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김용규씨의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철학자 김용규씨가 쓴 은 ‘신’이라는 코드를 풀어 서양 문명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대담한 지적 도전이다. 지은이는 신이라는 존재가 서양문명의 심장부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심장에서 뻗어나간 핏줄이 문명의 세포 단위까지 퍼져 있기 때문에, 신을 이해하면 서양문명을 근본부터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독일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한 지은이는 자신이 벼린 두 지적 무기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서양의 철학과 신학이 어떻게 만나 어떤 교호작용을 거쳐 어떤 결과를 냈는지를 넓고도 깊게 탐색한다.
지은이는 서구 역사에서 문명의 결정적 전환점이 된 사건의 주인공으로 콘스탄티누스를 거명한다. 서기 312년 콘스탄티누스는 로마를 장악하고 있던 막센티우스와 서로마제국의 패권을 놓고 다투었다. 그해 10월28일 그가 군사를 이끌고 로마 테베레강에 도착했을 때, 하늘에 갑자기 십자가가 나타나고 그 위로 “이 표적으로 이기리라”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이 환영을 본 콘스탄티누스는 막센티우스 군대를 쳐부수고 서로마제국 황제가 되었다. 이때부터 로마군의 방패와 깃발에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휘장이 그려졌다. ‘라바룸’이라 불리는 이 휘장이 새겨진 로마군 깃발은 “서양문명의 중심축이 헬레니즘에서 헤브라이즘으로 옮겨가는 것을 알리는 징표이자 신호탄”이었다. 이어 제국을 지배하던 수많은 그리스·로마 신들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기독교 신이 차지했다. 한편 기독교 신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는 그리스 철학이 활용됐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 하나로 합쳐친 것이다. 그러나 서양 정신을 이룬 이 두 문명은 근원적으로 상충하는 성격을 품고 있어, 틈만 나면 갈등이 불거졌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 갈등을 얼핏 보여주는 것이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그린 시스티나 천장화 다. 이 천장화에서 미켈란젤로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장면은 ‘아담의 창조’인데, 여기서 흰 수염이 무성한 백발의 신이 갓 창조된 아담에게 영혼을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작품은 신학적·종교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백발의 노인은 기독교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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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가 아니라 그리스 신화의 주신 제우스의 모습이다.
지은이는 히브리인들이 신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그려내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구약성서 속의 신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조차 꺼린다. 그가 마지못해 자기 이름을 밝히는 곳은 ‘출애굽기’ 3장 14절인데, 여기서 그는 자신을 히브리어로 “에흐예 아세르 에흐예”라고 밝힌다. 기원전 3세기에 그리스어로 번역된 는 그 말을 “나는 있는 자다”라고 옮겼다. 그러나 히브리어의 본디 말뜻 그대로 옮기면 “나는 있다”라고 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구약성서의 신은 구체적인 존재물(존재자)이 아니다. 그는 규정할 수 없고 지칭할 수 없다. 신의 이름인 ‘야훼’도 ‘그는 있다’ ‘그는 존재한다’라는 뜻이라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요컨대, 구약의 신은 규정할 수 없고 한정할 수 없기에 이름이 없는, 모든 존재자 일체를 포괄하고 초월하는 ‘존재 자체’를 뜻한다.
이렇게 이해되는 히브리 신은 사람의 모습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신의 형상을 그려볼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신을 형상화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결코 포기하지 못한다”. 지은이는 성서 속의 묘사들을 조합해 히브리인들이 생각한 신을 이렇게 그려낸다. “시간도 끝도 없는 어떤 무한한 바다가 있다. 그 바다는 가만있지 않고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출렁이는데, 그 안에 일정한 법칙이 있어서 그 법칙에 따라 무수한 물방울들이 생겨났다 사라진다.” 지은이는 이 무한한 바다가 기독교의 신이며, 거기서 생겨났다 사라지는 물방울들이 세상 만물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신을 둘러싸고 벌어진 서양문명사의 대논쟁들, 그 문화적 파생물들을 추적한다. 지은이는 오늘날 삶에 근원적 의미를 주던 그 신이 죽어버린 뒤, 가치의 몰락과 의미의 소멸로 인간이 고통받고 있다면서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오늘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고명섭 기자 한겨레 에디터 부문 michael@hani.co.kr "_top">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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