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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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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을 잃고 울다

엑스 세대가 추억하는 최진실, 그의 죽음에 스며드는 미안한 마음
등록 2008-10-07 13:14 수정 2020-05-03 04:25

처음부터 최진실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학교의 친구들은 달랐다. 그들은 내게 매일 최진실을 전도했다. 친구들의 방에는 최진실 브로마이드가 하나쯤은 있었고, 그들의 교과서는 최진실 사진으로 포장돼 있었다. 어느덧 나도 그들을 따라 문화방송 에서 최진실에게 미적미적거리는 최수종을 욕하기 시작했다. 최진실은 절대적인 스타였다. 최진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최진실이 인기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최진실이 광고(CF)를 찍으면 일단 그 제품의 이름은 자동으로 기억됐고, 최진실이 드라마에 출연하면 그건 ‘최진실의’ 드라마였다.

1990년대 엑스 세대에게 ‘진실이’는 친구이자 누나이자 언니였다. 인생의 굴곡을 겪으면서 나이 들어가는 진실이를 보면서 때로는 안타까워했고, 때로는 안심했다. 한겨레 오계옥 기자

1990년대 엑스 세대에게 ‘진실이’는 친구이자 누나이자 언니였다. 인생의 굴곡을 겪으면서 나이 들어가는 진실이를 보면서 때로는 안타까워했고, 때로는 안심했다. 한겨레 오계옥 기자

똑 부러진 새댁이 불쌍한 아줌마로

김희애도, 채시라도, 고소영도 있었다. 하지만 최진실은 그들과 달랐다. 그들이 시대의 톱스타였다면, 최진실은 그냥 ‘최진실’이라는 이름이었다. 연기를 잘하든 못하든, 작품이 성공하든 못하든 최진실은 언제나 최진실이었다. 그래서 섭섭했던 적도 있었다. 다른 톱스타들은 30살이 넘어도, 결혼을 해도 여전히 도도한 톱스타였다. 지금도 그들은 20대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뽐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하지만 최진실은 그냥 나이 드는 것을 선택했다. 1990년대 초의 CF 요정은 1990년대 후반이 되자 문화방송 와 의 ‘똑순이 가정주부’가 됐고, 2000년의 시작과 함께 결혼을 발표했다. 요정이 주부가 되자 요정을 좋아하던 우리까지도 나이 드는 것 같은 섭섭함.

1990년대의 엑스(X) 세대는 그렇게 나이들어 ‘30대’라는 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인정하기 싫었을 뿐 당연한 일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떤 수식어보다 평범하게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렸던 이 스타는 화려해서 스타가 된 것이 아니라 수수했기 때문에 화려한 톱스타가 됐다. ‘진실이’는 단 한 번도 화려하거나 힘있는 여자를 연기하지 않았다. ‘최진실 신드롬’을 일으킨 에서도 그는 똑 부러지게 일 잘하는 평사원이었고, 문화방송 에서도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일어서는 ‘캔디렐라’였다.

‘스타 탄생’의 신화가 아직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을 때, 최진실은 내 옆의 친구가, 혹은 누나나 언니가 스타가 돼서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진실이 누나가 잘돼서 결혼도 잘하는구나, 잘 살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한국방송 을 볼 때 그렇게 속이 상할 수 없었다. 잘생기고 능력도 좋은 남자와 결혼해 잘 사는 줄 알았다. 어느 날 신문에는 최진실이 초췌한 얼굴로 병실에 누워 있는 사진이 실렸고, 그걸로 ‘우리 사이에서 태어난 요정’은 불우한 가정사의 주인공이 됐다. 그 뒤 으로 최진실의 가치를 새삼 입증했지만, 그 드라마는 더 이상 최진실이 예쁜 옷을 입을 수 없다는 확정판결과도 같았다.

불미스러운 일로 이혼한 과거의 톱스타는 이제 여전히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도 그것을 드러낼 수 없었다. 대신 몸뻬를 입고, 남편에게 끔찍할 정도로 얻어맞으면서도 남편을 붙잡는 의 ‘맹순이’(!)가 됐고, 문화방송 에서 남편의 불륜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저 살림만 할 줄 아는 주부가 됐다. 왜 저렇게 불쌍해야 하는 건가, 우리 ‘진실이’가. 예쁘고 똑 부러졌던 진실이가.

사람들은 톱스타가 평범한 우리보다 행복하게 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진실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어느 순간 불행한 인생을 사는 스타의 대명사가 됐고, 일반인이 ‘동정’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톱스타 중 하나가 돼버렸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의 그 예쁜 새댁이 남편이나 결혼 이야기만 나오면 침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됐다. 요정을, ‘진실이’를, 199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그것보다 처참한 일은 없었다.

숨이 멈춘 그의 몸을 실고 가는 후송차. 한겨레 신소영 기자

숨이 멈춘 그의 몸을 실고 가는 후송차. 한겨레 신소영 기자

모두가 안 불행, 모두가 빈 행복

그래서 문화방송 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비록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은 ‘남자 때문에’ 좋은 시절을 다 보낸 여자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이야기였고, 그것은 곧 진정한 ‘최진실’의 복귀이기도 했다. 이혼 이후 최진실의 상징처럼 여겨진 ‘뽀글파마’를 풀고 ‘맹순이’처럼 보이는 안경을 벗기자 최진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다시 최진실의 개인사 대신 그의 미소에, 결혼 전보다 더 멋지게 다듬은 각선미에 시선을 보냈다. 문화방송 의 ‘무릎팍 도사’에서 자신의 과거사를 담담히 말하면서 아이들과의 ‘행복’을 말하는 최진실의 모습은 얼마나 가슴을 짠하게 만들던지. 그래요 누나, 이젠 행복해야죠. 애들은 잘 클 거고, 이영자나 엄정화 같은 친구들도 있잖아요. 그리고 팬들도 있어요. 이젠 행복하길 바라요. 잘 살 거에요…,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떠난 10월2일, 최진실의 이야기를 하며 함께 일하는 동료의 눈은 붉게 충혈됐다. 동료는 최진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도 최진실이 데뷔 뒤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진실이 이제는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모두가 알고 있었던 여자, 모두가 그의 불행을 알고 있었던 여자, 하지만 모두가 행복을 빌어주던 여자. 그러나, 그 여자는 결국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죄책감을 지고 살 것 같다. 왜 나는 나의 스타를, 개인사를 알고 있었던 그 누나를, 행복을 바라던 그 아름다운 여자의 손을 잡아줄 수 없었을까.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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