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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차트를 섭렵하라

빌보드 ‘케이팝 차트’, ‘인디고 차트’ 등 흥미로운 음악 차트의 등장… 단조로운 음악시장을 풍성하게 하는 지름길
등록 2011-09-08 08:13 수정 2020-05-02 19:26

“어떤 음악을 들을까? 요즘 어떤 음악이 괜찮지?” 음악을 듣고 싶은데 마땅히 떠오르는 곡이 없을 때 먼저 찾는 곳이 음악 차트다. 음악 차트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음악을 한눈에 보여주는 순위표이자 음악계 흐름과 판도, 음악산업을 가장 잘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다. 음악과 관련한 이슈를 만들고 대중의 관심을 지속시키는 것도 차트의 중요한 구실이다. 차트는 경쟁을 통해 1위라는 순위에 상징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상위권에 진입한 음악을 더불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빌보드만의 알고리즘으로 선정

미국에는 빌보드 차트가 있고, 일본에는 오리콘 차트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음악시장을 대표할 만한 차트가 없다. 2005년까지는 TV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음악 차트를 대신했지만, 순위 선정에 잡음이 나오자 일부 가요 프로그램은 순위 발표를 없앴다. 이후 음악산업은 빠르게 싱글 중심의 디지털 음원 시장 중심으로 바뀌었고, 디지털 음원을 들을 수 있는 온라인 음원 사이트 차트가 음악 차트의 자리를 대신했다.
온라인 음원 사이트 차트는 장단점이 뚜렷하다. 실시간성이 강조돼 ‘이 순간’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이 뭔지 알 수 있고,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해당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또 가요 프로그램 순위보다는 아이돌 그룹의 점유율이 낮다는 점에서 조금이나마 음악적 다양성을 보여준다. 단점은 음악성보다는 화제성이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리고 쉽게 들을 수 있어 실시간 차트 1위에서 10위까지 음악만 짧고 굵게 무한 반복되며 소비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음식점에 가도, 커피숍에 가도, 옷가게에 가도 늘 같은 음악이 들려온다. 음원 사이트가 음원 유통까지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보이지 않는 손’이 차트에 영향을 끼친다는 우려도 있다. 온라인 음원 사이트 차트의 한계는 이렇듯 뚜렷하다.
지난해 2월 ‘한국판 빌보드 차트’를 표방한 ‘가온 차트’가 문을 열었다.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가 만드는 가온 차트는 디지털 음원 사이트와 음반유통사 등을 대상으로 디지털 차트와 앨범 차트 등을 선정한다. 이 차트가 디지털 음원 차트에 비해 공정성은 확보했는지 모르지만 인지도가 낮다는 게 치명적인 약점이다. 디지털 음원 사이트의 순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가온 차트에서 뚜렷한 차별성을 찾을 수 없는 이유다.
최근 흥미로운 음악 차트가 몇 개 등장했다. 먼저 미국 대중음악 잡지 의 순위 차트인 빌보드 차트에 신설된 ‘케이팝 차트’다. 빌보드의 한국 자회사인 빌보드코리아가 발표하는 케이팝 차트는 디지털 음원을 1위부터 100위까지 집계해 매주 금요일에 발표한다. 빌보드 케이팝 차트는 미국뿐 아니라 일본, 러시아, 브라질 등 빌보드 네트워크에 공개된다. 케이팝 차트는 13개 온라인 음원 사이트와 3개 이동통신사 등의 순위 정보를 모아 빌보드만의 차트 알고리즘으로 계산해 선정된다. 빌보드코리아의 이희석 이사는 “빌보드 본사와 빌보드코리아가 1년 동안 한국 음악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인디고 차트 제공

인디고 차트 제공

더없이 고마운 ‘인디고 차트’

빌보드코리아의 케이팝 차트가 디지털 음원 사이트의 차트와 차별화될 수 있을까. 실제 케이팝 차트를 보면 역시 여타 디지털 음원 사이트 순위와 비슷하다. 이에 대해 이희석 이사는 “결과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차트 집계 과정에서 빌보드만의 차트 알고리즘 계산식 등이 들어가 한국의 음악 트렌드를 더 정확히 반영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빌보드 케이팝 차트가 다른 차트와 차별화될 수 있는 지점은 차트 자체의 공정성이나 대표성보다는 ‘빌보드’의 인지도를 발판으로 국내 음악이 차트를 통해 미국 등에 더 수월하게 알려질 수 있다는 점이라는 분석이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차트는 국내 인디음악을 대상으로 한 ‘인디고 차트’다. 미러볼뮤직·드럭레코드 등 인디음악계가 합심해 지난 6월 창간한 인디고 차트는 YES24·인터파크·알라딘 등 인터넷 음반 쇼핑몰과 향뮤직 등 레코드점의 인디음반 판매량을 모아 인디음악의 음반 판매 순위를 격주로 보여준다. 이 차트는 포털 사이트 다음 등을 통해 온라인으로 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종이에 인쇄돼 신나라레코드와 미화당 등 음반가게 등에 비치된다.

디지털 음원 사이트 등에서는 가요에 밀려 순위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디음악을 전면에 내세운 인디고 차트는, 인디음악에 관심이 있지만 뭘 들어야 할지 잘 모르는 이들에게 더없이 고마운 차트다. 인디음악계에서도 대중의 관심과 취향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차트가 생겼다는 점에서 반가워한다. 인디고 차트가 자리를 잡고 더 많이 알려지면 음악적 다양성 확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대중음악평론가 김학선씨는 “음악 장르가 세분화된 차트가 많아지는 건 확실히 긍정적”이라며 “그러나 인디음악 내에서도 인디로 치부되는 다른 장르의 음악을 좀더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국내 음악시장을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차트’는 없지만, 객관적이고 다양하게 음악시장을 보여주는 여러 음악 차트의 등장은 음악시장을 풍성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서 진열해놓은 실시간 음원 차트를 1위부터 10위까지 반복해 듣기보다 여러 차트를 찾아다니며 음악 듣는 폭을 조금씩 넓히는 것은 소비자로서 음악시장의 다양성과 건강함에 일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는 점도 기억해두자.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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