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박범신, 황석영…. 수십 년 세월을 가로질러 다시 떠오르는 낯익은 이름들이다. 60대 소설가들이 서점가의 맨 앞 가판대를 장식하고 있다. 지난 5월13일 발간된 최인호의 는 출판사인 여백미디어 집계로 8만 부가 팔렸다. 6월1일 나온 황석영이 쓴 은 일주일도 안 돼 교보문고 소설 부문 판매순위 10위 안에 들었다. 세월을 잊은 듯 호투하는 60대 작가로는 박범신을 빼놓을 수 없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전하는 이야기로는, 지난해 박범신이 쓴 가 4만 부 넘게 팔렸고, 6월25일 등단 39년을 맞아 39번째 장편소설 를 낼 예정이라고 한다.
당의정 같은 자본주의 겨냥한 박범신
60대 작가들이 지금 제2의 부흥기를 맞고 있다면 그 후원자는 남성 독자다. 교보문고가 온·오프라인 판매를 종합한 결과를 보면 를 사간 사람 중 남성이 49.5%에 이른다. 특히 40~60대 남성이 전체 독자 중에서 29%의 비중을 차지한다. 은 남성 독자가 41.2%고, 40~60대 남성은 22%를 넘겼다. 교보문고가 2010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소설 부문 독자 중 남성이 38.5%, 그중 40~60대 남성은 평균 13% 정도였다. 평균치에 비해 60대 작가들의 남성 독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20~30대 여성 독자가 주류를 이룬 소설 시장에서 60대 소설가들이 독자의 스펙트럼을 대폭 늘려가고 있는 셈이다.
문학평론가 김영찬씨는 “지금까지 소설 독자는 한국문학을 잘 읽지 않았다. 게다가 40대를 넘긴 독자는 젊은 작가들이 쓴 소설을 자신의 현실에는 와닿지 않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로 생각하거나 낯설게 여겼다”고 했다. 그런데 나이 든 남성이 무엇에 끌려 다시 소설책을 펴드는 것일까. 젊은 작가에게는 부족하고, 그들에게는 있는 것. 김영찬씨는 그것을 “사회의 모순과 치열하게 대결하는 소설 본원의 자세”라고 분석한다. “왜 사회에 대해 발언하지 않느냐”며 젊은 작가들을 질타해온 박범신은 신작 를 내며 “자본주의가 가져다주는 꿀과 같은 안락함과 인공적인 아름다움은 가짜이고 당의정”이라고 칼을 빼들었다. “잘 차려입고 고상한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가슴속에 진짜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들이대고 싶었다”는 그는 새 소설에서 폭력, 그것도 가짜 종교와 거침없는 연쇄살인을 통해 한국 사회에 창과 칼을 들이댄다.
1970년대 현실과 닮은 황석영의 신작황석영의 은 어느 도시 외곽의 쓰레기 하치장을 무대로 삼는다. 자고 일어나도 언제나 고약한 냄새며 먼지와 파리떼가 끓는 곳, 괴물 같은 덤프트럭이 쏟아내는 온갖 물건들의 추악한 형상이 점거한 곳, 그러나 돈 없으면 어디나 못 살 데가 되는 세상에서 그다지 못 살 것도 없는 곳이다. 황석영의 새 소설은 시대를 짐작하기 어렵다. 모든 물건이 장애물이고 싸워서 없애야 할 괴물에 둘러싸인 나 혼자뿐인 곳. 여기가 어디이고 지금은 언제인가. 을 꾸던 1970년대 산동네에서 벗어나 우리가 이른 곳이 고작 여기였던 말인가.
그토록 유장한 세월과 서사를 거쳐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온 이는 황석영만이 아니다. 최인호는 새 소설 에서 1972년에 그가 쓴 단편 ‘타인의 방’에 처박아뒀던 불안에 떠는 현대인의 우울한 초상화를 다시 꺼내들었다. 이것은 자기 재생산이나 반복은 아닐까. 일찍부터 서사적 전통에 충실하고 원숙한 문체에 도달한 작가들이기에 어쩌면 60대 소설가들은 그동안 무엇을 이루었느냐보다는 무엇을 버렸느냐는 질문에 답해야 할지 모른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세 소설가 모두 청년작가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 동시대 독자와 소통하려고 끊임없이 변신을 꾀해 온 작가들”이라고 했다.
소설가 황석영과 박범신은 일찌감치 인터넷에 집을 짓고 연재를 시작했다. 매체는 물론 문체와 소재의 변화도 시도했다. 박범신은 최근 과 한 인터뷰에서 “1980년대식으로 써야 한다면, 나는 그만 쓰고 전 작가가 돼야 할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진 어떤 것을 다 버리진 않겠지만, 새로워지고 싶고, 그렇게 가고 있다고 느낀다”며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다룰 뜻을 내보였다. 출판평론가 한기호씨는 “황석영 소설 의 최근 3부작은 나이 든 독자에게는 낯선 시도다. 유장한 서사를 구사했던 그가 영상을 편집한 듯한 경쾌한 서사로 변신하며 젊은 독자를 끌어들이려고 부단한 노력을 했다”고 평가했다.
청년 최인호, 현대소설로의 귀환최인호가 버린 것은 무엇일까. 그는 5년 만에 소설을 내며 지난 30여 년 동안 몰두했던 역사·종교 소설을 버리고 등단 초기의 현대소설로 되돌아왔다고 선언했다. 주인공 케이는 갑자기 낯설어진 세상에서 갈팡질팡한다. 그가 쓰는 전화기와 화장품, 심지어 거울에 비친 얼굴까지 자기 것이 맞는지 끊임없이 확인한다. 주인공이 낯익은 사물과 낯선 사물, 익숙함과 이질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3일 동안 아내든 누나든 친구든, 심지어 자신의 기억까지 아무도 내가 진짜 나라는 것을 보증해주지 못한다. 작가는 정연한 세상을 버리고 무질서가 지배하는 세상을 택했다. 암 투병 중인 작가는 책머리에 “하느님께서 남은 인생을 더 허락해주신다면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시 출발하려 한다”고 남겼다. 60대 문학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 절실함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명태균 “검사가 황금폰 폐기하라 시켜”…공수처 고발 검토
[속보] 김용현 쪽 “계엄 때 김 전 장관이 ‘비상입법기구’ 쪽지 작성”
[속보] 윤석열 쪽 “대통령, 내일부터 헌재 모든 변론기일 출석”
대법관회의 “영장판사 방 의도적 파손”…야 “윤상현, 폭동의 시작”
경호처, 윤석열 체포 전 기관총 2정·실탄 80발 관저 배치했다
경호처 직원 “풀려난 김성훈, 어떤 보복 할지…직위 해제해달라”
[속보] 공수처 ‘조사불응’ 윤석열 강제구인 불발…구치소서 철수
‘법원 난동’ 체포된 내 친구…“회사 잘리게 생겼다”는데
[단독] 김성훈 “윤 지시 따라 비화폰 기록 지워라” 증거인멸 시도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