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침공 직전 1978년 카불에서 탈레반 지배 현실까지 담아낸 영화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그래도 당시는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여성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부르카에 숨기지 않아도 되던 시대였다. 아프간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아프간에서 주로 촬영된 할리우드 영화 는 탈레반이 나타나기 이전, 옛 소련이 침공하기 직전의 1978년 아프간 카불에서 시작한다. 당시 카불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에 원리주의와 세속주의 갈등의 그림자까지 드리워져 있었지만, 그래도 여성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케밥 냄새가 골목을 감싸던 시절이었다. 그곳에 스스로를 ‘카불의 제왕들’으로 부르는 소년들, 아미르(제케리아 에브라히미)와 하산(아마드 칸 마미드제다)이 살았다. 그들은 서로 절친한 친구로 여기지만, 영악한 동네 아이들은 그들을 주인 아들 아미르와 하인 아들 하산으로 생각한다. 더구나 하산은 아프간의 주류 민족인 파슈툰이 아니라 멸시당하는 소수민족 하자라 출신이다. 역시 동네의 다수인 파슈툰의 불량한 소년들은 싸움도 잘하고 자존심도 강한 하산을 눈엣가시로 여긴다. 그리고 훗날 그렇게 편견에 물들었던 파슈툰 아이들 중 일부가 탈레반이 되었다고 영화는 묘사한다.
‘하인 아들’ 하산의 강간 목격한 아미르
라는 제목은 아이들이 연을 날리는 카불의 행사에서 유래했다. 연을 날려서 다른 아이의 연줄을 끊는 전통놀이에 12살 아미르와 하산도 나선다. 아미르에게 연싸움 행사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호마윤 에르샤디)는 아들이 너무 유약해 불만이다. 부유한 바바는 하인의 아들인 하산처럼 아미르도 씩씩한 소년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진 아미르는 연싸움 대회에서 최고가 돼 아버지에게 인정받기를 소망한다. 결국 아미르와 하산은 환상의 호흡으로 아버지가 어릴 적 세웠던 기록을 깨며 연싸움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다. 하지만 형제처럼 지내던 소년들에게 시련이 닥친다. 연을 주우러 갔던 하산이 평소 그를 고깝게 여겼던 동네 소년들에게 동성 강간을 당하는 모습을 아미르는 무력하게 숨어서 지켜본다. 그것이 아미르에겐 또 다른 상처가 된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아미르는 하산의 방에 자신의 시계를 숨겨놓고 하산이 시계를 훔쳤다고 조작한다. 그 사건을 계기로 하산의 가족은 아미르의 집을 떠난다. 이윽고 카불에 소련군이 밀어닥치면서 평소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아미르의 아버지는 점령군을 피해 아미르와 함께 국경을 넘는다. 는 아이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아프간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렇게 발언한다. 아미르의 아버지는 세속주의를 대변하는 인물이고, 그의 입을 통해 ‘항상 쿠란을 읊어대지만 결국엔 쿠란의 뜻을 왜곡하는 율법주의, 평등을 내세우지만 폭력에 기대는 공산주의’를 비판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성인이 된 아미르(칼리드 압달라)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 카불에서 부유한 사업가였던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는 이제 미국에서 구멍가게를 지키는 노인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아미르는 소설가를 꿈꾸지만, 부자가 주말 시장에서 물건을 팔아야 하는 형편이다. 이렇게 거침없었던 카불의 사업가, 아프간의 장군이 미국에서 초라한 노인으로 늙어가는 모습을 통해서 이민자 사회의 서글픔이 처연하게 그려진다. 노인 바바는 여전히 자신의 조국을 침공했던 러시아에 대한 분노를 풀지 못한다. 유일한 희망인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마저도 아들의 꿈과는 다르다. 서글프게 늙어가던 바바가 숨을 거두고, 파키스탄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소년 아미르에게 글쓰기의 힘을 북돋워주었던 아버지의 친구가 아미르를 고향으로 부른다.
탈레반 악행 묘사 강력하게 이어져
아미르는 탈레반의 총에 맞아 숨진 하산의 아이를 구하러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간에 들어간다. 여기서 탈레반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로 묘사된다. 잔잔하던 스크린엔 여기부터 극적인 장면이 잇따라 나오지만 오히려 극적인 긴장감은 전반부에 견줘 떨어진다. 탈레반의 악행에 대한 묘사는 강력하지만, 강한 고발이 심층의 비판으로 깊어지진 못한다. 한편 미국과 아프간, 1970년대와 2000년대 전후를 오가는 는 때로는 너무 생략하고 때로는 너무 설명해서 구성의 균형이 완벽해 보이진 않는다. 그래도 오늘날 지구촌의 아픔인 아프간의 현실을 영화를 통해서 보는 드문 기회다. 영화에 미국적 관점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도 다행히 아프간 이민자의 눈을 통과한 미국적 시선이다. 영화의 원작자인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간인으로, 그가 영어로 쓴 소설 는 2003년 출간돼 베스트셀러 목록에 120주 동안 올랐다. 내용은 다분히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는 를 연출했던 샘 멘데스가 제작하고, 의 마크 포스터가 감독했다. 배우들도 대부분 아프간인, 아랍인이다. 때때로 는 소박하다 못해 심심하다. 그래도 하늘에 연이 날아오르고, 거리엔 케밥 냄새가 풍겼던 카불을 사랑한 사람들의 그리운 온기로 따뜻한 영화다. 3월1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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