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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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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속의 도쿄

미셸 공드리·레오 카락스·봉준호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도쿄!>
등록 2008-10-31 15:04 수정 2020-05-03 04:25

는 미셸 공드리, 레오 카락스 그리고 봉준호가 모여 도쿄에 관한 세 가지 상상을 풀어놓은 옴니버스 영화다. 독특한 영화 세계를 구축한 세 감독의 집합만으로도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는데, 냉정하게 말해서 의 단편들이 이들의 전작들보다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나의 도시에 대한 세 개의 다른 시선, 혹은 각 단편들에 묻어나는 감독들 고유의 개성을 확인하는 정도에 기대치를 맞춘다면 볼 만한 영화가 되겠지만, 그 이상을 바라는 건 무리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도쿄에 살지 않는 외국인 감독들이 도쿄라는 공간을 형상화하고 그 공간에서 도쿄의 오늘을 탐구하는 방식은 때때로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뻗어나가며, 눈여겨볼 지점들이 있다.

히로코는 왜 의자가 되었을까

피자 배달원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따온 이미지.

피자 배달원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따온 이미지.

미셸 공드리의 는 제목 그대로 시골에서 온 영화감독 지망생 아키라와 여자친구 히로코의 낯선 도시 적응기라고 불릴 만한 이야기다. 집이 없는 이들은 도쿄에 사는 친구의 집에 머무르며 자신들이 살 집과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러 다닌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고 꿈을 품고 도시를 방문한 두 연인은 이별한다. 그러고 나서 미셸 공드리다운 난데없고 기이한 상상력이 펼쳐지는데, 그건 히로코가 갑자기 의자로 변신하는 설정이다. 지극히 미셸 공드리다운 귀여운 판타지지만, 단편이라는 시간적 한계 때문인지, 아니면 서사적 밑받침이 부족한 그의 상상력 탓인지, 사물로 변하고 마는 히로코의 마음에 동화되기는 어렵다.

는 공드리의 환상적인 변신술보다는 오히려 현실적인 배경과 설정들에 눈길이 가는 작품이다. 이를테면 영화가 내려다보는, 서로 다닥다닥 붙은 수많은 집들 중 아키라와 히로코에게 허락된 공간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들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정작 집의 내부에 들어서면 그 공간은 안락한 집이 아닌 비좁은 감옥처럼 느껴진다는 점, 무엇보다 집 렌트 비용이나 주차료와 같은 공간의 교환가치를 자꾸만 상기한다는 점 등이 그렇다. 히로코가 사물로 변신하는 설정도 결국은 비인간적인 수많은 도쿄의 구조물들 속에서 점차 비가시적 존재로 퇴화하는 인간의 슬픈 초상처럼 보인다.

레오 카락스의 은 세 작품 중 유일하게 일본인이 아닌 배우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다. 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하수구에서 기어나와 도쿄 거리를 활보하는, 대다수의 도쿄인들과는 ‘다른’ 외모의 남자 메르드는 괴물의 형상으로 묘사되며 드니 라방이 연기한다. 시대적 배경은 불분명하지만 아마도 근미래인 것 같고, 이 혐오스러운 괴물의 출현에 시민들은 공포에 휩싸이는데, 발 빠른 미디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포를 조장하며 끊임없이 뉴스를 생산한다. 대중, 미디어, 괴물, 심지어 영화 후반부의 재판과 교수형 장면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조합한 영화는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흥미로운 건 표면적으로 매끈한 도심에 침입해 균열을 일으키는 괴물의 육체다. 원초적인 몸 연기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드니 라방은 이 역할에 더없이 적격이며, 그런 점에서 은 레오 카락스보다는 드니 라방의 영화라고 불릴 만하다.

지진같은 히키코모리의 사랑

그가 거주하는 하수구의 긴 지하 통로는 쇼핑센터가 즐비한 바깥 풍경과 달리 음침하기 짝이 없으며, 여기에는 심지어 2차 세계대전의 흔적이라고 할 만한 전쟁의 기억들이 물질로 남아 있다. 메르드라는 캐릭터가 도쿄라는 화려한 도시에 은폐된 더러운 얼룩을 체현한다는 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해석이지만,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그런 해석을 벗어날 때 찾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지막 장면까지 세심하게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봉준호의 는 11년째 집에서 나가지 않고 배달상품으로 일상을 유지하는 히키코모리 남자와 우연히 그의 집에 피자 배달을 온 소녀의 이야기다. 남자는 자신에게 피자를 전달해주고 갑자기 기절한 소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그녀가 자신과 같은 히키코모리가 됐다는 소식에 그녀를 찾으러 집을 나선다. 빈 피자 박스들과 각종 일회용 용기들이 구석구석 촘촘하게 쌓아올려진 남자의 집 내부는 전체로 조망되지 않고 파편화된 조각처럼, 미로처럼 찍혔다.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어두운 은둔의 공간이지만, 한 치의 오차 없이 정렬된 사물들 틈으로도 빛은 새어들며 히키코모리 남자와 피자 배달 소녀의 무표정한 눈빛이 마주친 순간에는 지진이 난 듯 예기치 않게 공간이 흔들린다. 특히 두 번의 지진 장면은 생명력을 잃고 웅크린 히키코모리들의 마음이 미세하게 떨리며 소통이 시작된 순간에 대한 극적인 형상화다.

지진 같은 히키코모리의 사랑

두 히키코모리의 힘겨운 대면과 이후의 어색한 공백, 그리고 이어지는 외적 요동은 영화적으로 묘한 리듬감을 형성한다. 영화가 빛이나 공간의 변화와 같은 인물 외적인 요소를 세심하게 활용해서 좀체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 히키코모리의 마음과 그 마음의 변화를 표현하는 방식이 아기자기하다. 또한 인물이 공간을 부유한다는 느낌을 주는 여느 영화들과 달리, 인물의 동선에서 공간이 점차 펼쳐지고 구부러지고 움직이며 인물과 함께 공명하는 듯한 경험도 선사한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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