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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 바야르종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등록 2011-07-10 19:58 수정 2020-05-03 04:26
노르망 바야르종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노르망 바야르종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붉은색 사과를 본 사람은, 그 사과를 비추는 조명을 바꿀 경우 사과 빛깔이 달라지는데도 여전히 붉다고 생각한다. 신경학자 테런스 하인스의 실험이다. 사과를 상자 안에 넣고 그것이 사과라는 걸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일부분만 보이게 조그만 구멍을 뚫어 피실험자에게 보여준다. 그런 뒤 그 사과를 비추는 조명을 바꾸고 다시 그것을 보여주면 피실험자는 그걸 다른 색으로 인식한다. 상자 속의 사과가 사과인 줄 몰랐기 때문에 ‘사과는 붉은색’이라는 배경지식(고정관념)에 좌우되지 않은 것이다.

권위와 다수에 반하여

나폴레옹이 말한다. “주세페, 저 병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나? 터무니없는 소리만 해대는데.” “폐하, 저 병사를 장군으로 승진시키십시오. 그럼 그의 말이 흠잡을 데 없이 들리실 겁니다.” 이건 ‘권위에 호소하기’의 역설이다. ‘군중에 호소하기’도 있다. 예컨대 “×를 마셔보세요.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니까!” 같은 광고문구들이 대표적이다. 그 맥주가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는 게 그것들의 품질이 가장 좋다는 걸 보장하진 않는다.

“사람들은 왜 를 가장 많이 볼까요?”라는 광고문구도 다르지 않다. 부분이 옳으면 전체가 옳다고 주장하는 ‘구성의 오류’, 그 반대로 전체가 옳으면 부분도 옳다고 주장하는 ‘분할의 오류’도 있다.

대안적 가치를 추구해온 캐나다 퀘벡대학 교육학과 교수 노르망 바야르종의 은 이런 흥미로운 사례를 무수히 제시한다. 그가 이 책을 쓴 것은 신비주의나 초과학, 뉴에이지 등이 횡행하고 학계와 지식계가 성찰과 판단력과 합리성을 잃어버린 채 추락해버린 현실이 야기하는 인식론적 문제, 그리고 정치적 문제를 좌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민주시민으로서 이 세계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것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충분하게, 또 다양한 방향에서 제공받고 있을까? …많은 사람이 걱정하듯이, 나도 어느 한 방향으로 쏠린 언론의 실상이 걱정스럽다.”

그는 “고객 중심의 사고방식과 경제지상주의”가 판치는 교육계도 참여민주주의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심각한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교육’을 ‘세뇌’로 바꿔 읽는 것이 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다는 노엄 촘스키의 얘기에 동의한다. 이 책은 이런 현실에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로 맞설 수 있도록 해주는 기초적인 생각의 무기, 성찰의 수단을 제공하겠다는 의도로 쓰였다. 원래 제목 ‘Petit Cours D’Autodefense Intellectuelle’은 ‘지적인 자기방어 능력을 키우기 위한 단기 코스’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비판적 사고 훈련 입문서다. 따라서 어렵지 않다. 언어, 숫자, 경험, 과학, 미디어 등 5개 장으로 나눠 요령 있게 펼치는 악성 프로파간다 깨부수기 훈련 과정은 흡인력이 있다.

통계상의 표준편차를 설명한 뒤 이런 예를 든다. 1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도는 53%였는데, 3월의 같은 여론조사에서는 56%였다. 이를 토대로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갔다고 보도해도 문제가 없을까? 이 조사의 정확도가 95%, 표준오차 범위 ±5%라면 그 보도는 거짓일 수 있다. 이 표준오차 범위라면 1월 지지율은 48~58%고 3월은 51~61%다. 따라서 1월에 58%였던 지지율이 3월엔 51%로 추락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숫자의 이면을 읽어라

‘숫자 공포증을 치유하는 10가지 비법’에는 이런 얘기도 있다. 지난해 ㄱ시와 ㄴ시에서 각각 50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5년 전엔 ㄱ시에 42건, ㄴ시에선 29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5년간 두 도시의 살인사건 증가율을 백분율로 표시하면 ㄱ시는 19%, ㄴ시는 72%다. 따라서 ㄱ시 쪽 치안이 더 나을까?

지은이는 신문을 볼 때 이것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ㄱ시는 지난해 인구가 60만 명이었고 5년 전에는 55만 명이었다. ㄴ시는 지난해 80만 명, 5년 전에는 45만 명이었다. 따라서 인구증가 속도까지 고려해 지난해 살인사건 발생률은 ㄱ시가 10만 명당 8.33명, ㄴ시가 10만 명당 6.25명이었다. 따라서 ㄴ시가 오히려 더 안전하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까지만 봐서도 안 된다. 5년 전 두 도시의 살인사건 발생률을 마찬가지의 인구비례로 계산하면 ㄱ시는 10만 명당 7.64명, ㄴ시는 10만 명당 6.44명이다. 따라서 5년 전과 지난해를 비교하면, ㄱ시는 증가율이 높아졌고 ㄴ시는 낮아졌다.

한승동 한겨레 논설위원 sdhan@hani.co.kr "_top">sdhan@hani.co.kr

* 노르망 바야르종 지음, 강주헌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1만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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