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바)는 끝났다. 매주 수·목요일 9시55분 문화방송에 강마에(김명민)는 등장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끝나도, 강마에는 불쑥불쑥 등장한다. 남성용 슈트를 광고하면서 당신의 옷을 트집 잡는다. 과자 광고에서는 단원들을 꾸짖는다. 강마에는 그렇게 살아 있다. 강마에의 매력은 ‘독선과 독단’이다. 범재(凡材) 특유의 콤플렉스가 뒤섞인, 수재로 태어나지 못한 한이 맺힌.
‘강마에’에는 3명이 녹아 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독선, 정명훈의 표정, 그리고 서희태의 지휘 스타일. 아, 머리 스타일도 서희태의 것이다. 곱슬거리는 긴 머리. 서희태는 의 예술감독이다. ‘서울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다. 러시아에서 성악을 전공한 성악가 출신이다.
서희태 감독을 만났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서희태 음악감독. 그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예술감독을 맡게 된 것을 “인생에서 두 번째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첫 전환점은 음악을 시작하게 된 것이고.
그와 의 인연은 1년 전에 시작됐다. 연출자 이재규 감독과 강릉으로 문상을 가던 길이라고 했다. 이재규 감독과는 드라마 (이재규 연출·2005년 5월23일~8월29일)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같은 성악가인 서 감독의 부인 고진영씨가 의 테마곡들을 불렀다.
“를 같이 찍었던 이영철 촬영감독이 지난해 이맘때 상을 당했어요. 장지가 강릉이었죠.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재규 감독이 ‘오케스트라를 배경으로 한 클래식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하더군요. 난 말렸어요. 클래식이란 소재가 쉽지 않거든. 근데 이 감독이 ‘그러니까 하고 싶다. 남들이 외면하니까 반드시 잘 만들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럼 해보자고 의기투합했죠. 클래식 대중화에 대한 저의 의지도 있었고.”
서희태 감독의 바쁜 날도 시작됐다. 극본을 맡은 홍진아·홍자람 작가를 만나 시놉시스를 짰다. 강마에의 롤모델을 먼저 만들어야 했다.
“강마에는 저의 평소 스타일에 카라얀의 모습을 투영시켜서 만들었어요. 거기에 정명훈의 표정을 넣어 풍부하게 만든 거죠.”
감독과 연기자들에게도 클래식과 오케스트라가 무엇인지 가르쳐야 했다. 체험을 위한 오케스트라 리허설이 수없이 거듭됐다. 대본 작업이 시작됐다. 홍 작가 자매는 꼬박꼬박 대본을 보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리얼리티’ 살리기. 대본 중간중간 전문용어가 들어야 할 부분은 괄호로 비어 있었다. 전문가의 용어로 채우는 것이 그의 몫이었다.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는 드라마에 소개될 클래식 음악들을 고르고 녹음해야 했다. 강마에와 강건우(장근석)는 그에게서 지휘를 사사했다. 연주 장면이 있는 날은 녹화장에서 같이 밤을 새웠다. 그때는 이재규 감독이 아닌 서희태 예술감독이 ‘NG’를 외쳤다. 녹화가 끝나면 편집실로 갔다. 영상과 음악이 일치되도록 조율하는 일이 남았다. 바쁘고 힘들었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들이었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서희태 감독은 늘 바빴다. 오케스트라 운영을 기본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기아민들을 돕는 일부터 라디오 출연까지.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 인근에서 와인바를 운영한 적도 있다. 정통 클래식을 고집하는 이들의 눈에는 ‘외도’로 비칠 일들이다.
“클래식과 대중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정통 클래식을 고집하는 이들은 ‘클래식은 대중화될 수 없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클래식이란 것도 사실 18세기에는 대중이 즐기던 음악입니다. 일종의 유행가였죠. 그런데 지금은 대중의 음악이 아닌 귀족의 음악이기를 고집합니다. 대중 없이는 음악도 없습니다. 클래식이 지난 200~300년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이를 향유한 대중이 있었던 덕분입니다. 고집스러운 음악가들 때문에 클래식이 생존의 위기에 몰렸다고 봅니다.”
그런 생각을 담아 책을 냈다. (MBC프로덕션 펴냄).
“한국인, 클래식을 못 느낄 뿐 지식에선 최고”클래식의 위기는 고향인 서구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인식이다. 오페라감독 피터 셀라스는 클래식을 ‘에이즈 환자’라고 표현하지 않았던가.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이름은 꼭 ‘BEETHOVEN’과 ‘MOZART’로 쓰기를 고집하는 이들. 공연장에서는 침도 함부로 삼키지 못할 적막을 강요하는 시스템. 감동받았을 때 박수도 못 치게 만드는 ‘에티켓’들. 맨 마지막에 ‘나도 이 곡이 끝난 거 알아’라고 과시하듯 미친 듯이 박수치게 만드는 구조. 이런 복잡함 속에서 한국인들은 클래식이라면 울렁증부터 일으킨다. 문화평론가 조우석씨는 한국적 클래식의 이런 현상을 ‘섬 현상’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대륙의 본토에서는 합종과 연횡의 이종교배가 한창일 때, 주류의 한 흐름만 받아들인 섬에서는 ‘정통’과 ‘본류’만 강조하게 되는 현상으로.
서희태 감독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드라마가 시작된 직후부터 ‘지휘자라는 직업에 대해 알고 싶다’ ‘오케스트라는 어떻게 움직이냐’는 시청자의 질문이 많더군요. 이참에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리고 싶었습니다. 클래식 입문서가 될 수 있도록 드라마에 소개된 곡들에 대한 해석도 책에 함께 담았지요. 물론 재미를 위해 드라마 촬영 도중의 에피소드들도 가끔 섞었고요.”
그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꿈꾸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클래식을 참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높은 교육 수준 때문에 전세계 어디보다 클래식을 더 잘 알고 있어요. 본인들이 그걸 클래식으로 느끼지 못할 뿐이지요.”
우리들 일상 곳곳에 클래식은 녹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지하철이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운영하는 1·3·4호선 열차 안내방송을 보자. 출발역에서는 제임스 라스트의 를, 환승역에서는 모차르트의 <k525>를 튼다. 종착역에서는 모차르트 이 흘러나온다. 서울도시철도공사(5·6·7·8호선)에서는 출발역에서 비발디의 (가을 1악장)가, 환승역에서 비발디의 이 나온다. 종착역에서는 하이든의 으로 끝을 맺는다. 방송사의 버라이어티·개그 프로그램에서도 클래식은 빠지지 않는다. SBS 에서 멤버들이 저녁을 준비할 때 깔리는 음악이 쇼팽의 피아노 연습곡 (검은 건반)이다. 의 ‘달인’에서도 크라이슬러의 이 배경으로 깔리지 않는가.
곱슬머리는 팬서비스
물론 이런 음악들이 나올 때 ‘제목이 뭐였지?’라고 머리를 뜯을 필요는 없겠다.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다가 배경음악으로 나온 가요나 팝송이 뭔지 모른다고 자책한 적은 없지 않은가. 클래식을 편하게 즐기려면 클래식에 대한 콤플렉스부터 극복하고 볼 일이다. 의 김어준 총수는 이를 서구문화에 대한 ‘화이트 콤플렉스’라고 일갈한 바 있다.
다시 서희태 감독에게 돌아가자. 마지막으로 ‘지휘자들은 왜 곱슬머리를 그렇게 기르는가’를 물었다.
“일종의 팬서비스입니다. 지휘가 시작되면 지휘자의 얼굴이 아닌 뒤통수만 보게 되는 청중들을 위한. 음악이 강렬해질 때 지휘자의 연미복 꼬리와 머리가 함께 흩날리면 사람들은 음악에 더 몰두하게 돼요. 일종의 공감각이라고 할까요. 시각과 청각의 조화를 위한 연출이죠.”
서희태 감독은 11월29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베토벤 바이러스 오케스트라’의 첫 공연을 열 계획이다. 에 출연했던 연주자들과 오케스트라로 구성된 베토벤 바이러스 오케스트라는 클래식 보급을 위한 전국 투어를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k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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