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든 소녀들은 용감했다. 그들에게 동영상을 찍는 카메라를 들어본 경험은 전무했다. 그러나 꿈은 시작하는 자의 것이다. 그들은 무작정 카메라를 들었고 결국엔 완성했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을 상영하는 제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섹션의 이름이 ‘걸스 온 필름(Girls on Film)-소녀들의 크레이지 카메라’인지도 모르겠다. 이 부문은 10대 여성 감독의 작품만 모아서 상영한다. 10대 여성의, 10대 여성에 의한, 10대 여성을 위한 부문인 것이다. 올해는 32편의 출품작 중에서 5편이 상영의 기쁨을 누렸다. 5편의 영화는 지난 4월11일 서울 신촌 아트레온 극장에서 상영됐다. 여기엔 장애인 야학인 노들야학의 투쟁을 담은 이다솜 감독의 , 한국에서 10대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아픔을 그린 김혜인 감독의 , 10대 여성의 사랑을 시적으로 그린 이송이 감독의 등이 포함됐다. ‘소녀들의 크레이지 카메라’ 상영작 가운데 나머지 2개 작품인 의 이보라 감독과 의 정혜경 감독을 상영에 앞서 만났다. 19살 동갑내기 여성들은 “카메라를 들면 강해진다”고 입을 모았다.
“몇 학년이니?” 묻는 현실을 따지다(Road-Schooler)는 이보라 감독의 ‘반감’에서 나와 ‘절규’를 담았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떠나 길 위에서 배움을 시작한 이보라씨는 탈학교 청소년으로 살수록 차별의 심각성을 심각하게 느꼈다. “몇 살이니?” 묻는 대신에 “몇 학년이니?”라고 묻는 현실에서 탈학교 청소년은 사회적 편견뿐 아니라 공공연한 차별에 시달린다. 학생증이 없다고 대중교통 요금할인을 받지 못하는 현실부터 크고 작은 차별에 부딪혔다. 탈학교 청소년을 집에서 공부하는 ‘홈스쿨러’라고 일반화하는 것부터 정당치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길에서 배우는 ‘로드스쿨러’로 규정한다. 이렇게 이보라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착한 탈학교 청소년의 이미지를 지닌 홈스쿨러를 넘어 로드스쿨러로 자신을 규정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친구에게 묻는 질문은 감독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다름없다. 그렇게 다큐는 답답함에서 시작했다. 그는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외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보라씨는 지난해 무작정 카메라를 들기로 결심했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통해서 다행히 카메라를 무상으로 빌렸다. 카메라를 빌려준 사람은 카메라를 켜고 끄고, 화면을 밀고 당기는 방법만 알면 된다고 말했다. 정말로 그것만 배웠다. 그리고 무작정 친구들 인터뷰에 나섰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처럼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과정이 아니었다. 그가 학교를 나와서 8개월 동안 다녔던 동남아 여행처럼, 다큐는 방향 없이 흘러가는 정처 없는 여행이었다.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고,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점점 자신을 잃었다. 급기야 편집을 하면서 다큐는 나의 능력을 넘어선 일이란 절망에 빠졌다. 다행히 겨우 편집을 마치고 관객을 만나서 그들의 반응을 보면서 흥미를 찾았다.
이렇게 만든 작품엔 로드스쿨러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끝없이 “왜?”라는 질문의 ‘공격’을 받는 이들은 스스로 답을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며 단련된다. 엔 주어진 길을 가는 사람은 처하지 않아도 되는 곤경을 스스로 선택해,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이들의 괴로움과 즐거움이 보인다. 이들에겐 마치 여성처럼 명절증후군도 있는데, 친척들이 곤란한 질문을 할까봐 명절엔 “막 밥 푸고, 밥 나르고” 한단다. 는 기승전결 단선으로 흐르는 다큐지만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 이보라 감독은 “미장센이 허술한 다큐를 보면서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09학번 학생이 됐다. 역전의 ‘로드스쿨러’는 “혹시나 시간표 안에 갇히면 어쩌나 걱정도 되지만 아직은 배우는 일이 즐겁다”며 웃었다.
정혜경 감독의 는 현실을 뒤집어 보인다. 때는 바야흐로 2019년, 지구와 같은 별인 ‘명구’다. 명구인은 지구인과 같지만, 다만 초음파를 느끼는 일곱 번째 감각인 ‘파각’을 더 가졌다. 이렇게 기발한 설정에 따라 ‘멀쩡한 지구인’은 파각이 없는 장애인이 된다. ‘우리’와 같은 주인공은 턱에 파각을 감지하는 보라색 점이 없어 왕따를 당한다. 주인공 여학생이 초음파 차트 1위에 오른 ‘서태진’의 1집 를 감지하지 못해 비참한 상황에 처하는 모습을 보면 은근한 웃음이 번진다. 그렇게 원래 취미였던 공상은 영화의 재료가 됐다.
영화를 만들었던 지난해 정씨는 재수생이었다. 앞으로 무얼 할까 고민하다 하자센터에서 운영하는 주말영상반에 들어갔다. 그렇게 수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시나리오에서 편집까지 한 달이 걸렸다. 처음엔 배우도 구하지 못하다 겨우 친구의 친구를 섭외했다. 그렇게 어렵게 시작했지만 정작 시나리오에서 멋지다고 생각한 장면은 정작 찍고 나면 평범한 화면으로 나왔다. 그러나 무언가 찍는 행위가 너무 좋아서 작업을 멈추진 못했다. 그는 “평소엔 말수가 적은데 감독을 하면서는 현장에서 소리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영화는 ‘내 안의 나’를 발견하는 통로가 됐다. 급기야 영화를 완성해 상영할 즈음엔 천재가 아닐까 ‘자뻑’에 빠졌다. 촬영한 필름은 허술해 보였는데 편집을 끝내니 괜찮은 작품이 됐던 것이다. 더구나 하자센터 상영회에서 자신의 영화를 보며 웃는 관객을 보면서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카메라를 들었던 경험은 진학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그도 올해 한양여대 방송영상디자인과 09학번 학생이 됐다. 그렇게 그들의 심장은 여전히 카메라를 동경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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