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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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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게더, 코미디 투게더

등록 2008-03-14 00:00 수정 2020-05-03 04:25

박미선·유재석·박명수·신봉선 등 선후배들이 만들어가는 코미디쇼 한국방송

▣ 강명석 〈매거진t〉 기획위원

어린 시절, 일주일의 가장 큰 즐거움은 한국방송 와 문화방송 를 보는 것이었다. 는 필자의 아버지를 웃다 지쳐 눈물을 흘리게 만든 심형래의 바보 연기로 시작해 풍자 코미디의 거성 김형곤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 마무리하는 콩트 코미디의 정수였다. 또 는 김병조에서 주병진으로 이어지는 메인 진행자들의 화려한 입담과 데뷔와 함께 입담 하나로 사람들을 ‘죽였던’ 박미선의 ‘별난 여자’ 같은 시대를 앞선 코미디가 등장했다.

‘이건 뭐’ 만담, ‘웃지 마 사우나’ 콩트

한국방송 (목요일 밤 11시5분)는 바로 그들을 위한 ‘꿈의 구장’이다. 박미선과 유재석, 박명수, 지상렬, 신봉선 등 코미디 선후배들이 고정으로 출연하는 는 이경실을 보기만 하면 얼어붙었던 박명수의 신인 시절을 알 수 있고, 지금은 ‘진행 중독’에 걸린 유재석이 ‘무대 울렁증’이 있던 시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에는 박미선의 윗세대는 등장하지 않는다. 박미선이 요즘은 ‘박미선의 남편’이 된 이봉원의 소식을 전하는 정도다. 그러나 를 이끄는 것은 남을 웃기는 것으로 20여 년의 세월을 버틴 코미디언들의 ‘구력’이다.

지금 공중파 3사의 주요 버라이어티쇼는 버라이어티쇼 전문 ‘예능인’들이나 스타들의 잔치다. 아예 토크쇼에서 대접받을 유명한 스타가 아니면 여러 버라이어티쇼에서 게스트와 고정 패널과 ‘2인자’의 자리를 거치며 버라이어티쇼의 ‘감’을 잡아 ‘예능인’으로 안착해야 한다. 반면 에서는 1980년대를 노래가 아니라 입담으로 휩쓸었던 노사연이 가장 웃기는 게스트 중 한 명이었고, 박미선은 ‘별난 여자’에서 ‘봉원이 아내’가 된 인생사를 재밌게 털어놓으며 새삼 주목받았다. 에서 종종 유재석을 ‘신’으로 여기는 한국방송 의 김대희 같은 코미디언을 데려와 코미디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코미디언들의 ‘세대 공감’이다. 그래서 는 버라이어티쇼 시대에 적응한 코미디쇼의 또 다른 모습이다.

는 현재 버라이어티쇼의 여러 장르를 동시에 소화한다. 게스트의 이야기를 듣는 ‘이건 뭐’는 토크쇼이고, 출연자들이 사투리를 쓰는 여성으로 설정해 토크를 나누는 ‘웃지 마 사우나’는 출연자의 실제 이야기와 콩트가 버무려진 상황극이며, 추억의 인기 가요를 가사를 바꿔 부르는 ‘도전 암기송’은 게임쇼다. 그리고 이 코너들은 모두 각본 대신 애드리브로 채워진다는 점에서 ‘리얼’을 중요하게 여기는 요즘 버라이어티쇼의 유행을 반영한다. 하지만 의 코미디언들은 모든 코너에서 코미디를 한다. ‘이건 뭐’에서 게스트에게 계속 시비를 거는 박명수와 그런 박명수의 약점을 잡아 끊임없이 그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유재석은 만담의 재현이고, ‘웃지 마 사우나’의 원류는 최양락과 김학래가 했던 ‘괜찮아유’ 같은 콩트다.

송대관도 동방신기도 몸 개그 나서

‘도전 암기송’의 목표는 노래를 빨리 외워 그들이 갇혀 있는 사우나를 탈출하는 것이지만, 정말 중요한 건 먼저 탈출하기 위해 온갖 유치한 장난으로 서로를 방해하고, 박명수를 웃기면 탈출할 수 있는 ‘박명수를 웃겨라’ 같은 찬스에서 온갖 분장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과정에서 나오는 ‘몸 개그’다. ‘웃지 마 사우나’가 끝날 때마다 출연자들이 합창하는 “콩트는 콩트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가 어떤 프로그램인지 드러내는 구호다. 의 코미디언들은 형식이 파괴되고, 각본 대신 ‘리얼’이 대접받는 버라이어티쇼의 시대에서 자신들의 ‘구력’으로 ‘콩트 시대’의 코미디를 보여준다. ‘웃지 마 사우나’에서 유재석은 물이 흥건히 고여 미끄러워진 목욕탕 휴게소 바닥을 보면서 “웃기기 좋은 환경”이라며 몸을 내던져 넘어지는 슬랩스틱코미디를 보여주고, ‘도전 암기송’에서는 게스트인 정시아가 춤을 추자 곧바로 모두 코믹한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운다. 출연자들이 어느새 나이트클럽을 연상시키는 상황극을 연출하는 것이다.

버라이어티쇼의 여러 요소를 충족시키면서 코미디를 용해시키는 코미디언들의 역량은 버라이어티쇼의 집합체인 를 새로운 영역으로 끌고 간다. 고정 출연하는 코미디언들이 계속 코미디를 하면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는 코미디언들의 이자, 어떤 연예인이든 부담 없이 코미디 연기를 할 수 있는 코미디쇼이기도 하다. 의 게스트는 각자의 소지품을 이용해 토크를 끌어내는 ‘이건 뭐’를 통해 어떤 게스트든 한 번 이상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프로그램과 섞이고, ‘웃지 마 사우나’에서 코미디 연기를 하며, ‘도전 암기송’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고정 출연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몸 개그를 할 수 있다. 에서는 송대관처럼 어지간한 진행자들은 상대하기 어려운 선배 가수들도 ‘호텔 복도에서 소변 본 이야기’까지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고,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도 사우나 탈출을 위해 스스럼없이 대머리 가발을 쓸 수 있다. 버라이어티쇼에 고정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상황극과 게임을 집어넣어 신나는 놀이판을 만드는 것은 유재석이 진행하는 모든 프로그램의 이상적인 방향이다. 그러나 게스트와 고정 출연자의 구분 없이 누구나 스스럼없이 코미디를 할 수 있는 것은 가 유일하다.

시절 설렘으로

는 버라이어티쇼가 모든 오락 프로그램을 삼킨 시대에 어떻게 장르의 고유성을 지킬 수 있는지 보여준다. 어떤 형식이든, 누가 하든 코미디를 할 수 있다면 그게 코미디쇼다. 이는 존폐 위기를 겪고 있는 음악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는 아직 완성형은 아니다. 비슷한 분위기의 코너 세 개가 반복되는 프로그램의 구성은 출연자가 같은 형식의 코미디를 반복하게 하고, 어떤 게스트든 일정 시간 이상의 시간을 분배하는 의 형식은 고정 출연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코미디를 보여주기 어렵게 한다. 이 때문에 는 말 그대로 ‘폭주’하듯 코미디가 이어지다 차분한 토크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최근 가 방영 도중 출연자의 과거 자료를 보여주거나, 박명수에게 캠코더를 쥐어주고 유재석의 모습을 찍게 하는 등 프로그램의 외연을 조금씩 넓히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는 조금씩 웃음의 소재들을 넓혀나가면서 더욱 확장된 코미디쇼가 될 수도 있다. 누가 출연하든, 무엇을 하든 모든 것이 넘어지고 망가지는 코미디가 될 수 있는 코미디쇼. 가 그런 파라다이스를 만들어준다면, 20년 전 주말을 기다리던 그 시절의 마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본방 사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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