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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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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된 표절 논란, 근본적 대책 세워야

아이돌 그룹 ‘씨엔블루’ , 인디밴드 ‘와이낫’ 곡 표절 시비…
“판정 내릴 전문기관 역량 강화하고 확인 땐 엄벌을”
등록 2010-03-04 16:07 수정 2020-05-03 04:26

지난 2월23일 밤 서울 홍익대 인근의 한 라이브 클럽. 입구에 ‘인디권리장전’이란 공연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인디음악계의 권리를 스스로 찾자며 모인 일곱 팀의 인디밴드가 무료 공연을 펼치는 곳이다. 하지만 거창한 이름과 달리 공연은 변변한 구호나 부연 설명이 없었다. 더 크랙, 레스카 등 공연에 참여한 밴드도 말을 아끼고 노래만 했다. 50여 명의 관객도 그저 음악을 즐겼다. 여느 클럽데이와 똑같은, 하지만 조금은 다른 공연이 화요일 밤을 달궜다.

신인 아이돌 밴드 씨엔블루의 <외톨이야>가 인디밴드 와이낫의 <파랑새>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제기되면서 음악계에선 이참에 표절 논란을 종식시킬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왼쪽 사진은 와이낫의 리더 주몽, 오른쪽은 씨엔블루. (왼쪽부터) <한겨레21> 정용일 기자·FNC뮤직 제공

신인 아이돌 밴드 씨엔블루의 <외톨이야>가 인디밴드 와이낫의 <파랑새>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제기되면서 음악계에선 이참에 표절 논란을 종식시킬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왼쪽 사진은 와이낫의 리더 주몽, 오른쪽은 씨엔블루. (왼쪽부터) <한겨레21> 정용일 기자·FNC뮤직 제공

인디권리장전은 최근 불거진 표절 논란에서 야기된 공연이다. 신인 아이돌 밴드 씨엔블루를 상대로 표절 소송을 준비 중인 데뷔 13년차 인디그룹 와이낫을 지지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날 모인 인디밴드들은 말 대신 음악으로 와이낫을 지지하며 표절의 문제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인디밴드를 뭉치게 한 씨엔블루와 와이낫의 표절 논란은 지난 1월 시작됐다. 누리꾼들은 씨엔블루의 노래 의 도입부와 후렴구가 2008년에 발매된 와이낫의 앨범 수록곡 와 비슷하다며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이를 알게 된 와이낫이 씨엔블루 소속사에 의견 표명을 요구했고, 언론이 양쪽을 오가며 표절 시비에 불을 붙였다.

표절 논란이 본격화되자 를 작곡한 김도훈·이상호 작곡가가 반박에 나섰다. 2월8일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보내 “와 는 정확히 단 한 마디만이 유사하다”며 “코드 진행이 같지 않고 인트로(도입) 부분은 아예 비슷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직접 와 를 비교한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려 두 곡의 유사성을 부인하기도 했다.

인디권리장전 공연장에서 만난 와이낫의 리더 주몽은 노래와 건축물을 비교하며 이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코드·리듬·멜로디는 한 곡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이 요소들이 쌓여 하나의 곡을 완성한다. 하지만 대중이 음악을 들을 때 이 요소를 분리해 듣지 않는다. 완성된 건물이 비슷한데 벽돌과 목재, 시멘트가 다르다고 해서 다른 건물이라고 할 수 있나. 를 들으면 와 유사하다고 누구나 지적한다.”

‘표절이다’ ‘아니다’를 놓고 팽팽히 맞선 양쪽의 주장은 결국 법정에서 가려질 예정이다. 와이낫은 현재 변호사를 선임하고 소송을 준비 중이다.

“두 곡 한 마디만 유사” vs “들으면 누구나 비슷하다고 지적”

주류와 비주류 음악의 기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이란 특징을 거두면, 이같은 표절 논란은 음악계의 고질병으로 오랫동안 지적돼왔다. 김민종의 , 이승기의 , 이효리의 등 표절 시비가 붙은 노래가 셀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표절 여부가 판명된 곡은 많지 않다. 표절은 친고죄여서 원작자가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해야 표절 여부를 밝힐 수 있는데, 국내에서 소송으로 표절 판결을 가린 사례는 단 한 건뿐이다. MC몽의 가 더더의 를 표절했으니 원작자에게 1천만원을 배상하라는 2006년 판결이다. 소송은 1년이 걸렸고, 원작자는 저작권을 회복하는 데 위자료보다 더 많은 소송비를 썼다. 경제적 실익이 없다 보니 표절 소송은 자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법원 외에도 표절을 가릴 기관이 아예 없진 않다. 지난해 말 꾸려진 한국저작권위원회 산하 표절위원회가 이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터라 아직은 표절에 대한 구체적 기준과 판정 절차를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몇 마디 이상’ 혹은 ‘몇 소절 이상’이 같을 경우 표절로 인정한다는 공식적인 기준조차 없다. 표절위원회 운영 담당자인 한국저작권위원회 감정임치팀 강지영씨는 “이번 표절 논란 건도 아직 안건으로 올려 논의하지 못한 상태”라면서 “표절위원회의 역할은 법정에서 참고할 의견을 내는 것일 뿐 법적 권한은 갖고 있지 않다”고 위원회의 한계를 설명했다. 결국 표절 감정과 판결이 함께 이뤄지는 기관은 없는 셈이다.

법원에서 가릴 수밖에 없는 표절 판정의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 법적 권한을 가진 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가수 진주는 이번 표절 논란이 불거진 뒤 자신의 미니홈피에 표절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는 “저작권 침해는 반드시 소송이 아니어도 구제받을 수 있는 법적 제도가 필요하다”며 “장래에 원작자가 받을 2차적 손해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 해외 저작물 침해에 대해서도 전문적 기관이 평가·심사함으로서 표절이 반복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절 기준이 모호하고 이를 밝힐 기관이 부재한 현실에서 논란에 휩싸인 당사자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언론매체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는 김도훈 작곡가는 지난 보도자료를 통해 “부디 표절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정해져서, 막연하게 비슷하다는 것으로 작곡가를 궁지에 몰아넣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표절 소송을 준비 중인 와이낫도 “표절 여부를 가릴 곳이 법정밖에 없어 소송을 준비하다 보니 시간·돈 등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이번 소송이 표절을 종식할 계기가 되는 한편 음악을 만드는 사람, 제작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심에만 의존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지금, 해외에서처럼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라도 마련해 표절에 관대해진 작곡가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민사재판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인 경우 실제 발생한 손해액보다 훨씬 큰 액수를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다. 미국과 영국에선 표절을 반사회적 행위로 구분해 엄격한 잣대로 처벌하고 있다. 30년 전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이 그룹 시폰즈의 노래를 표절했다는 판정을 받고 약 7억원의 손해배상을 한 사례가 있다. 조지 해리슨은 “표절할 의사도 없었고 표절이라는 사실도 몰랐다”고 밝혔지만 법원은 의도적인 표절이 아니어도 잠재적 표절 역시 표절이라며 저작권이 침해됐다고 판정했다. 1998년 영국 밴드 더버브 역시 롤링스톤스 노래의 네 마디를 허락 없이 사용했다가 곡 수익금 전부를 롤링스톤즈에게 돌려줘야 했다.

외국보다 너무 느슨한 표절 인식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징벌적 손해제도처럼 표절을 막을 구체적 제도가 없는 실정에서 표절 논쟁이 가시화됐을 때 미디어의 자정 능력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밝혔다. 그는 “과거에 김민종, 이효리 등은 표절 논란에 휩싸인 노래의 활동을 접으며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며 “음악이 방송을 통해 유통되는 만큼 표절 논란이 불거진 당사자는 물론 방송가에서도 해당 곡의 방송을 유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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