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얘기는 아니다. 일본에 사는 종군 ‘위안부’ 생존자 송신도 할머니는 일본 법정에 사죄‘만’을 청구하는 소송을 낸다. 1993년에 시작된 재판은 10여 년을 끌지만 끝내 일본 법정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송신도 할머니는 말한다. “재판엔 졌지만 마음은 지지 않았다.” 그렇게 다큐멘터리 제목은 할머니의 말에서 따왔다. 안해룡 감독의 다큐멘터리 는 송신도 할머니와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지원모임)이 함께했던 10여 년을 담았다.
옆구리엔 칼에 베인 흉터, 팔에는 위안부 당시의 호칭인 ‘金子’(가네코) 문신이 남았다. 그리고 일본군에게 맞아서 찢어진 고막을 제때 치료받지 못해 귀마저 잘 들리지 않는다. 가슴엔 위안부 생활을 한 중국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던 아이 둘이 남았다. 그래서 곁에는 원통한 얘기를 들어줄 혈육이 없었다. 그렇게 반세기 가슴에 묻어둔 얘기를 할머니는 지원모임 사람들을 만나서 풀어놓는다. 그들의 처음 만남은 어색하다 못해 불편했다. ‘조선인’ 할머니는 일본인과 재일동포로 구성된 지원모임 사람들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았고, 지원모임 사람들은 나중에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았던” 할머니와 소송을 함께 하기가 두려워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들을 만나서 가슴에 묻어둔 얘기를 풀어놓고 세상을 향해 호통을 치면서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에 “아무렴 어때, 이겨도 좋고, 져도 좋고…”라고 하는 할머니의 말은 자위도, 자포자기도 아니다. 할머니는 이들과 함께하며 진정한 위로를 받았고 상처를 치유한 것이다. 는 그렇게 할머니와 지원모임 사람들이 10여 년을 함께한 해원의 드라마다.
16살 꽃다운 나이에 악몽은 시작됐다. 중국 우창(武昌) 인근, 할머니의 끔찍한 기억이 남은 장소다. 반세기가 넘게 흘렀건만, 할머니가 위안부로 끌려갈 당시의 나이인 여고생들 앞에 서면 말문을 잇지 못한다. 일본 전국을 돌아다니며 위안부 피해자 증언을 했건만 자신의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이들 앞에서 할머니는 새삼 가슴이 떨려 눈물만 훔친다. 그렇게 악몽은 생생하다. 하지만 어렵게 이어진 증언을 들은 학생이 “내년이면 성인이 되는데 술 한잔하자”고 말하자 할머니는 “나 술 무척 좋아한다”며 박장대소한다. 그렇게 할머니는 격정의 분노를 품고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거침없는 입담의 할머니는 “두 번 다시 전쟁을 하지 마라”고 말하기보다는 “빌어먹을 전쟁 다시는 하지 말라는 거야!”라고 세상을 향해 호통친다. 지독한 전쟁을 겪은 할머니 몸에는 이렇게 반전의 논리가 새겨져 있다. 분노마저 해학으로 승화하는 할머니는 무대에서 노래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고, 때로는 즉석에서 지은 노래로 혹은 랩으로 흥을 돋운다. 일본에서 먼저 상영된 를 본 한 관객은 이렇게 감상평을 썼다. “송신도라는 이름의 아이돌을 보았다.” 역시 한국에도 할머니의 팬이 될 사람이 적잖을 것이다.
“빌어먹을 전쟁 하지 말라는 거야!”이것은 일본인을 미워하지 않는, 한국을 원망하지 않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투쟁이다. 지원모임 사람들과 함께하며 사람에 대한 의심과 분노가 풀리고, 한국의 나눔의 집에서 다른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조국에 대한 원망도 누그러진다. 그래서 할머니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어진 수요집회에서 “여러분은 (일본인에 대해) 나쁜 마음을 먹지 말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할 때, 그것은 국경을 넘어선 울림을 갖는다. 그렇게 송신도 할머니는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를 넘어서 보편적 전쟁 피해자로 자신을 증언한다. 는 일본인 670여 명의 모금과 참여로 완성됐다. 영상 저널리스트로 활동해온 안해룡 감독의 손에서 10여 년의 기록은 다큐로 태어났고, 영화배우 문소리가 한국어 내레이션을 더했다. 일본에선 2007년 8월 도쿄를 시작으로 80여 차례 상영돼 8천여 명이 관람했다. 한국에선 2월26일, 울리고 웃기는 송신도 할머니를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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