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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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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의 ‘아바타’는 뚱뚱했다

디지털 미술전 ‘네오센스: 일루전에서 3D까지’ ,
실제와 허상 넘나들며 온몸으로 감상하는 판화·그림·설치 가득
등록 2010-03-26 06:27 수정 2020-05-02 19:26

디지털 시대, 대세는 ‘3D’다. 영화 가 몰고 온 새로운 영상혁명 흐름이 미술계에도 닿았다. 3D 기술이 예술가들에게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돕는 일종의 작업도구처럼 활용되는 분위기다. 현실적으로 보여주기 불가능한 색·질감·움직임 등을 쉽고 빠르게 구현할 수 있어 최근 많은 예술가들이 입체 미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17일부터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네오센스: 일루전에서 3D까지’전은 이런 미술계의 새로운 경향을 담았다. 3D를 차용한 조각, 설치, 영상, 사진, 판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모두 11명. 가 입증한 ‘경천동지’할 기술에 일찌감치 눈뜬 이들은 작품을 통해 관람객의 시각적 환영을 유도하기도 하고 실제와 허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미술에선 3D 표현 방식이 다양하다. 사진이나 그림 같은 평면적인 작품을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입체적으로만들거나, 컴퓨터로 그림을 그려 현실에서 불가능한 세계를 끌어다 보여준다. (맨 위 왼쪽부터) 이이남 <비만 모나리자>·이이남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고명근 <챔버-1>. (가운데) 강영민 <리컨스트럭션>, (아래) 호불호 <더 미스매치 앤서>

미술에선 3D 표현 방식이 다양하다. 사진이나 그림 같은 평면적인 작품을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입체적으로만들거나, 컴퓨터로 그림을 그려 현실에서 불가능한 세계를 끌어다 보여준다. (맨 위 왼쪽부터) 이이남 <비만 모나리자>·이이남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고명근 <챔버-1>. (가운데) 강영민 <리컨스트럭션>, (아래) 호불호 <더 미스매치 앤서>

3D, 무한 상상을 현실로

우리가 익숙한 3D 방식은 특수 안경을 끼고 보는 입체 영상. 하지만 미술에선 3D 표현 방식이 다양하다. 사진이나 그림 같은 평면적인 작품을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입체적으로 만들거나,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마우스 페인팅’ 기법으로 현실에서 불가능한 세계를 끌어다 보여준다. 실현 불가능한 상상력의 세계는 과학의 도움을 얻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영상미디어 작가 이이남의 작품과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친숙한 명화를 패러디해 3D 기술을 선보인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페르메이르의 에서 소녀는 눈물을 흘리고, 귀고리는 반짝인다. 그런가 하면 를 패러디한 에선 모나리자가 점점 뚱뚱해지더니 풍선처럼 그림 밖으로 날아가 배경만 남는다. 차가운 디지털로 살아난 명화가 따뜻한 웃음을 안겨준다.

눈속임의 전복도 이뤄진다. 가상현실을 그럴듯한 현실로 보이게 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가상현실처럼 보이게 바꾸는 사진 작업이 새롭다. 강영민 작가의 은 픽셀이 깨질 정도로 확대한 사진을 디지털 프린트해 칼질하고 부수는 과정을 거쳐 평면의 사진 이미지를 다시 입체적으로 만들어냈다. 고명근 작가의 시리즈 조각상은 투명 필름에 출력한 사진을 큐브에 가둬 누군가의 방 안을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을 준다.

평평한 판화도 입체 표현이 가능하다. 여동현 작가는 각기 다른 이미지를 일정한 간격으로 겹쳐 시각적 환영을 주는 ‘입체 판화’(3D 세리그래피) 방식을 보여준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방식은 언뜻 보면 판화 속 이미지들이 팝업북의 장치처럼 튀어나올 듯하다.

입체 표현의 기본인 원근법에 충실한 페인팅 기술도 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금남로처럼 역사적인 장소를 그림에 담는 손봉채 작가는 시리즈 작품에서 특허받은 묘사 기법을 보여준다. 유리보다 강하고 아크릴보다 색이 맑은 폴리카보네이트 여러 장에 그림을 그려 원근법에 따른 중첩된 형태로 그림에 생명력을 준다.

미술의 역사는 어찌 보면 현실과 가깝게 보이는 가상현실을 구현하려는 끊임없는 눈속임의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만져질 듯, 살아 있는 듯 보이는 것들은 사실 환영일 때도 있다. 전시장 1층 전면에 수직으로 늘어뜨려진 실 커튼이 이런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센서를 통해 사람을 감지하는 커튼은 사이렌 소리를 내며 파도처럼 움직인다. 처음엔 잔잔한 파도로 시작하지만 이내 거대한 쓰나미처럼 일렁이는 순간 위압감을 준다. 최종운 작가의 작품 다.

관객이 가장 기대했을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게임·애니메이션·사운드·스토리 작가 등 4명이 한 팀을 이룬 영상프로젝트팀 ’호불호’의 작품이다. 영화처럼 특수 안경을 착용하고 감상할 수 있는 영상은 현대인의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기호·문자 따위의 시각 소통 매체가 의사를 전달하면서 가질 수 있는 오류를 쏟아내 보여준다. 극장처럼 마련된 지하 전시장에서 브로콜리·우주선·꽃잎·활자 등이 손으로 잡힐 듯 움직이는 3분짜리 영상은 영화와 다른 신명과 황홀함을 주기도 한다.

과학과 예술의 만남 너머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3층을 돌며 관람하는 ‘네오센스: 일루전에서 3D까지’전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한 기분으로 전시품을 구경하게 된다. 기술 발전과 예술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미술계의 변화를 단순히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라고만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전시를 기획한 강재현 큐레이터는 “2차원 평면 그림을 3차원 입체 그림으로 보여주려는 노력은 이미 오래됐다”며 “이제는 미술계에서도 소재나 표현 방식에서 ‘3D+α’를 구현하려는 노력이 계속 시도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 역시 흥미 위주라기보다 미술 장르에서 입체적 표현 방식을 다양하게 보여주려는 작가들의 고민이 담겨 있다. 전시는 5월26일까지다. 문의 02-736-4371.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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