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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를 위해 백남준이 갔네

등록 2008-08-22 00:00 수정 2020-05-03 04:25

라틴아메리카 16개국 작가 84명의 작품이 모인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

▣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태양과 정열의 땅 라틴아메리카. 그곳은 천혜의 자연자원이 차고 넘치고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혼재돼 있는 신비의 땅이다. 일찍부터 잉카와 마야, 아스텍 문명을 이어받아 고대문명을 꽃피웠지만 오랫동안 서유럽의 식민지로 착취당하고 난자당한 땅이기도 하다. 해외여행이 일반화한 요즘도 여전히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이자 가까이하기엔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다.

미국 중심 미술계를 타격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라틴아메리카의 거장들이 우리 곁을 찾아왔다. 지난 7월26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막을 올린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11월9일까지)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살아숨쉬는 이 신비의 세계를 한 꺼풀 벗겨 들추어낸다. 출품된 작품은 총 120여 점. 멕시코, 브라질, 베네수엘라, 페루, 칠레, 콜롬비아 등 라틴아메리카 16개국 출신 작가 84명의 작품들을 모았다.

이번 전시는 한국 주재 남미권 대사들의 제의로 이뤄졌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작품 선정권을 넘겨받아 라틴아메리카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공수했다. 자국 미술문화의 우수성을 경쟁적으로 알리려는 대사들의 노력 덕분에 각국을 대표하는 최고 작품들만 오롯이 남게 된 것은 행운이다. 전시는 그동안 서유럽과 미국 중심으로 흘러온 우리 미술계에 자성의 목소리를 제기한다. 미술은 유럽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보란 듯 이야기한다.

전시는 크게 네 부문으로 나눠 진행된다. 1910년 일어난 멕시코혁명이 1920년대 라틴아메리카 미술에 미친 영향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벽화운동’, 남미 특유의 혼혈문화가 엿보이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체성’, 남미 미술의 초현실주의 계보를 되짚어 보는 ‘개인의 세계와 초현실주의’, 그리고 현대미술의 경향을 살펴보는 ‘구성주의에서 옵아트까지’ 등이다.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에밀리아노 디 카발칸티, 페르난도 보테로, 루시오 폰타나 등의 작품들이 포함됐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여성주의 작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 멕시코 미술의 아이콘이 된 그의 초기 작품 7점을 만나볼 수 있는 건 전시의 큰 수확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들 작품을 전시하는 조건으로 같은 기간 틀락스칼라 주립미술관에 백남준의 작품 12점을 내걸어야 했다. 프리다 칼로의 남편이자 남미 벽화운동의 선구자인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도 빼놓을 수 없다. 옥수수 가루 파는 여성 노동자를 그린 과 풍만한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머리를 감는 여인을 그린 등 대표작이 전시 들머리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케이로스의 은 멕시코를 상징하는 여인이 정유공장을 끌어안고 있는 특이한 구도의 작품이다. 1938년 카르데나스 정권기 멕시코혁명의 절정을 알린 석유산업 국유화 과정을 표현했다.

갈등과 화해를 이미지로 주시하라

이번 전시는 20세기 초반부터 1970년대까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가 안고 있는 갈등과 상처, 그 치유 과정을 담고 있다. 작품 곳곳에 녹아 있는 전통과 현대, 유럽과 원주민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이미지로 주시하는 체험은 색다른 감상의 재미를 안겨준다. 라틴아메리카의 20세기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성인 1만원, 청소년 8천원, 초등학생 6천원. 02-368-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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