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자신이 맡은 반의 종업식에서 교사인 모리구치 요코는 충격적인 말을 내뱉는다. “내 아이를 죽인 범인들은 이 반에 있다”라고. 막 아이를 벗어난, 그러나 여전히 아이임이 분명한 중1. 그들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소년 A가 요코의 아이를 죽인 것은, 유명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가 자신을 찾을 수 있게 하려고. 소년 B가 A의 계획에 가담한 것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친구로서, 범죄의 동반자가 될 수 있었기에. 그리고 그들에게는 모리구치 요코에 대한 애증이 깔려 있었다. 왜 나를 무시하는 거야. 왜 나를 인정하지 않는 거야, 같은. 너무나 유치한, 그야말100로 아이들의 사고 수준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이유들.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범행 동기 때문에, 현실에서 순진무구한 아이가 죽어야 했다. 그리고 만 14살 미만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법률 덕분에, 그들은 어떤 형벌도 받지 않는다. 경찰에 붙잡혀도, 보호시설에서 갱생의 길만이 주어질 뿐.
지난해 일본에서 개봉한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의 은 4주 연속 흥행 1위를 기록하며 39억엔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우울하고 잔혹한 중학생의 범죄와 복수를 다룬 은 여고생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돌며 예상외의 흥행작이 되었다. 전조는 있었다. 의 원작은 ‘소설 추리’ 신인상, 2008년 ‘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등에 꼽힌 미나토 가나에의 데뷔작이다. 그리고 서점 직원들이 고객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책을 뽑는 2009년 ‘서점대상’을 받았다. 서점대상은 (오가와 요코), (릴리 프랭키), (사토 다카코) 등 따뜻하고 감동적이면서 대중적인 작품들에 주로 돌아갔다. 스릴러인 (이사카 고타로)조차 부드럽고 화사한 분위기가 감돈다.
은 달랐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에게 아이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교사는, 자신의 방식으로 복수를 시도한다. 미나토 가나에는 복수극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성직자, 순교자, 자애자 등의 제목이 붙은 6개 장마다 다른 화자가 등장해 ‘고백’을 한다. 모리구치가 딸의 살인을 알게 된 과정과 복수의 마음을 고백하고, 반장인 미즈키가 소년 A의 범죄를 알게 된 반 아이들이 가하는 이지메를 고발하는 식이다. 그들의 말을 통해, 인간의 악의가 어떻게 전염돼가는지, 자신들의 악행 혹은 증오를 어떻게 변명하고 합리화해가는지, 그리고 그들의 고백조차 어쩌면 거짓임을 묵묵히 증언한다. 너무나 어둡고 참담한 기분이 들지만, 그들의 말만은 쏙쏙 귀에 들어온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력서를 모두 작성해둔다는 작가의 말처럼, 각 인물의 고백은 아주 생생하고 적나라해서 도저히 외면할 수 없다. 소설 은 한없이 어두운 이야기이지만, 가까운 친구의 경험담을 들어주는 것처럼 호소력이 강한 대중적인 작품이었다.
그런 점에서 등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기묘하면서도 감동적으로 엮어낸 나카시마 데쓰야가 연출을 맡은 것은 행운이었다. 영화로 만들어진 은 원작을 능가한다. 고백, 그러니까 말로만 이뤄진 원작은 모든 상황을 상상으로 가능하게 했다. 화자의 생각과 기억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철저하게 주관적이지만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세계. 나카시마 데쓰야는 그 공백을, CF 감독의 이력을 한껏 살려 매혹적인 영상으로 창조해낸다.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시기라고 말하는 모리구치의 고백이 깔리면서, 우유를 마시며 환하게 웃는 아이의 얼굴과 짧은 교복 치마 아래 늘씬하게 뻗은 다리가 보인다. 가장 잔혹한 말들이 내뱉어질 때마다, 우리는 이 추하고도 아름다운 세계의 황홀경을 만나야 한다. 또한 모리구치는 말한다. “나는 학생들의 말을 100% 믿지 않아.” 화자들의 ‘고백’을 통해 과거의 사건들을 풀어가지만, 그 고백조차 때로 거짓으로 밝혀진다. 보고 듣는 것이 하나의 상으로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부서지게 만드는 구조는, 관객에게 반전의 짜릿함만이 아니라 묘한 파괴의 희열까지 느끼게 한다. 미스터리의 ‘서술 트릭’이 주는 즐거움이 영화적으로 깔끔하게 구현된 것이다.
에는 중학교 아이들의 천진, 무구한 모습이 한껏 나온다. 동시에 무서울 정도로 타인에게 냉정하고, 자신의 감정만을 극단적으로 소중히 여기는 유치함도 배어난다. 아이들은 순진하기 때문에, 곤충의 다리를 하나씩 호기심 어린 눈으로 떼어낸다. 자신의 약함을 깨닫게 된 아이들은, 더 약한 아이를 골라 자신이 강하다고 합리화한다. 미즈키는 말한다. 이 반은 정말로 이상하다고. 하지만 이상한 것은, 이 세상 자체다. 모리구치는 소년 B를 찾아가, B의 어머니와 함께 고백을 듣는다. 들으면서 B의 어머니는 연방 ‘가엽게도’를 반복한다. 모리구치의 딸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향해. “저 아이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예전처럼 상냥한 아이야”라고, 나쁜 친구를 만난 자신의 아들이 희생자라고 믿는다.
모두가 바보인 세상은 일본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도 직면한 ‘악의’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 역시 ‘약한 자를 괴롭히는 개성, 싫은 것을 잊어버리는 개성’만을 가질 뿐이다. 모리구치를 만난 미즈키는, 소년 A는 단지 자기를 버린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라고 변호한다. 외롭기 때문이라고. 모리구치는 폭소한다. 그리고 홀로 밤길을 걸어가던 모리구치는 울음을 터트리며 주저앉는다. 그녀도 안다. 소년 A가 버림받았고, 상처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뭐? 그렇게 상처를 받으면 타인을 죽여도 된다는 것인가? 자신의 상처를 타인에게 돌려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이 세상은 슬픔으로, 폭력으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거기에만 빠져들어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에 동의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개인적 복수를 하는 모리구치가 바보 같은 걸까. 소년 A도 희생자라며 연민을 느끼는 미즈키가 바보 같은 걸까. 아니면 이 세상 모두가 바보인 걸까.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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