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웨스턴’식 서부극을 시원하게 보여주는 영화
▣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하긴, 마적 두목이 기차표를 가지고 열차를 타는 것은 아무래도 ‘폼’이 안 난다. 더욱이 총칼이 법을 대신하던 1930년대 만주 아닌가. 오른쪽 허리에는 총을, 다른 쪽 허리에는 칼을 찬 마적 두목이 좀스럽게 꼬깃꼬깃 접힌 표를 승무원에게 내밀고 기차에 오르는 일은 분명 ‘모양 빠지는 일’이다. 그래서 마적단 두목인 창이(이병헌)는 친일파 조선인 갑부인 김판주(송영창)가 내민 차표를 칼로 천천히 베어내며 말한다. “마적이 기차표 갖고 열차에 탄답니까.” 그럼 어떻게? “세워야죠.”
로부터
이렇듯 김지운 감독의 영화 (이하 )은 만주 벌판을 통과하는 열차를 막아 세우는 창이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세 ‘놈’ 중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나쁜 놈’ 창이는 영화가 시작되기 무섭게 부하들과 열차에 올라 닥치는 대로 쏘고 찌르며 일등칸으로 향한다. 김판주가 일본인 가네마루에게 팔아넘긴 한 장의 지도를 열차 강도로 가장해 다시 탈취해오기 위해서다. 그러나 막상 창이가 일등칸에 도착했을 때 가네마루는 이미 누군가의 총에 목숨을 잃고 싸늘한 주검으로 누워 있다. 가네마루에게 있어야 할 지도마저 사라지고 없는 상황.
창이보다 앞서 열차에 오른 ‘이상한 놈’이 있었다. 잡초 같은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열차 털이범 태구(송강호)다. 그가 일등칸에 타고 있던 일본인들을 죽이고 ‘룰루랄라’ 신나게 기차를 털 때, 기차가 갑자기 멈춰서면서 마적단이 들이닥친다. 태구는 금은보화와 한눈에 봐도 진귀해 보이는 지도를 챙겨서 잽싸게 열차를 빠져나오고 때마침 그 모습을 발견한 창이가 멀리 사라지는 태구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그러나 그때 창이를 향해 울려퍼지는 총성. 창이가 총구를 돌린 자리에는 그의 목에 걸린 현상금을 노리는 ‘착한 놈’ 도원(정우성)이 있다. 얼떨결에 지도를 손에 넣은 태구와 그를 쫓는 창이, 그리고 그런 창이를 다시 쫓는 도원은 이렇게 한 열차에서 운명처럼 맞닥뜨린다. 그리하여 이제 ‘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다양한 인종이 뒤엉키고 총칼이 난무하는 무법천지 만주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은 김지운 감독이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1966)와 고 이만희 감독의 (1971)에 영향을 받아 제작한 서부극이다. 영화 제목은 의 원제인 (The Good, The Bad, The Ugly)에서 따왔고, 만주에서 세 ‘놈’이 지도를 찾아 쫓고 쫓기는 이야기의 기본 틀은 세 사내가 만주에서 독립투사들의 명단이 적힌 불상을 찾아 헤맨다는 와 닮았다. 그동안 우리가 영화에서 주로 보아오던 서부극 이미지들- 마른 바람이 부는 황야, 그 광활한 공간을 홀로 지고 걸어오는 총잡이, 총을 뽑기 전 심장이 터질 듯한 정적 속에서 타오르는 눈빛, 그리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악당의 모습들- 은 대체로 할리우드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였다. 서부의 사막도, 광활한 대평원도 없는 우리가 서부극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낯선 일이다. 그러나 감독은 70여 년 전 만주라는 공간으로 카메라를 돌려 친근하고도 색다른 한국적 서부극을 보란 듯이 구현해낸다. 이탈리아가 미국의 정통 서부극을 ‘마카로니 웨스턴’(또는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소화해 서부극의 외연을 넓혔듯이, 은 그 ‘마카로니 웨스턴’을 우리식 재료와 양념으로 간을 한 뒤, ‘김치 웨스턴’의 경지를 관객에게 펼쳐 보인다.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시원하다. “광활한 황야를 질주하는 선조들의 로망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던 김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산지가 많은 한반도를 벗어나 끝 보이지 않는 만주 벌판을 배경으로 정신없이 질주하는 사내들 모습을 가득 담는다. 특히 후반부의 벌판 추격전은 이 영화의 압권. 지도를 들고 홀로 오토바이를 타고 앞서가는 태구를 창이가 이끄는 마적단과 또 다른 마적단인 삼국파가 쫓고, 총과 대포로 무장한 일본군도 나타나 추격전에 가세한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포가 터지는 광야를 홀로 누비며 일본군을 하나둘 제압하는 도원. 카메라는 이들의 쫓고 쫓기는 모습을 장장 15분 동안 한 번의 쉴 틈도 주지 않고 거침없이 보여주며 내달린다. 마치 한번 오르면 끝날 때까지 내릴 수 없는 롤러코스터처럼.
이병헌의 서늘한 눈빛, 정우성의 ‘간지’
이번 작품은 서부극을 표방하고 있지만 기본적 성격은 오락영화다. 이야기도 정체불명의 지도를 차지하려는 추격전으로 단순 명료하다.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과 독립군 이야기도 ‘살짝’ 녹아 있긴 하지만 전혀 심각하지 않다. 그보다는 정신없는 총격신과 수십 마리의 말과 오토바이가 일으키는 흙먼지 속에서 고 쫓기는 추격 액션이 영화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의 무기는 한 영화에 함께 이름 올리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는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 세 배우가 만들어내는 개성 강한 캐릭터와 폭소를 자아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상황이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태구), 최고가 되기 위해서 살인도 밥 먹듯 저지르며(창이), 돈 되는 것은 놓치지 않는(도원) 인물들이다. 그러고 보니 제목의 ‘좋은 놈’과 ‘이상한 놈’은 영화에서 찾을 수 없다. 단지 ‘나쁜 놈’이 있고 그보다 ‘더 나쁜 놈’, ‘더 더 나쁜 놈’이 있을 뿐이다. 사람 목에 칼을 꽂은 뒤 칼끝을 지그시 누르고, 무딘 칼을 앞뒤로 움직이며 사람의 손가락을 ‘써는’ 악역에 도전한 이병헌의 눈빛 연기는 서늘하기 그지없다. 긴 ‘기럭지’에 말을 타고 장총을 휘두르는 정우성의 ‘간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전성기 때보다 훌륭하다. 그가 두 손을 놓고 말을 몰다가 장총을 한 바퀴 돌리면서 장전하는 모습은 오래도록 입에 오르내릴 만한 명장면이다.
화면에 비치기만 해도 ‘빵 터지는’ 송강호
하지만 누구보다 돋보이는 것은 영화 내내 ‘깔깔이’(방한용 내의)에 고글이 달린 비행모자를 착용한 모습으로 사건과 말썽의 진원지에 늘 존재하는 문제적 인물 태구를 연기한 송강호다. 상황 파악이 안 되고 “뭐 하나 되는 일이 없어”라는 말이 입에서 떠날 새가 없는 태구로 분한 송강호는 화면에 슥 비치기만 해도 ‘낄낄낄’ 웃음이 터질 만큼 영화 전반에 유쾌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송강호가 쌍권총을 쏴대는 웨스턴을 만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지극히 발랄한 감독의 태도는 대놓고 웃기고 까놓고 망가지면서도 이야기의 강약을 조절하는 송강호의 생생한 캐릭터와 조화를 이룬다. 영화 에서도 쓰인 주제곡 의 흥겨운 멜로디는 보너스. 시원하고 또 시원한 영화다. 15세 관람가. 7월1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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