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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하는 일상이여 돌아오라

노명우 교수의 <호모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
등록 2011-07-10 19:25 수정 2020-05-03 04:26
노명우 교수의 <호모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

노명우 교수의 <호모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

아마, 다들… 놀고 싶을 거다. 여행이든, 노래든, 운동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하지만 책상에 앉아서 ‘노는 상상’을 하다 보면, ‘이럴 시간에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데…’ 하는 자책감이 들기 십상이다. 당연하다. 개미처럼 일해야 하고 베짱이처럼 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호모파베르’(만드는 사람)의 교육환경 속에서 자랐으니까. 이렇게 놀고 싶은 욕망과 공부해야 한다는 의무가 충돌할 때 “인간의 본원적 특징은 사유나 노동이 아니라 놀이다”라는 말은 얼마나 매력적인 위안으로 다가오는지.

해도, 안 해도 그만인 놀이가 만든 예술

20세기 사상가 하위징아의 는 그런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는 호모파베르가 지배하는 세계를 비판했다. 나아가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를 통해 ‘놀 줄 모르는 병든 근대’의 탈출구를 제시하려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청소년·일반 독자가 읽기엔 상당히 학술적이다. 그래서 사회학자 노명우 아주대 교수가 하위징아의 책을 쉬운 사례와 해설로 재구성한 를 펴냈다.

저자는 하위징아가 언급한 사례에 따라, 때로는 원저에 없는 예를 들어가며 독자를 ‘호모루덴스의 시대’로 안내한다. 고대인들은 재판, 결혼과 같은 중대한 결정을 제비뽑기나 결투를 통해 내렸다. 놀이를 통해 신의 뜻, 운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고대철학은 지혜를 겨루는 수수께끼 놀이에서 시작됐고,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중세 기사들은 마상시합에서 피를 흘렸다. 호모루덴스들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놀이’에 운명과 목숨을 걸었으며, 명예와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리고 이런 과잉이 문명을 만들었다. 피라미드가 단지 기능적인 무덤이었다면, 그렇게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피라미드에는 사유나 노동을 뛰어넘는 어떤 것이 있다. 하위징아는 그것이 놀이라고 생각했다. 밥을 담고, 몸을 가리는 기능 이상을 원한 호모루덴스의 열정이 도자기와 패션을 만들었다. 예술은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호모루덴스가 자신과 벌이는 경쟁을 통해 발전했다.

과거의 사례들을 보면, 현재의 우리는 호모루덴스와 교차점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놀이정신’은 왜 사라진 걸까? 19세기는 대전환의 시대였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했다. 명예와 아름다움을 위한 놀이 경쟁은 이윤 극대화를 위한 전쟁으로 바뀌었다. 호모파베르는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인간형이었다. 하위징아는 이를 놀이정신의 쇠퇴로 읽었다. 나치즘은 떼지어

저급한 행동을 일삼는 타락한 놀이정신의 대표적 사례였다.

는 의 단순한 해설서이기를 거부한다. 호모루덴스를 통해 19세기를 ‘진보가 아닌 퇴행’으로 비판한 하위징아의 문제의식은 효과적이었다고 판단하지만, 소수 귀족만 누렸던 놀이정신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그린 ‘귀족적 시각’은 반대한다.

현대사회에서 놀이는 신분적 특권이 아니라, 노동 이외의 시간에 ‘노동의 대가’로 주어진다. 그렇다고 현대인들이 퇴근 뒤 자유시간에 과거 호모루덴스들의 놀이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현대 세계에는 노래방·놀이공원처럼 ‘잘 짜인 놀이 세계’를 돈 받고 파는 서비스가 성행한다. 진정한 놀이라기보다는 노동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수단이며, 호모파베르라는 자각을 잠시 잊게하는 마취제일 뿐이다.

디지털 세계를 현대적 놀이터로

지은이는 시장의 일방적 지배, 교환관계를 바로잡아야 호모루덴스의 귀환도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리눅스의 ‘오픈 소스’ 운동이나 위키피디아 같은 디지털 세계의 놀이에서 변화와 희망의 단서를 찾았다. 지식의 판매자와 구매자의 분화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 숨어 있는 오타쿠와 고수들에게 ‘놀이터’를 제공해 사회와의 연결망을 만들고, 이를 통해 놀이가 일상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설명이다.

전정윤 기자 한겨레 에디터부문 ggum@hani.co.kr "_top">ggum@hani.co.kr

* 노명우 지음, 사계절 펴냄,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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