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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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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케이블을 타고


케이블 방송에서 부활한 1990년대 음악프로 <수요예술무대>, <이소라의 두 번째 프로포즈>…
좁은 시청층 극복하고 새롭고 다양한 음악 보여줄까
등록 2011-04-22 15:51 수정 2020-05-03 04:26

문화방송 가 지난해 10월 폐지됐고, 한국방송 는 지난해 12월에 문을 닫았다. 지난 3월에는 SBS 이 마지막 방송을 마쳤다. 반면 지난해 10월 전파를 탄 문화방송 은 때아닌 ‘세시봉’ 열풍을 일으켰고, 3월 첫 방송을 한 문화방송 는 양극단을 오가다가 감동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어느 때보다 음악과 방송의 상관관계에 관한 논의가 복잡하게 진행된 6개월이었다. 공중파에서 예능 프로그램의 형식을 빌리지 않고서는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이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아쉬움과, 예능의 드라마가 더해져 음악이 주는 감동이 진해졌다는 호평이 공존한다.

“1990년대 음악적 풍요 재현”

지난 6개월간의 기록에 몇 가지 추가해야 할 것이 있다. 1990년대를 지탱했던 음악 전문 프로그램의 부활이다. 1992년부터 2005년까지 13년 동안 매주 수요일 밤이 되면 TV에서 조용히 음악이 흘러나오곤 했다. 가수 이현우와 피아니스트 김광진이 진행했던 문화방송 (이하 )다. TV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재즈 뮤지션들부터 국내외 가수들이 이 프로그램의 무대에 섰다. 가 폐지된 지 5년 만인 지난해 10월 케이블 채널 MBC에브리원을 통해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

<이소라의 두 번째 프로포즈>

<이소라의 두 번째 프로포즈>

가수 이소라가 진행했던 한국방송 (이하 )는 ()로 문패를 고쳐 단다. 는 1992년 로 시작해 로 이어졌던 한국방송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의 바통을 이어받아 1996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됐다. 가수가 출연해 음악을 들려주고 진행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의 이 프로그램은 에 이어 지금 으로 진행자를 바꿔 계속되고 있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로 ‘두 번째’를 붙인 이 프로그램은 4월26일부터 케이블 채널 KBS조이를 통해 전파를 탄다.

부활한 두 개의 음악 프로그램은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무엇보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관통하며 ‘터줏대감’ 노릇을 했고, 그래서 당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만한 음악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이다. 지난 4월13일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연출자인 임용현 PD는 “시청자들의 추억과 향수가 남아 있는 이 프로그램으로 1990년대 음악적 풍요를 재현하고 싶다”며 “그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이소라가 이번에도 그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는 의 느낌을 그대로 재현했다. 프로그램 제목 서체부터 주요 색상이던 보라색까지 그대로 배치했다. 는 진행자가 이현우·김광민에서 이루마·바비킴으로 바뀌었지만, 프로그램 제목 디자인과 시그널 음악 등은 예전 그대로다.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았다”

과연 1990년대가 지금보다 음악적으로 더 풍요로웠는지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당시 음악을 즐겼던 층에게 가장 먼저 소구하겠다는 의도만큼은 주목할 만하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이 음악이라는 콘텐츠를 흡수하며 무엇보다 방점을 찍는 부분은 ‘추억’이다. 세시봉 열풍도 그렇고, 에 출연하는 가수나 그들이 부르는 노래도 그렇다. 에 출연하는 가수들은 음악 프로그램이 방송사마다 하나씩 존재하던 시절에 단골로 출연했던 가수들이다. 최근 음악 프로그램이나 음악을 활용한 예능 프로그램은 ‘그때가 참 좋았지’라는 메시지를 전제한다. 대중음악평론가 차우진씨는 “대중문화 자체가 향수 산업”이라며 “사람들이 바라는 건 새로운 게 아니라 변치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가요라는 보수적인 장르가 가진 추억과 향수를 어떻게 하면 세련되게 포장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된다는 사실도 두 프로그램의 공통분모다. 공중파에서는 음악 프로그램이 사라지는데, 케이블 채널에서는 음악 프로그램이 생겨난다. 이를 두고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공중파에서 케이블 채널로 밀려났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음악 프로그램이 케이블 채널을 통해 자리잡는다는 점이다. 공중파가 대중과의 접점이 많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공중파에서 음악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건 프로그램 경쟁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의 한봉근 PD는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13년 동안 이 프로그램을 연출했고 새로 시작하는 도 맡은 한 PD는 “시청률 때문이 아니라 방송사 윗선의 관심과 의지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음악과 음악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만 있다면 얼마든지 공중파에서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번에 와 가 케이블 채널에서 부활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각 방송사의 강력한 의지와 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변방의 음악이 중심에서 울릴까

케이블 채널은 장단점이 분명하다. 공중파에 비해 시청층이 좁다는 것은 태생적인 한계이자 단점이지만,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고 새로운 시도가 가능하다는 점은 장점이다. “프로그램에 기대하는 가수들뿐 아니라 새로운 뮤지션을 선보이는 자리로 만들고 싶다”며 “대중성보다 다양성을 찾겠다”는 의 임용현 PD의 포부가 그런 맥락이다. 지난 2월 신설된 케이블 채널 Mnet 는 지금껏 봐왔던 콘서트 형식의 음악 프로그램을 조금 더 ‘젊게’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정원영과 개그우먼 박경림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출연하는 가수와 조합을 조금씩 변형한다. 이상윤 PD는 “아직 음악성을 보여주지 못한 아이돌 그룹이나 인디밴드 등을 초대해 그들이 가진 다른 음악과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고 말한다. 인디밴드 ‘10cm’가 허각·존박과 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씨앤블루’가 자기네 히트곡이 아닌 새로운 노래를 부르는 식이다. 이 역시 케이블 채널이기에 할 수 있는 시도다.

한봉근 PD는 “공중파에서도 프로그램이 정착되는 데 5년이 걸렸다”고 말한다. 이제 발을 뗀 와 , 가 음악을 좋아하는 시청자의 귀를 잡아끄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방송사에서 진득하게 이들을 지켜본다면 변방의 음악 소리가 중심을 울리는 날이 또 올지도 모른다. “진짜 음악을 보여주겠다는 의무감을 갖는 순간 계몽적이 된다”는 차우진씨의 조언도 기억해둘 만하다.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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