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밉지 않은 진상, 차태현 카타르시스

<종합병원2>, <과속 스캔들>에서 ‘어설픈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배우 차태현
등록 2009-01-07 13:49 수정 2020-05-03 04:25

문화방송 수·목 드라마 는 감정적인 드라마다. 몇 초마다 한 번씩 캐릭터들이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고 비상사태가 벌어진다. 다들 흥분한 상태다. 당연히 시끄럽다. 보고 있으면 피로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피로를 무릅쓰고 계속 보게 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어떤 순간에는 눈물이 글썽거릴 때도 있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병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논리보다 감성이 앞서는 드라마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매번 에피소드마다 나오는 결론이 꽤 고리타분하다. 도덕적이고 교과서적이다. 이를테면 이상적이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를 흥미롭게 만든다. 그 중심에는 두 주인공 정하윤(김정은)과 최진상(차태현)이 있다.

차태현의 코미디 연기가 다시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코미디 연기자다. 영화 <과속스캔들>(왼쪽), 드라마 <종합병원2>에 나오는 차태현(문화방송제공).

차태현의 코미디 연기가 다시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코미디 연기자다. 영화 <과속스캔들>(왼쪽), 드라마 <종합병원2>에 나오는 차태현(문화방송제공).

‘패밀리…’ 보니 원래 성격도 그렇네

정하윤은 의료사고로 사망한 아버지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실패한 상처를 가지고 국내 최고의 의료전문 변호사를 꿈꾸며 의사가 된 인물이다. 매사에 감정적으로 대처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의사와 환자의 태도에서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그녀는 꽤 복잡한 캐릭터다. 그녀의 복잡한 정체성은 오히려 시청자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데, 최근 김정은의 하차설이 불거져나온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편 어떤 의미에서 그녀는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의 캐릭터인데, 사실 의 캐릭터들은 거의 모두 그렇다. 그중에서 가장 전형적인 캐릭터는 최진상이다. 그는 의사는 엘리트라는 사회적 인식의 반대편에 위치한, 모자라고 어설프고 실수투성이에 동료들로부터 욕을 밥 먹듯이 얻어먹는 ‘진상’임에도 환자들의 신뢰를 받는 인간적인 의사다. 그런 점에서 최진상이야말로 가장 이상화된 의사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시청자는 정하윤과 최진상의 두 캐릭터를 통해 의 관전 포인트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는 1994년에 방송된 의 연장선상에 있는 드라마다. 14년 전 작품에 출연한 이재룡, 조경환, 김소이, 심양홍 등이 같은 캐릭터로 출연해 색다른 흥미를 주고 있고, 두 사람 외의 주변 인물들 역시 ‘목숨을 다루는 존재’로서 윤리적·직업적 선택의 갈등을 드러낸다. 하지만 는 어쨌든 정하윤과 최진상의 드라마다. 최진상을 지지하는 시청자는 흥미롭게도 차태현이라는 배우의 저력을 재확인하기까지 한다. 밉지 않은 진상, 최진상은 그야말로 차태현의 캐릭터다. 에서 그는 나 같은 영화들이나 각종 방송광고(CF)로 다져온 차태현표 연기의 절정을 선보인다. 혹자는 차태현의 연기가 관습적이고 판에 박혔다고 말하지만, 어떤 캐릭터를 거의 완벽히 연기하는 것도 배우의 능력이다. 돌이켜보면 차태현의 연기력이 논란이 되거나 논쟁이 된 적도 없었다. 그는 가장 안정적인 코미디 캐릭터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고, 그의 연기는 신뢰할 만하다. 최근 ‘패밀리가 떴다’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실제와 극중 캐릭터가 그리 차이나지 않는 배우라는 사실도 확인시켰다. 그를 지지하는 시청자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차태현을 지지한다. 배우로서 그것은 축복이기도 하고 한계이기도 하다.

1995년 드라마 에 출연하며 배우 경력을 쌓은 그가 영화에 진출한 것은 1997년이었다. 2001년 와 이듬해 의 연속적인 성공은 차태현표 코믹 연기를 정립시켰고, 이후 드라마보다는 영화에 주력하는 배우로 활동하는 기반이 됐다. 와 , 와 를 비롯해 최근의 와 에 이르는 그의 필모그래피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래서 여러 캐릭터들이 충돌하고 관계 맺는 에서 최진상의 캐릭터가 ‘이상적인 의사’ 이상의 현실감을 얻게 되는 건 바로 차태현의 힘이다.

저런 사람 주변에 하나쯤 있었으면

차태현이 연기하는 인물은 한마디로 ‘어설픈 캐릭터’다. 특히 최진상이 그렇다. 의 오프닝이 그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천재 의사가 아닌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인 의사의 성장담을 보여주겠다는 기획의도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차태현이야말로 캐릭터의 성장을 보여주는 데 최적화된 배우다. 과장되긴 하지만 주변에서 하나쯤 있음직한 캐릭터가 그의 연기가 특화된 영역이다. 그래서 의대에서부터 왕따와 성적 부진을 겪은 최진상이 레지던트까지 진출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어도 납득이 어려운 설정은 아니다. 그가 어설픈 건 그가 그렇게 타고났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그렇게 타고난 최진상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 명의 제대로 된 의사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단지 환자의 처지를 잘 이해하는 의사 캐릭터가 아니라 하나의 미숙한 인간이 직업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탁월하게 보여준다. 가 차태현의 필모그래피에 큰 획을 긋지는 않겠지만 그의 탄탄한 연기에 대한 신뢰를 보탤 것은 명백하다.

최진상이란 캐릭터를 중심으로 를 보고 있으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떠오르기도 한다. 삶에는 분명 정말 소중한 게 존재한다. 우리 모두는 그걸 알고 있지만 그걸 자기 삶의 동기로 삼는 사람도 드물고, 그걸 완벽하게 체화한 사람도 드물다. 선택의 순간에 흔들리는 것이야말로 인간이다. 그런 점에서 최진상은 인간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병원이란 조직에서 줄을 잘 서서 출세하고 싶다는 욕망을 감추지도 않고, 사소한 성취감을 숨기지도 못한다. 상황에 따라 아부하기를 주저하지도 않고, 그저 착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런 평범한 인물이 제대로 된 의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다이내믹하고 스펙터클하진 않지만 분명 감동적인 일이다. 그 캐릭터에는 진심이 있기 때문이다. 최진상은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자기 삶의 확고한 기준은 없어 보이지만, 누구보다 진심으로 삶을 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최진상이란 캐릭터의 생명력은 거기서 나온다. 그는 누구나 주변에 하나쯤 있기를 기대하지만, 정작 우리 스스로 그렇게는 되고 싶지 않은 캐릭터다. 차태현의 저력은 바로 그런 ‘바보처럼 착한 사람’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데 있다. 차태현이란 배우가 만드는 카타르시스는 바로 거기에 있다. 를 조금 다르게 보는 관전 포인트다.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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