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현존하는 이탈리아 최고의 음향감독 미르코 멘카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1961년생 미르코는 8살 때 사고로 시력을 잃고, 장애인에게 일반학교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던 당시 법에 따라 부모와 떨어져 제노바의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에 입학한다. 가톨릭 기숙학교인 타소니는 시각장애인 학생들에게 직업교육을 수행하는 기관이었다. 처음 미르코는 그곳의 교육을 거부했지만, 비장애인 소녀 프란체스카와 선천적 시각장애 소년 펠리체 등과 사귀면서 그곳 생활에 점차 익숙해진다. 프란체스카와 학교를 몰래 빠져나가 도심의 시위 현장도 보고 펠리체에게 색깔의 느낌을 설명해주면서 그는 감각을 넘어선 교류에 점차 눈떠간다.
그는 녹음기에 소리를 담아 과제를 제출하지만, 교장은 학교 기물인 녹음기를 함부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벌한다. 학교가 학예회 연극을 준비하는 동안, 미르코는 연극 연습에서 배제된 아이들과 함께 라디오 방송극을 녹음해나간다. 그러나 교장은 미르코를 퇴학시키려 하고, 그동안 미르코를 지지해왔던 담임 신부는 교장과 맞선다. 마침내 지역 주민과 노동자와 연대해 교장을 퇴진시키고, 미르코의 작품은 부모들에게 공개된다. 학예회장과 부모들에게 안대가 지급되고 눈을 가린 비장애인들에게 시각장애인들이 만든 판타지 청각 드라마가 시연된다.
영화는 장애에 관한 중요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첫째 학예회 장면에서 보듯이 ‘비장애인 중심의 장애 극복’이 아닌 ‘장애인 중심의 감각 재편’이 절실하다는 것, 둘째 교장과 담임 신부의 논쟁에서 보듯이 장애인의 교육과 노동에 관한 재사유가 필요하다는 것, 셋째 마지막 시위 장면과 자막에서 보듯이 장애인 운동의 성공을 위해 지역사회와 노동계 등 다른 운동과의 연대가 필수적이라는 것 등이다.
학교는 해마다 비장애인 부모들 앞에서 비장애인 교사가 짠 동선을 반복 훈련한 연극을 공연했을 것이다. 그러고선 “장애인들인지 모를 정도로 완벽했다”는 품평을 최고의 찬사로 여겼을 것이다. 그들에게 장애는 최대한 가려지고 ‘정상인에 가깝게 흉내 내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작 장애인은 완벽하게 소외당한다. 오직 비장애인에게 보이기 위한 공연에 동원될 뿐, 스스로 감상하거나 평가할 수도 없다. 그들을 연습시키고 감상하는 주체는 비장애인이요, 평가 기준 역시 비장애인이 쥐고 있다.
그러나 모두 눈을 가리고 청각에만 의존하는 방송극을 들을 때 시각장애인은 실제로 ‘장애’가 없다. 오히려 가장 청각이 예민한 자들이며, 그들의 청각적 감수성은 상상력과 결합해 멋진 판타지물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다른 능력을 지닌 자’들로, 창작과 감상의 주체가 된다. 에서 모두 갑자기 눈이 멀자 원래 시각장애인이던 이들이 월등한 능력자로 활약하는 걸 보지 않았던가.
그렇다. 장애는 신체적 능력 유무를 규정하는 의료적 개념이 아니라, 그가 맺고 있는 사회와의 관계를 일컫는 정치적 개념이다. 따라서 시각장애인이 초인적 노력으로 앞을 보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 중심적 감각 체계를 재편해 시각장애인이 다른 감각을 활용해 소통하게끔 사회적 장애(물)를 없애는 것이 추구돼야 한다. 청각장애인도 마찬가지다. 만약 학교에서 수화를 제2외국어처럼 배운다면 청각장애인은 ‘말을 못하는 장애인’이 아니라,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처럼 취급될 것이다.
영화는 1970년대 이탈리아의 장애인 교육과 노동에 관한 정책과 관념을 담고 있다. 영화 끝 자막에 적혀있듯 1975년에 장애인의 일반학교 교육이 허용됐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어떨까? 1994년 통합교육이 법제화됐지만, 일반고등학교의 특수학급 설치율이 38.3%에 불과하고, 그 결과 학령기 장애아동의 25.4%만이 학교를 다니고, 장애인의 45.2%가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갖고 있다. 영화 속 교장은 시각장애인에게 장래 희망은 사치고, 최소한의 자립 생활을 위한 직업기술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화는 교장의 주장을 편견으로 치부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교장의 말만큼도 미치지 못한다. 장애인의 전체 노동 가능 인구 중 34.1%만이 취업했으며, 이들의 소득은 전체 상용 종업원 임금의 44%에 그친다.
그런데 장애인이 고용에서 불이익을 당한다는 사실은 선진국이라 해도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인의 노동권 주장은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노동, 그것도 이윤을 창출하는 노동 능력만이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자본주의적 가치 체계에 의문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만이 교장의 강퍅한 주장을 돌파하고, 복지마저 노동 능력과 연결시키려는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항하는 길일 것이다.
첨예하게 진행 중인 한국의 ‘장애 투쟁’
영화에서 교장은 지역민들의 시위와 타소니 출신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입어 퇴진하고, 통합교육 법이 통과된다. 실제로 유럽의 1970년대는 68혁명의 여파로 장애인 운동이 급신장한 시기였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 교육시설 문제는 훨씬 악질적인 형태로 현재진행형이다. 1996년에 터져나온 경기 평택의 에바다 농아학교 비리는 7년간의 투쟁 끝에 2003년에야 마무리됐지만, 그 뒤로도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등 수많은 비리 사건이 터져나오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싸움들을 계기로 지역민과의 연대 경험이 축적되고, 장애인 운동을 담당할 진보적인 장애인 주체들이 키워지고 있다. 은 그저 감동적인 장애인 영화, 혹은 어린이 영화로 소비될 수 없다. 1970년대 이탈리아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장애를 둘러싼 투쟁이 훨씬 첨예하기 때문이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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