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보라, 삶이 얼마나 쓸쓸한지”

<댄스 타운>으로 그라나다·댈러스 영화제 수상한 전규환 감독…“40대 정서 알아보는 40대 관객이 좋다”
등록 2011-09-22 12:07 수정 2020-05-02 04:26
영화 <댄스 타운>의 한 장면. 트리필름 제공

영화 <댄스 타운>의 한 장면. 트리필름 제공

전규환 감독은 2008년부터 을 연년생으로 뽑아낸 다산의 감독이다. 이 지난 3월 개봉한 데 이어, 9월1일에는 이, 9월15일에는 이 개봉한다. 3년치 농사를 한 해에 수확하는 셈이다. 해외 반응은 더 뜨겁다. 이 스페인 그라나다영화제와 미국 댈러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9월 말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전작전이 열릴 예정이다. 을 보고 그의 팬이 되었다는 황진미 영화평론가가 전규환 감독을 만났다. _편집자


황진미(이하 황): 영화 개봉에다 수상, 감회가 남다르겠다.

전규환(이하 전): 해외영화제 수상은 기분만 좋지 별 의미는 없다. 상금이 좀 되면, 제작진들 회식하는 거고. 뉴욕현대미술관 전작전은 이례적인데, 그쪽 관장이 베를린영화제에서 을 본 뒤 타운시리즈 특별전을 열고 싶다고 보내달라더라.

황: 벌써 새 영화를 찍었다고 들었다.
전: 라는 일종의 멜로영화다. 제목은 힌두교 성지인 갠지스 강가의 지명이다. 거기서 35%쯤 찍었고, 서울에서 65%를 찍었다. 위선적인 출판사 대표와 여성작가, 그리고 무슬림 폭탄테러리스트가 나온다. 오는 11월 촬영에 들어갈 는 꼽추(척추장애인)가 나오는 영화다.


새 영화 촬영 끝내

영화 <댄스 타운>의 전규환 감독. 한겨레 김봉규

영화 <댄스 타운>의 전규환 감독. 한겨레 김봉규

황: 대단하다. 는 텔레비전 연기자인 윤동환이 주연이라 들었다. 타운 시리즈엔 배우들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이들의 연기도 참 좋았는데, 이제 배우군이 바뀌는 건가.

전: 의 이준혁이나 의 라미란은 여러 영화에 조연과 단역으로 많이 나왔던 배우다. 내 영화에선 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끌어내려고 많이 노력했다. 자꾸 과장되게 몸을 쓰고 판에 박힌 연기를 하려는 걸 많이 억제했다. 윤동환이라는 배우는 참 흥미로운 사람이다. 사회문제나 종교철학에도 관심이 많고.

황: 전 감독은 배우 매니지먼트를 하며 촬영장을 구경한 게 영화 작업을 경험한 전부라고 들었다. 단편을 찍지도 조연출을 거치지도 않은 채 장편을 이렇게 계속 찍는 게 가능한가. 감독지망생들이라면 몹시 궁금할 노릇이다.

전: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많이 봤다. 영화를 찍고 싶으면 아무 카메라나 들고 나가 찍으면 된다. 스마트폰도 가능하다. 문제는 감독지망생들이 ‘어떻게 하면 저 돈을 주워 먹을까’ 하는 마음으로 영화판을 바라보니까 어려운 거다. 내 영화는 국내 주요 관객층인 20대의 정서에 맞지 않아서 투자가 어렵다. 개봉을 해도 교차 상영되기 때문에 관객을 만나기 힘들다. 이건 시장논리에선 어쩔 수 없다. 그걸 보완할 법과 문화정책이 있어야 하는데, 국내 문화정책은 20대 중심의 한류에만 치중한다.

황: 우리나라 멜로영화에는 20대가 나오지만, 정서는 거의 10대 수준이다. 그에 비하면 전 감독의 영화는 확실히 ‘19금’이다. 노출 수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정서가 그렇다. 전 감독의 영화에서 섹스는 쾌락이나 금기의 문제가 아니라, 죄다 쓸쓸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에서 여주인공이 모텔에서 콘돔을 들고 우는 장면이나, 마담이 자기 엉덩이를 잡고 자위하는 남자를 돌아보는 장면 등이 그렇다. ‘섹스를 한다, 만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할 수도 있지만, 합일되지 않는 섹스는 쓸쓸하단 얘기다. 반면 에서 남편이 정림과 누워 “임자 몸은 참 부드러워. 냄새도 좋고”라고 말하는 건 어떤 에로틱한 수사보다 살갑더라.

전: 역시 40대라서 40대의 정서를 알아보는구나! 해외 영화제에선 중·장년층 관객이 많아서, 이런 대화를 하며 서로 배우는 게 참 좋더라.

황: 에서 소아성범죄자를 보는 시선이 참 엄정하더라. 그의 딱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마지막 순간 카메라는 그를 연민하거나 애도하지 않는다. 에서 탈북여성을 바라보는 시선도 정형화돼 있지 않다. 북한의 부부싸움 장면은 가부장적 억압과 수령님 사진으로 대표되는 국가적 억압이 한꺼번에 느껴지고, 남한에서 경찰의 대사엔 탈북민을 일종의 이주노동자로 보는 시각이 표출된다.

전: 애도는 딱한 모습을 비춘 것으로 다 했으니 필요 없지. 탈북민은 내가 서울에서 영화를 찍었으니 탈북민이지, 파리에서 찍었으면 이주노동자였을 것이다. 다르지 않다.


인물보다 관계나 배경에 주목

황: 에서 국가정보원 여직원은 편모와 살고, 의 조율사는 편부와 산다. 이유가 있는가.

전: 생각해봐라. 나이 든 자식이 편부모랑 함께 사는 게 얼마나 쓸쓸할지. 사람들이 외롭다고 하면 주로 혼자 사는 걸 생각하는데, 혼자 살면 외로움을 발산할 수나 있지. 잔소리하는 편부모, 말도 잘 안 통하고 지긋지긋하지만 헤어질 수도 없고….

황: 다중 플롯으로 여러 인물들을 사슬처럼 보여주는 영화는 꽤 있지만, 이들이 하나의 그물처럼 보인 영화는 타운 시리즈가 유일한 것 같다.

전: 다른 영화들이 인물에 집중하는 반면, 나는 인물이 빠져나가도 남는 관계나 배경에 주목하니까.

황: 도시라는 생태계를 하나의 군집으로 바라보는 인류학적 시선이 돋보인다. 그런 시선으로 멜로영화를 찍었다니, 가 정말 궁금하다. 부산영화제에서 보자.

황진미 영화평론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