할 위험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9월16일(현지시각)부터 이틀 동안 폴란드에서 열리는 유로존 재무장관 회동을 앞두고 EU 산하 경제재정위원회(EFC)가 제출한 이 보고서는 금융위기 다시 도래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금융 탙규제’라는 강력한 도그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월호
금융위기 뒤 3년, 달라진 것은 없다. 세계경제는 또 한 번 벼랑 끝에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브라임 와르드 미국 버클리대학 교수는 한국판 9월호에서 “2011년 여름은 모든 면에서 2008년 가을과 닮아 있다”며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짧은 막간극이 있긴 했다”며 “세계경제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간 정치·경제 엘리트들은 과거에 누리던 영화를 잃고 와신상담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금융 위기 뒤, 금융감독 구조개편, 자기자본비율 강화, 임원 보너스 상한제, 금융소비자 보호 등 새로운 법률과 제도들이 도입됐지만 실제 적용은 이뤄지지 않았다.
와르드 교수는 “지난 30년 동안 자리잡은 ‘금융 탈규제’라는 도그마가 쉽게 깨질 것 같지 않다”며 “국가와 금융시장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국가에 불리하다”고 단언한다. “국가들의 개입 방식은 시장을 안심시키고 금융기관을 보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도 금융기관들은 국가 채무를 걸고넘어지며 정부를 조여오고 있다.” EU의 비밀 보고서는 이런 상황을 방증한다. 그는 결국 “금융화가 너무 진전된 현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암울한 진단을 내린다. 언제나 희망은 흐릿하고, 불안은 또렷한 법.
분노할 일은 또 있다. 브누아 랄루 프랑스 릴1대학 경제학 전임강사는 “기아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이미지가 전세계로 확산되는 동안, 이 재앙이 부분적으로 이 지역 토지에 대한 투자 열풍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은폐되었다”며 “에티오피아에서는 수천ha의 토지가 외국 기업에 넘어가면서 식량 자급을 위한 농지가 대규모 수출용 작물 재배 농장으로 대체되었다”고 지적했다. 랄루 강사는 말한다. 이 부조리한 현실 뒤에 자유시장이라는 논리로 투자 열기를 부추기는 세계은행이 있다는 사실을.
은폐는 곳곳에서 이뤄진다. 줄리앵 브리고 특파원은 가사도우미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서 일하지만 ‘전문가’라는 미명으로 은폐되는 가정부의 불공정 노동을 필리핀 이주노동자의 세계를 통해 파헤친다. 그는 “필리핀에서는 의무교육과 연수를 시킨 가정부를 해외로 ‘수출’하는 것이 국가산업이 되다시피 했다”며 “이들 10만 명 이상이 홍콩에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희망은 ‘노동자도 시민이다’라고 외치는 일에서 비롯될 터다. 필리핀 가정부들이 인간다운 노동을 위해 노조를 결성하는 일과 희망버스는 그래서 하나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말한다. “희망버스는 아무런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없는 과잉의 정치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이 국가에 대한 대책 없는 자기주장이라는 측면에서 ‘순수 정치’로서 의미를 가진다. 이것이야말로 정치적 국면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한국 사회는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저기 68혁명의 구호가 떠오른다. “적들이 들어줄 수 없는 것을 요구하자!”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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