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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드하임의 뮤지컬을 본다는 것

등록 2008-06-13 00:00 수정 2020-05-03 04:25

스티븐 손드하임을 뮤지컬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한국 공연

▣ 박병성 월간 편집장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가 공연 중이다. 손드하임은 지금까지 가장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작곡가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뮤지컬 에서 신인 작곡가 존은 차마 그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그분’이라는 극존칭으로 존경을 표시했다. 미국 뮤지컬계에서 이것은 단순히 극중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는 뮤지컬계의 살아 있는 신으로 여겨지며 모든 뮤지컬 작곡가와 배우들에게 존경을 받는다. 뉴욕시티 오페라단은 그의 음악을 정기 연주 레퍼토리에 포함시킬 정도로 뮤지컬계뿐만 아니라 클래식계도 그의 재능을 인정한다.

음악 자체로 연기를 지시하는 작곡가

뮤지컬계에 손드하임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린 것은 작곡가로서가 아니라 작사가로서였다. 1957년 에서 대본의 아서 로렌츠, 작곡의 레너드 번스타인, 안무 및 연출의 제롬 로빈스 등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손드하임은 작사가로 이름을 올렸다. 손드하임은 이 작품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두 젊은 집단의 갈등을 생생한 언어로 포착해냈고, 그의 능력을 확인한 아서 로렌츠는 뮤지컬 에서 다시 그에게 작사를 맡겼다.

손드하임은 소극 (1962)로 뮤지컬 작곡가로 데뷔한 뒤 두 번째 작품 (1964)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이 작품은 비록 총 21회를 올리고 막을 내리고 말았지만 복잡한 화음과 치밀하고 이성적으로 계산된 선율 등 손드하임의 음악적 특징들이 드러나면서 일정한 마니아층이 생기기 시작했다.

‘뮤지컬 작곡가는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작가’라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음악이 왜 이 부분에서 도약을 하고, 변박으로 바뀌며, 왜 조바꿈이 이루어지는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음악은 철저히 드라마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곡을 쓸 때 대중가요나 뮤지컬 음악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AABA 형식을 피했다. 적어도 비슷한 멜로디가 세 번 반복되는 AABA 형식은 관객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음악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그는 삶이 매 순간 변하는데 극적인 음악 역시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손드하임은 자신이 참여하는 모든 작품에서 드라마나 연출까지 깊숙이 참여했다. 음악 자체에 배우들의 연기 지시나 연출 지문까지 함께 넣기도 했다. 에서 러벳 부인이 부르는 라는 곡에서는 노래에 효과음과 휴지를 넣어 그때마다 반죽을 하다가 벌레를 내려치도록 했다. 의 에서도 ‘blue’ ‘red’ ‘dot’ ‘fat’와 같은 간결한 단어의 반복과 짧은 스타카토로 점묘화를 그리는 화가의 모습을 음악적으로 보이게 했다. 이처럼 그의 음악 속에는 행동이 있고 인물들의 갈등이 있다. 그의 음악이 귀에 익지 않는다는 말들을 종종 하는데 인물들의 갈등을 담아내기 위해 불협화음이나 변박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매 작품마다 새로운 시도를 했다. 현대인들의 결혼에 대한 사고를 담은 (1970)에서는 현대연극적인 기법을, (1971)에서는 지그필드 폴리스의 레뷔 형식과 무시간적인 프루스트식 시간 구성을,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1976)에서는 가부키 방식을, 빅토리아 시대에 벌어진 괴담을 담은 (1979)에서는 그 당시 유행했던 그랑기뇰식 멜로드라마 형식을, 조지 쇠라의 가상의 삶을 다룬 (1984)에서는 점묘화적인 기법을 사용했다. 이처럼 그는 작품이 담고 있는 내용과 가장 밀접한 형식을 택했고 음악 역시 이것을 반영했다.

서른다섯 생일 파티에 만난 다섯 커플

는 손드하임을 뮤지컬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으로 손 꼽힌다. 이 작품은 그의 세번째 뮤지컬이었다. 의 성공으로 예술적 영감이 충만했던 해롤드 프린스와 함께 작업한 이 작품을 통해 손드하임은 자신의 뮤지컬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긴다. 이른바 ‘콘셉트 뮤지컬’이라는 방식으로 시도된 는 기존의 뮤지컬을 뛰어넘는 방식을 제시한다. 이전의 뮤지컬들이 플롯을 위주로 한 통합 뮤지컬 방식이었다면 콘셉트 뮤지컬에서는 모든 것이 ‘아이디어’에 의해 결정된다. 통합 뮤지컬은 플롯이 선행되기 때문에 이야기에 상관없이 일정한 플롯을 가진다. 그러나 컨셉 뮤지컬에서는 형식뿐만 아니라 음악 스타일, 무대가 아이디어에 따라 결정된다. 에서 컨셉은 ‘현대 사회에서 결혼 제도의 의미를 탐구한다’는 것이었다. 서른다섯 솔로인 로버트가 결혼한 다섯 커플들의 다양한 결혼 양상을 살펴보면서 결혼의 의미에 대해 고민한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컨셉 뮤지컬 줄거리를 요약하다 보면 ‘누가 누굴 만나 어떤 일이 벌어져서 어떻게 마무리 지었다’는 플롯을 갖춘 이야기가 아니라 개념(혹은 아이디어)으로 정리된다.

로버트는 자신의 서른다섯 생일 파티를 기점으로 다섯 커플을 만난다. 사소한 것에 아웅다웅 경쟁하는 커플, 너무나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 때문에 일탈을 꿈꾸는 커플, 이혼한 후에 오히려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커플, 결혼 전 심한 불안감에 시달리다 결혼에 성공한 커플, 이혼과 재혼을 거듭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커플. 이들은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를 그리워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싱글인 로버트에게 결혼을 권유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그를 부러워한다. 그렇다면 로버트는 결혼을 선택할까? 로버트는 을 마지막 곡으로 부르며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뉘앙스를 남기지만 끝끝내 결혼에 대한 자신의 결정을 밝히지 않고 선택을 관객들에게 맡긴다. 모호한 여운을 주는 결말도 해피엔딩 위주의 단선적인 결말을 지향하던 기존 뮤지컬과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서영주·양꽃님·이정화 등 베터랑 배우들

한국 공연에서 이지나 연출은 배우들을 각 캐릭터를 유지한 채 퇴장시키지 않고 무대에 머무르게 했다. 무시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구조를 효과적으로 풀어갈 수 있었다. 또한 각 캐릭터들의 성격과 상황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결혼 생활을 하는 커플들을 통해 결혼의 의미를 찾는다는 콘셉트를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도록 연출했다. 무대 역시 작품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주었다. 추상적인 무대를 사용했으며 유리와 퍼즐 같은 직육면체 구성을 통해 현대사회의 독립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은유했다. 손드하임에 대한 예우인 듯 배우 기근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보기 드물게 서영주, 양꽃님, 이정화, 고영빈 등 베테랑 뮤지컬 배우들이 대거 참여하여 뛰어난 앙상블을 선보인다. 8월 1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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