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에 얽힌 사연이 어느 날 문득 궁금해진 기억이 있다면, 아들 차를 타고 쇼핑 가보고 싶다는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운전면허도 없는 자식이라면, 영화 는 울림을 남길 것이다. 를 만들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엔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유일한 사건인 가족의 죽음은 오히려 생략된다. 대신에 숨진 장남의 기일을 맞은 가족의 하루가 열리고 닫힌다. 그러나 사건이 터지지 않아도, 서로가 몰랐던 혹은 서로에게 굳이 보이지 않았던 가족의 다른 얼굴이 비친다.
요코야마 가문의 둘째아들 료타(아베 히로시)는 부인과 함께 부모가 있는 고향에 가는데, 발걸음이 내키지 않는다. 료타는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애 딸린 과부’와 결혼을 했다. 형의 기일을 맞아서 어쩔 수 없이 가지만, 하룻밤도 자지 않고 ‘당일치기’로 다녀오고 싶을 만큼 불편하다. 재혼한 아내와 아내가 사별한 남편 사이에 낳은 아이를 보는 가족의 시선이 불편하지만, 사실은 아버지와의 거리가 더 근본적인 문제다. 료타는 마흔이 돼서도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부모의 희망이던 형은 10여 년 전에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다 숨졌다. 그래서 시골 의사인 아버지는 더욱 둘째아들이 가업을 잇는 의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료타는 미술 복원사가 되었다. 더구나 료타는 실업 상태. 그래서 무뚝뚝한 아버지와 얼굴을 맞대기가 더욱 불편하다. 오랫동안 소원했던 부자의 관계는 20여 년 전에 멈춰버렸고, 이제 부자가 나눌 대화는 옛날에 아들이 좋아했던 야구 이야기밖에 없다. 1년에 한두 번 만나도 여전히 부모는 은근히 의사 타령을 하고 아들은 실직 사실을 숨긴다.
다 아는 것 같지만, 다는 모른다. 그것이 대개의 가족이다. 오히려 가족이라 더욱 말하기 어려운 비밀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껄끄러운 무언가가 있는 가족이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다 보면 원자폭탄은 아니어도 작은 지뢰가 하나씩은 터지는 법이다. 는 이렇게 삐걱이지만 순간들이 드러났다 사라진다. 여기에 에는 평생을 알아도 알아도 모르는 가족의 여러 개 얼굴이 드러난다. 인자해 보이는 엄마의 가슴에 묻어둔 냉정한 칼날이 보이고, 무뚝뚝해 보이는 아버지가 무심코 하는 한마디에 귀여움이 묻어난다. 가장 친절한 얼굴로 가족을 대하는 며느리조차 속으론 자신이 이전 결혼을 통해 낳은 아들을 은근히 냉대하는 시어머니가 섭섭하다. 엄마가 오랫동안 가슴에 간직한 노래 처럼, 며느리의 대사처럼 “숨어서 듣는 노래 하나쯤은 누구가 있기 마련이다”.
가족끼리도 숨어서 듣는 노래 하나쯤은…는 인물의 시선과 시선이 겹치며 어느새 손에 잡히는 그림을 만든다. 서서히 보이는 각자의 변화가 겹치며 만드는 그림은 영화의 배경인 소도시의 풍경처럼 쓸쓸하고 아늑하다. 영화의 마지막, 료타는 어머니가 들려줬던 노랑나비 이야기를 딸에게 전해준다. 봄의 노랑나비는 지난겨울을 견딘 흰나비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는 생이 끝난 뒤에 남는 것에 관한 이야기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의미를 전한다. 6월18일에 개봉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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