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혁명가잖아. 쿠바는 살기 좋대.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니까. 욕심도 없고 좋겠어. 우리는 돈 없으면 안 되잖아. 돈 가지고 사람도 사고팔고 그러잖아. 쿠바는 그런 거 없잖아.”
에서 한국의 택시기사는 말한다. 그 낭만의 나라 쿠바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간 정호현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쿠바식 사회주의, 그리고 춤과 음악을 찾아 이 먼 곳까지 왔다.” 그런데 ‘찾는 것’의 목적어가 바뀌어버린다. ‘학생의 날’ 아바나대학 학생들과 학교를 방문한 피델 카스트로를 쫓던 카메라는 선글라스를 쓴 한 청년의 꽁무니를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홀린 듯 수줍은 남자를 뒤따르는 이 카메라는, 보이는 그대로 사랑에 빠진 눈이다. 다큐멘터리가 대본만으로 이뤄지진 않겠지만, 이 정도면 한참이나 삼천포다.
이틀 벌어야 칫솔 하나를 사는…
하지만 사랑에 빠지기 전 다큐멘터리의 목적은 이 다큐멘터리가 현재진행으로 보여주는 사랑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정호현이 쿠바를 찾은 이유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쿠바까지 흘러 들어온 한국인을 찍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들은 쿠바인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아버지의 얼굴, 어머니의 얼굴을 한 2세들도 쿠바인과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방금 쿠바에 도착한 이 역시 쿠바 사람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감독이 찾아온 ‘춤과 음악’은 동전의 앞뒤 면처럼 다른 면을 가졌다. 이들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노는 것이고 일하는 것인지 모른다. 춤과 음악과 어우러진 쿠바식 사회주의를, 춤추는 사람들의 입이 신랄하게 비판한다.
2~3일을 일해야 칫솔을 살까 말까 하고, 월급 20달러에 콜라는 0.55달러다. 월급이 적으니 노동시간을 지키지 않는다. 전화국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하는지 확실하지 않고, 근무시간에 찾아가도 담당 공무원이 자리를 지킬지 알 수 없다. 평생 열심히 일해도 외국 여행 한 번 갈 수 없다. 정치적 문제에서 정말로 생각하는 것은 말할 수 없다. 기본 개념은 ‘모두 평등하다’는 것이지만, 모두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 사람은 일하는 ‘척’, 정부는 월급을 주는 ‘척’한다.
결국 한인 2세 가족을 찍는 카메라를 수상하게 본 옆집 사람은 당국에 신고를 한다. 한인 2세 파트리시아는 말한다. “사회주의가 아니라 질투주의다.”
정호현 감독은 쿠바인 오르엘비스와 결혼을 결심한다. 정 감독이 쿠바에서 일자리를 구해 살 수 없기에 오르엘비스가 한국으로 온다. 월급 많은 한국과 월급 적은 쿠바, 일하는 한국과 노는 쿠바는 반목하기 시작한다. 쿠바에선 사랑에 빠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였는데, 쿠바를 떠나 한국으로 들어오자 온갖 일이 ‘신비로운’ 일이 되어버린다. 어머니는 이리 많은 한국 사람 중에서 남자 하나를 못 건지느냐고 한다. 어머니는 태어날 아이가 걱정스럽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돌팔매질까지 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조카는 말한다. “오르엘비스가 좋긴 한데, 한국 사람이면 좋겠어. 딴 나라랑 결혼하면 이상한 아이가 태어나 놀림받을 거 같으니까.” 쿠바에서는 버스 안에서 누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승객 모두 함께 춤을 추곤 했다. 지하철에서 만난 승객은 오르엘비스의 머리를 신기해하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다 만들어내신다며 ‘말세’라 한다. 오르엘비스는 왜 이렇게 사고 또 사느냐며 자신은 가지고 있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살사 클럽의 남자는 말한다. “아이 러브 머니.” 오르엘비스는 말한다. “미 투. 아이 러브 라이프.”
사랑은 그래도 낭만의 힘으로 버틴다
쿠바식 사회주의에 대한 낭만을 없애는 건 성공했지만, 다큐멘터리의 사랑은 춤과 노래라는 낭만의 힘으로 버틴다. 다큐멘터리는 쿠바 사회주의식 모순으로 세워져 있다. 1월13일 개봉.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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