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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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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이 목표인 리얼타임 리얼리티

불편한 관계의 사람에게 만남을 주선하는 <절친노트>, 선정성 없이 현실을 따라가는 쇼의 과제
등록 2008-12-04 12:04 수정 2020-05-03 04:25

“이 방송이 나갔다고 해서 사람들 시선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SBS (금요일 밤 10시55분)에서 서지영은 말했다, 이지혜를 옆에 두고서. 두 사람은 그룹 샵에서 함께 활동하던 시절 심각한 불화를 겪었고, 이 사실이 표면화되면서 샵이 해체됐다. 그 뒤 두 사람은 샵 시절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다. ‘왕따’의 가해자로 알려진 서지영이든, 피해자인 이지혜든 구설에 오른 뒤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서지영의 말대로 가 나간다고 해도 그 시선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리얼리티쇼에 한 번 나갔다고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기엔, 요즘 사람들은 너무나 리얼리티쇼의 자극에 익숙해져 있다. 오히려 “인기 떨어지니 쇼한다”는 악플이 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는 바로 그 부분을 파고든다.

김구라·문희준이 콤비가 되는 날도 올까

서지영과 이지혜, 김구라와 문희준, 과거에 앙금이 있는 연예인들이 만나는 <절친노트>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SBS 제공

서지영과 이지혜, 김구라와 문희준, 과거에 앙금이 있는 연예인들이 만나는 <절친노트>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SBS 제공

는 연예계의 앙숙, 혹은 서로 만나기 불편한 관계의 사람들에게 화해를 주선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리얼리티쇼가 인간관계를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서지영과 이지혜를 두고 “어지간하면 이런 프로그램 안 나올 텐데”라고 말하는 김구라의 말은 무례하기는 하지만 사실이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어색한 관계에 있는 사람과 화해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이 없다면, 연예인들로서 그들의 행동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들도, 시청자도 서로 진심 어린 화해를 하기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는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보여준다. 에서 문희준과 김구라, 서지영과 이지혜는 울면서 포옹을 하지도, 반대로 멱살을 잡고 소리 지르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계속 어색해한다. 이미 한 차례 화해의 과정을 끝낸 문희준과 김구라 역시 여전히 서로에게 조심스럽다. 를 이끌어가는 건 이 ‘어색한 사람들’의 작은 행동들이다.

서지영과 이지혜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서로 거리를 두고 의자에 따로 앉는다. 하지만 함께 여행을 떠난 날 밤에는 약간의 스킨십도 이루어진다. 문희준은 김구라에게 장난을 빙자해 그가 세수하는 물을 엎기도 하고, 힘을 잔뜩 주며 얼굴을 씻겨주기도 한다. 그건 감정의 앙금이 남아서일까, 아니면 전보다 친해졌다는 친근감의 표시일까. 방송은 화해를 주선했지만,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 간극 사이에서 어쨌건 같이 방송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빚는 긴장감은 를 큰 자극이나 극단적인 상황 제시가 없어도 흘러갈 수 있도록 한다.

가 서지영과 이지혜의 화해 자리에 김구라와 문희준을 출연시키고, 다시 새 게스트의 방영분에 서지영과 이지혜가 출연할 것인지를 묻는 건 중요하다. 그들이 진짜 화해의 의사가 있다면, 혹은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함께 방송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그들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방송 한 번 나왔다고 해서 사이가 좋아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들이 계속 함께 방송을 하면서 만들어내는 관계는 과거와는 또 다를 것이다. 기존의 리얼리티쇼는 출연자들의 실제 상황을 표방하되, 언제나 쇼 안에서 모든 것을 끝내려 했다. 쇼 안에서 싸우고, 쇼 안에서 화해한다. 하지만 는 ‘리얼타임’의 개념을 도입하려는 듯하는 리얼리티쇼다. 진짜 화해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듯, 는 그 시간의 힘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 만약 이 프로그램이 꾸준히 방송될 수 있다면 김구라와 문희준이 정말로 콤비가 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도 있다.

쇼로 풀어내는 해법은 아직 미완성

다만 문제는 가 프로그램의 재미를 느끼는 데도 ‘리얼타임’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출연자들이 서서히 마음이 바뀌는 과정을 그리는 이 리얼리티쇼는 시청자에게도 쇼의 호흡을 꾸준히 따라갈 것을 요구한다. 드라마도 아닌 오락 프로그램에서 천천히 진행되는 캐릭터의 관계 변화를 따라가라는 것은 무리다. 이 때문인지 는 끊임없이 어떤 이벤트를 만들려 노력한다. 그들은 함께 여행을 가고, 음식을 만들며, 이내 돌아올 실미도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어색한 사이의 출연자들이 제작진이 준 이벤트 안에서 적극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김구라도 문희준과 대화를 할 때만큼은 더 조심스러워진다.

는 좀더 리얼한 사람의 감정을 리얼리티쇼 안으로 가져왔지만, 그것을 ‘쇼’로 푸는 해법은 완성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읽는 그대로 하기만 해도 사람들과 친해지는 노트가 있다’는 의 홍보 카피처럼, 는 좀더 세밀하게 사람들의 관계 개선에 필요한 장치들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건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심리학적 연구가 필요한 부분일지 모른다. 특별한 관계가 없던 연예인들이 하루 동안 친해지는 과정을 담은 ‘절친 하우스’는 그런 쇼적인 재미를 어느 정도 보완하는 장치일 것이다. ‘절친 하우스’는 앞의 방송분과 달리 부담 없는 재미에만 치중할 수 있고, 동방신기의 시아준수 같은 스타도 게스트로 출연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가 모르는 상태에서 만나 가벼운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절친 하우스’는 프로그램의 메인이 되기는 어렵다. 결국 의 성패는 어색한 관계의 연예인들이 친해지는 과정을 어떻게 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 리얼리티쇼의 또 다른 갈림길일지 모른다. 과연 리얼리티쇼는 설정과 자극, 혹은 선정성 없이 사람의 본심을 천천히 담는 것만으로 ‘쇼’로 완성될 수 있을까.

강명석 기자· 10-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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