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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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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지배하는 ‘바디 셰이크’

비·동방신기·빅뱅·원더걸스의 공통점, ‘퍼포먼스를 위한 음악’을 하는 톱스타들
등록 2008-10-31 15:20 수정 2020-05-03 04:25

“전세계에서 유튜브로 저를 보는 분들도 생각해야 하거든요.” 얼마 전 국내에 컴백한 비는 타이틀 곡 (Rainism)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을 했다. 은 무대 위에서 ‘보는’ 노래다. 전자음이 중첩돼 있고 딱히 따라 부를 만한 멜로디도 없는 이 온전한 노래가 되는 건 음악 위에 ‘지팡이춤’을 앞세운 비의 퍼포먼스가 더해질 때다. 무대를 봐야 음악을 완전히 ‘봤다’고 할 수 있는 노래를 타이틀 곡으로 들고 나온 비의 선택은 현재 가요계의 어떤 경향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내 음악은 퍼포먼스로 완성된다.”
신곡 <레이니즘>을 들고 나온 비는 앨범 사진, 뮤직비디오, 무대를 통해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제이튠 엔터테인먼트 제공

“내 음악은 퍼포먼스로 완성된다.” 신곡 <레이니즘>을 들고 나온 비는 앨범 사진, 뮤직비디오, 무대를 통해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제이튠 엔터테인먼트 제공

UCC로 음악을 ‘보는’ 블로그 세대

노래를 잘 부르면 가수가 된다. 외모도 좋으면 스타가 되고, 곡까지 좋으면 디지털 음원으로 돈을 번다. 그러나 톱스타가 되려면 거기에 퍼포먼스가 더해져야 한다. 비, 동방신기, 빅뱅, 원더걸스 등 올해 가요계의 블루칩들은 대부분 최고의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가수들이기도 하다. 동방신기는 비 이전에 이미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만들어낸 ‘SMP’(SM Music Performance)라는 장르를 통해 ‘퍼포먼스를 위한 음악’을 선보였다. (Tell me), (So hot), (nobody)로 이어진 원더걸스의 3연속 히트에는 남녀노소 모두 그들의 춤을 따라 하게 만든 퍼포먼스가 큰 역할을 했고, 빅뱅이 그들의 패션을 거리에 유행시킨 것은 그들이 그 옷을 입고 무대 위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퍼포먼스는 유튜브 같은 사용자제작콘텐츠(UCC) 서비스를 통해 전세계에 퍼진다. 는 UCC와 함께 전국을 흔들었고, 독일인들이 동방신기의 춤을 따라 하는 UCC가 올라오기도 한다. 톱가수들은 퍼포먼스를 통해 국내에서 ‘특A’라는 것을 증명하고, 그 퍼포먼스는 다시 해외에 자신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신인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소몰이 창법’에 미디엄 템포를 곁들인 노래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에 반복적인 멜로디를 얹는 노래들이 음원은 히트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얼굴을 알리려면 퍼포먼스가 필요하다. 신인 그룹 2PM은 멤버 7명이 애크러배틱한 춤을 선보이는 무대로 빠르게 관심을 모았고, 데뷔 이후 ‘유망주’에 머물러 있던 손담비는 의 ‘의자춤’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10여 년 전의 조성모처럼 더 이상 블록버스터 뮤직비디오가 히트를 치지 않는 시점에, 가수의 퍼포먼스는 단지 가수의 무대 연출이 아니라 가수의 가장 강력한 홍보 수단 중 하나가 됐다. 아니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기를 얻는 좀더 희박한 확률에 도전해야 한다.

퍼포먼스가 가수의 ‘등급’을 결정지을 수 있는 요인이 되기 시작한 것은 현재의 음악 시장이 퍼포먼스형 가수들에게 훨씬 유리해졌기 때문이다. 현재 대중음악 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가수들 중 서태지와 같은 1990년대 뮤지션들만이 음악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다는 사실은 의미 있다. 그들은 음악만으로도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던 시대의 주인공들이었다. 하지만 요즘 음악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은 음악 대신 토크가 상당 시간을 채운다. 블로그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처음 블로거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수많은 음악 스트리밍이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3분 내외의 UCC 동영상이 차지한다. 가요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떨어졌지만, 그중 인상적인 퍼포먼스들은 UCC로 살아남는다.

지금 MKMF(Mnet-KMTV의 합동 시상식)를 지탱하는 것은 시상 내용보다는 신화, 비, 동방신기, 빅뱅 등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퍼포먼스다. 심지어 공연 시장까지 얼어붙고 음악을 TV나 오디오가 아니라 컴퓨터의 UCC로 듣는 한국의 대중음악계에서 퍼포먼스는 가수와 음원을 유통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 된 셈이다. 그래서 음원에, 뮤직비디오에, 혹은 각종 TV 출연에 힘을 쏟던 대형 기획사들은 이제 퍼포먼스에 돈을 들인다.

SM엔터테인먼트는 신인 그룹 샤이니의 스타일리스트로 디자이너 하상백을 고용했다. 원더걸스의 는 JYP엔터테인먼트가 처음부터 ‘레트로 3부작’을 기획하고 그들의 스타일까지 일관되게 결정했다. 에서 다소 촌스럽고 어설퍼 보일수도 있었던 원더걸스의 의상은 ‘호피 무늬’를 콘셉트로 한 에서 더 세련되게 변했고, 를 통해 성숙한 느낌을 가미해 원더걸스의 이미지를 차츰 성장시켰다. 그들에게 퍼포먼스는 단지 무대에서 춤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여주려는 콘셉트와 스타일을 대중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퍼포먼스 중심의 시장은 가요계가 더욱 ‘머니게임’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대의 창조라는 점에서 퍼포먼스는 창조성이 필요한 분야지만, 그것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은 자본이다. 퍼포먼스와 노래가 모두 가능하고 외모까지 빼어난 가수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돈싸움’이다.

대중에게 아날로그적 경험을 허하라

비가 으로 철저히 퍼포먼스에 주력하고, 반대로 발라드 (Love story)로 음원 시장을 노리는 마케팅을 시도한 것은 가요 시장의 현재를 분명히 보여준다. ‘가수’가 인기를 얻으면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스타’가 되려면 퍼포먼스처럼 비주얼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다. 물론, 비주얼과 노래 양쪽을 가질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오리콘 위클리 차트 1위까지 오른 데는 그들이 라이브와 격렬한 퍼포먼스가 모두 가능한 꽃미남들이라는 게 강한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문제는 이런 가수들을 표준 삼아 움직이는 대중음악 산업이다. 뮤직비디오의 시대에는 그나마 ‘얼굴 없는 가수’라는 콘셉트 아닌 콘셉트의 가수들이 성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퍼포먼스의 시대에는 가수들이 퍼포먼스에 어울리는 외모를 가져야 하고, 작곡가들은 퍼포먼스를 신경쓴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

블로그의 시대에 ‘BGM’(배경음악)이 돼버린 음악은 이제 퍼포먼스를 빛내기 위한 장식물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정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퍼포먼스는 방 안에서 UCC로 보는 데 좋지만, 빼어난 음악은 공연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얼마 전 열린 그랜드민트 페스티벌에 온 2만여 명의 관객은 공연장에서 파는 페스티벌 참여 뮤지션의 앨범을 5천여 장 구입했다. 블로그와 UCC, 그리고 한류 스타가 음악산업의 헤게모니를 쥐어가는 지금,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대중이 가장 아날로그적인 경험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거리에 나가면 쉽게 공연을 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주장한 ‘대중음악을 위한 예술의 전당’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클럽들인 것도 그 때문이다. 가수들이 퍼포먼스 없이도 음악과 공연만으로 스타가 될 수 있는 날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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