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다. 아주 오랫동안 제작이 진행 중이란 소식이 들렸던 이 영화는 3년여에 걸친 기나긴 후반작업을 포함해 8년여의 제작과정을 끝내고, 4월15일 마침내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아무리 상업성이 떨어지는 소재인 양민학살 사건을 다뤘다 하더라도, 영화가 아주 좋다면 벌써 스크린에서 만나지 않았을까? 이렇게 어쭙잖은 짐작은 영화가 시작되고 미군의 폭격이 시작되면 여지없이 깨진다.
은 60년 전에 ‘그들’이 겪었을 공포와 분노와 슬픔을 오늘의 ‘우리’에게 전한다. 온전히 전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갓난 아이부터 팔순 노인까지 미군의 지시로 피난을 떠난 민간인이 피난길에서 느닷없이 속수무책 무차별 폭격을 당하는 장면부터 황망해지고, 비행기 폭격에서 겨우 살아남은 이들이 굴다리 아래서 엎드려 있다가 밤낮으로 기관총 사격을 당할 때에는 원통하기 그지없다. 의 이상우 감독은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총격에 쓰러진 혈육의 손을 놓고 도망가야 하는 이들의 비통한 얼굴을 마치 오윤 판화의 질감으로, 피카소 의 비통함으로 전한다. 사지가 찢기며 쓰러지는 이들을 볼 때면, 총알이 객석으로 날아드는 것처럼 아프다. 아기가 울면 총알이 빗발쳐, 아비가 제 손으로 아이의 숨을 끊어야 하는 장면에선 그저 턱하고 숨이 막힌다.
그런데 이런 비극에 이유가 없다. 이들이 총질을 당해야 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총알은 빗발치는데 지독한 악인도 없다. 이들에게 폭격을 퍼붓는 비행기는 그저 사물일 뿐이다. 다리 아래에 엎드린 민간인에게 총질을 해대는 미군도 이들을 죽이는 이유를 모른다. 이들에게 총을 쏘는 ‘현장’의 군인도 상부와 통신을 하면서 저들은 민간인 같다고 하지만, 얼굴 없는 사령부는 무조건 쏘라고 응답할 뿐이다. 은 이렇게 무고한 양민이 궁극의 피해자가 되는 전쟁의 참상을 노근리 사건을 통해 기막히게 재현한다.
나아가 1950년 노근리의 참상은 1980년 광주의 기억과도 자꾸만 겹친다. 그날의 광주처럼 영문도 모르고 총격을 당하는 민간인이 나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노근리 피난민은 미군의 총알이 자신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들어도, 미군이 피난길에 보내준다고 했던 “도라꾸”를 기다린다. 인민군이라면 몰라도, 설마 미군이 무고한 우리를 향해 총질을 하리라 믿지 않는다. 마치 미국 정부가 개입해서, 미군함이 광주에 가까운 바다에 접근해서, 쿠데타 군인의 만행을 저지하고 ‘우리’를 구하리라 바랐던 항쟁 초기 광주 민중의 소망처럼 이들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미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이렇게 전쟁이 불러온 민간인 학살은 어리둥절한 참극이다.
이렇게 끔찍한 사건을 다루지만 은 아이들의 해맑은 노래로 시작한다. 아이들이 풍금에 맞춰서 부르는 김민기의 가사처럼 “깊은 산 오솔길 옆” 시골마을 사람들은 전쟁통 가운데도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낸다. 아이들은 동요대회에 나가기 위해 노래를 연습하고, 동네 노인들은 마을 어귀에서 바둑을 두면서 소일한다. 이렇게 조용한 마을에 미군이 들이닥쳐 피난을 떠나라고 통고한다. 실제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7월 충청북도 영동군 노근리 주변 마을인 주곡리, 임계리에 소개령이 내려져 주민들은 피난을 떠났다. 그러나 미군은 피난민 사이에 인민군이 침입했단 미확인 정보를 믿고, 남쪽으로 내려가던 500여 피난민에게 비행기 폭격을 퍼부었다. 3박4일의 폭격에서 살아남은 300여 명의 생존자는 살기 위해 노근리 철교 밑 터널(쌍굴다리) 밑으로 숨어들지만, 미국은 이들에게 다시 집중 총격을 가한다. 증언대로 “시체로 참호를 쌓고, 핏물로 갈증을 달래며” 살아남은 사람은 영화에 나오는 짱이(실명 양해찬)를 포함해 겨우 25명이었다.
관객도 1만원으로 영화에 기부 가능반세기 어둠에 묻혀 있던 노근리 학살은 1999년 〈AP통신〉 최상훈 기자 등의 보도를 통해 마침내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의 보도를 책으로 엮은 가 2003년 출간되면서 시나리오 작성이 시작됐다. 2009년 완성까지 고비에 고비를 넘었던 영화는 142명 배우와 229명 스태프들의 자발적 참여로 세상에 나왔다. 문성근, 전혜진, 강신일, 이대연, 김뢰하, 고 박광정 등이 출연했고 송강호, 문소리, 유해진, 박원상도 인상적인 단역으로 참여했다.
무엇보다 원래는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했다 감독까지 맡은 이상우 감독의 집념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기 어려운 영화였다. 때로는 스크린에 펼쳐지는 연극적인 연기가 어색할 때도 있지만, 공들인 로케이션과 유려한 촬영과 포근한 느낌까지 주는 컴퓨터그래픽이 더해져 완성된 아름다운 1950년대 농촌 풍경은 아쉬운 면을 보충하고 남는다. 제작진의 십시일반으로 제작비 40억원 가운데 10억원만 들이고 완성된 영화는 이제 관객의 십시일반을 기다린다. 1만원씩 기부해 상영될 영화의 필름에 이름을 새기는 필름 구매 캠페인 등에 참여하고 싶다면 홈페이지(alittlepond2010.co.kr)에 들어가면 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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