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비와 담뱃값을 충당하려 길거리 공연을 서슴지 않던 십센치는 어느덧 용돈 걱정 없이 먹고살 만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누가 봐도 대견해할 만한 이 분위기를 그들은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EP의 사운드는 너무나도 예의가 없었다.”
재료는 간단하게, 기타·육성·언어
한 가수의 새 앨범이 나오면 소속사 관계자, 음악평론가, 혹은 뮤지션이 직접 소개글을 쓴다. 각종 포털 및 음원 사이트에 등록되거나 매체 담당자에게 전해져 기사 작성에 참고되는 이런 문서를 보도자료라 하는데, 보도자료를 이런 식으로 쓰는 경우는 (장기하 같은 붕가붕가레코드의 뮤지션 정도를 빼면) 드물다. 그들 ‘십센치’(10cm)는 직설적이고 뻔뻔하다. 그래서 당혹스럽지만 그래서 웃기다.
사실적이라서 웃긴 보도자료는 당연히 노래의 반영이다. 지난해의 디지털 싱글 는 아메리카노를 자장면과 순댓국의 후식이자 메뉴판이 복잡해서 못 고를 때 택하는 음료로 설명한다. 우리는 비슷한 노래 몇 곡을 알고 있다. 생각나는 대로 음식물을 장난스럽게 묘사하는 방식은 장기하의 , 노라조의 , 멀게는 삐삐밴드의 와 비슷하지만, 십센치의 또 다른 대표곡 에는 재미있는 간식 노래 이상의 은밀하고 진한 이야기가 있다.
“의심이 된다면 저 의자에 나를 묶어도 좋아/ 창밖을 봐요 비가 와요/ 지금 집에 가긴 틀렸어요/ 버스도 끊기고 여기까진 택시도 안 와요/ 오늘밤은 혼자 있기가 무서워요/ 잠들 때까지 머릿결을 만져줘요.”
“남들이 지킬 것을 지킬 때, 우리는 내지른다” “고민할수록 완성이 어렵다”는 십센치의 직설화법을 선명하게 전달하는 장치는 장비를 최소화한 편곡이다. 2인조(권정열·윤철종) 구성으로, 제이슨 므라즈의 내한 공연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기타와 젬베라는 두 개의 작은 악기를 들고 무대에, 때로는 길에 선다. 컴필레이션과 디지털 싱글과 EP로 이력을 쌓은 뒤 최근 발표한 말끔한 음질의 데뷔 앨범 에서는 ‘예의가 없던’ 전과 달리 무려 전기기타와 베이스와 드럼이 등장하지만, 사운드가 확장됐다 한들 변하지 않는 이들 음악의 골격이자 정체성은 기타와 육성 그리고 언어다. 언제 어디서나 즉석으로 공연이 가능한 간단하고도 명료한 재료를 들고 노래하는 이 소편성 그룹을 표현하는 용어로, ‘포크’보다는 ‘마리아치’가 더 적합해 보인다.
이들 마리아치의 주된 지지층은 성인이다. 남녀가 만났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즉 남녀 사이의 욕망과 충동의 총체를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다. 일례로 데뷔 앨범 속 는 자신의 방 구석구석에 스며 있는 그녀의 흔적(감기약과 양말)을 발견하면서 이별을 받아들이는 내용으로, 그녀와 함께 ‘살았던’ 순간을 상상하게 만든다. 비밀스러운 듯 자연스러운 남녀관계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문학 기반의 영상물에서야 흔했지만 음악에서는 드물었던 소재인데, 영상물에는 이를 다루는 작법의 전형이 있지만 음악의 경우 전범이 확실치 않은데다 심의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으로 사료된다. 와 는 문화방송으로부터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운 나쁘게 ‘걸린’ 노래들을 비롯해 십센치 노래의 일부는 그렇게 남녀가 만나 무언가 저지를 준비를 하거나 저질렀던 일화, 혹은 팬티스타킹을 입어보겠다는 내용의 처럼 페티시즘에 가까운 내면을 동원한다. 표현의 제약이 덜한 인디라는 환경을 누리면서, 한편으로는 수위를 조절한다. 그들은 변태도 아니고 육욕에 몸부림치는 에너자이저도 아니다. 다만 몹시 구체적으로 말하는 게 특기이고, 더러는 낭만을 안다. 처럼 그녀가 빌려간 돈 3만7천원을 기억하고 처럼 그가 빌려간 돈만 갚으면 참치회와 소갈비를 먹겠다는 쪼잔한 남자이며, 그러다가도 처럼 그녀와 함께 눈뜬 아침을 붙잡아두고 싶어하는 자상한 남자다. 그녀들이 만났거나 만나고 있는 남자.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경험과 일과를 깨알같이 털어놓는 십센치의 이야기는 20~30대 여성에게 주로 어필한다. 노래와 노래 사이사이에서 노랫말 수준의 몇 마디로 관중을 빵빵 터뜨리게 하는 달변 또한 그녀들이 십센치를 연호하는 이유가 된다. 쏟아지는 호응을 두고 친구1(남자)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렇게 해야 돼. 여자들을 웃길 줄 알아야 해.” 친구2(여자)는 좀더 구체적이다. “잘 생긴 남자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잘 웃기는 남자한테 더 끌려. 키 크면 더 좋고. 클럽 뮤지션의 경우 미소년보다 평범한 인상이 더 유리해.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스타가 아니라 그냥 남자처럼 보이면 어쩐지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잖아. 그렇지만….”
망상의 여지를 주는 그들은 게다가 기존의 캐릭터들과 달라 신선하다. 감성적인 표현으로 공고한 팬덤을 구축한 싱어송라이터나 보컬리스트에 비하자면 그들의 언어는 매우 단도직입적이고, 수준급 유머의 장기하와 다르게 엄친아의 포스가 없다. 경북 구미 출신으로, 2008년 상경해 낮에 알바하고 밤에 공연하던 것이 알려진 그들의 과거다.
스스로 성장한 묘령의 존재
아울러 그들은 완벽하게 독립적인 묘령의 존재다. 싱글 와 로 벅스뮤직과 소리바다 등 각종 음원차트의 인디섹션에서 1위를 달성하는 것으로 ‘인디의 아이돌’로 부상하면서, 3천 장을 수제작한 EP를 한 달 만에 해치웠고 정규 앨범의 초도물량 1만 장을 하루 만에 싹쓸었다. 공연 또한 ‘먹고살 만큼’ 했다. 반응이 또렷한 재치의 노래와 입담으로 한국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고정 게스트가 됐지만, 섭외 루트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현재 그들에겐 유통사만 있을 뿐 때때로 뮤지션의 특징을 설명해주기도 하는 소속사가 없다. 시스템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모든 자전적인 이야기와 급속한 성과는 오직 그들이 주도했다.
이민희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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