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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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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탑의 귀환’ 중

등록 2008-03-07 00:00 수정 2020-05-03 04:25

‘구정동 삼층석탑’ 급조된 지 45년만에 제자리에 돌아온 염불사 동탑

▣ 경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45년! 석탑이 제 몸 움직이는 데 중년 나이를 훌쩍 넘는 시간이 걸렸다.

지난 1월25~26일 신라 명찰 불국사의 들머리인 경주시 구정동 삼거리. 이틀 내내 이곳에 있던, 5m 넘는 신라 석탑을 뜯어 트럭에 옮기는 작업이 벌어졌다. 불국사역 앞 삼각지 공원에 있던 8세기 신라 불탑을 시청 지시를 받은 용역업체 직원들이 조각조각 해체한 뒤 포에 쌌다. 탑은 이틀 동안 몸체, 기단, 지붕돌(옥개석) 등 30여 점의 부재로 해체된 뒤 크레인으로 트럭에 옮겨졌다. 뒤이어 탑 부재들은 남산 동쪽 쑥두듬골이란 골짜기에 가지런히 내려졌다.

1963년에 뚝딱 짜맞춘 정체불명의 탑

쑥두듬골? 남산 칠불암 가는 등산로 길목인 이곳은 에 1300여 년 전 경주 사람들의 마음을 고승의 낭랑한 염불 소리로 달래주었다고 기록된 신비의 절 염불사(남리사로도 부른다)가 있던 자리다. 옮겨진 탑은 바로 절터의 동탑이었다. 1963년 이후 불국사 쪽으로 옮겨져 다른 석탑 부재와 강제로 몸까지 섞으며 억지 기념물이 되었다가, 이제야 본디 터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경주시가 지난해 6월부터 약 5억원을 들여 남산 종합정비안에 따른 경주시의 절터 쌍탑 복원을 추진하면서 탑의 비원이 풀린 셈이다.

‘구정동 삼층석탑’으로 이름까지 바뀌어버린 탑의 오욕은 1963년 시작됐다. 5·16 군사 쿠데타 뒤 경주에 내려온 군인 출신 시장은 대통령 박정희의 경주 순시 소식을 듣고는 상징 기념물로 염불사터에 흩어졌던 동탑의 부재들을 점찍는다. 처마선이 경쾌하고 시원한 동탑의 몸돌을 쓰되, 부재가 없던 1층 지붕돌과 기단부 일부는 성덕왕릉 부근인 도지동 이거사터에 굴러다니던 폐탑 부재들을 짜맞추기로 했다. 경주종합개발을 명분 삼아 며칠 사이 정체불명의 탑을 뚝딱 만든 것이다. 순시 코스인 불국사 들머리 장터 자리에 급조한 탑을 척 세워놓았고, 그것이 ‘구정동 삼층석탑’으로 탈바꿈해 40년 넘게 서 있었다. 탑은 전체적인 균형감, 비례도 맞지 않고 기단부도 색깔과 재질이 다른 탑재들이 뒤섞여 한눈에도 어색하다. 시 쪽도 두 탑의 억지 결혼이 마음에 걸렸는지 표지판조차 세우지 않았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2003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발굴 복원 작업 이후 동탑을 원래 자리에 되돌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1998년부터 남산 정비사업을 추진해온 경주시 쪽은 국가 예산지원이 여의치 않다며 복원을 미뤄오다가 지난해 20억원, 올해 32억원으로 증액되자, 탑자리의 이전 작업에 팔을 걷어붙였다. 막상 탑을 해체하려니 “지역 상징물이 없어진다”는 불국사 인근 주민들의 반대도 거셌다. 1월5일 탑 이전을 알리는 고유제를 치렀으나, 주민들은 “다른 상징물 등을 건립해달라”며 실력으로 크레인 진입을 막았다. 결국 조형물 건립 약속을 한 뒤 보름 이상 지나서야 탑은 염불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경주시 쪽은 “동서탑 몸체 복원은 1층 몸돌과 노반 등 전체 부재의 40%를 새 부재로 갈아끼우면 된다. 국가문화재 지정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앞서 거쳐야 할 고비가 있다. 우선 탑터를 전면 발굴해야 한다. 2003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는 탑터의 기반 일부만을 조사한 것에 불과하다. 기단 자리의 하부를 모두 들어내 전면 발굴한 뒤 다짐돌(적심석)을 새로 채워넣어야 한다. 발굴이 제대로 안 된 일부 기반 위에 탑을 올리면 탑의 안정성에 문제가 생기고, 발굴되지 않은 터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애초 경주시청 쪽은 설을 쇤 뒤 지반 조사를 거쳐 곧장 탑을 쌓으려 했으나 연구소의 만류로 현재 복원 공사는 중단된 상태다. 이에 따라 탑 복원은 빨라도 4월 뒤에나 본격화할 전망이다. 지병목 연구소장은 “탑터 발굴을 제대로 하지 않고 맨땅에 복원할 뻔했다”며 “절터를 발굴한 연구소쪽 과 탑 복원에 대해 좀더 긴밀한 협의를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치되고 있는 탑 부재들도 논란거리

탑재에 억지로 끼워맞춘 이거사터 탑 부재들의 복원도 논란거리다. 이거사터가 개인 땅인 탓에 탑 부재는 돌아가지 못한 채 염불사터에 동탑의 다른 부재와 뒤섞여 방치되고 있다. 박방룡 국립공주박물관장은 “이거사터에 다른 탑 부재들이 온전히 남아 있어 탑을 복원하고 절터를 정비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경주시청 문화재과의 오민규 주사는 “이거사터는 남산정비사업 대상지역이 아니어서 국가 예산이나 시 예산으로 당장 매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시에서 터를 사들여도, 발굴조사를 해서 절과 탑터의 윤곽을 정하고, 사적 신청도 해야 하므로 복원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염불사탑의 귀환으로 경주벌에서는 올해 중 탑 세 개가 다시 솟아나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이거사터에서 탑이 솟아날 수 있을지는 아직 기약이 없다. 경주를 잘 아는 답사객들은 염불사터와 이거사터에 흩어진 탑재들을 돌아보면서 마음속으로 빌곤 한다. ‘탑이시여 솟으소서! 공덕으로 솟으소서! 노피곰 노피곰 솟으소서!’



남산 문화재를 어쩌나 보자

배리삼존불입상의 보호각 철거, 마애불의 복원 방안이 시험대 위에



경주 남산은 불교 문화유산의 성지이자 후대 문화재 관리의 지혜를 떠보는 시험장이다. 염불사 쌍탑 말고도, 산 곳곳에는 보수 복원을 기다리는 문화유산들이 널려 있다. 복원 방식을 둘러싼 논란 또한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보호각 철거를 추진 중인 남산 서쪽 선방골의 배리삼존불입상(보물 63호·사진)과 지난해 거꾸로 처박힌 채 발견된 남산 남동쪽 열암골의 8~9세기 마애불의 복원 방안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천진한 미소를 지닌 7세기 배리삼존불입상의 경우 서산 마애삼존불처럼 보호각(닫집)을 2월 완전히 걷어내려다 일부 전문가들이 제동을 걸어 경주시 쪽이 고민에 빠져 있다. 배리 불상은 1970년대부터 전각을 씌웠으나 최근 통풍이 안 되고 습기가 차 불상 아래에 곰팡이가 끼는 등의 피해가 생기자, 철거론이 제기된 바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직접 철거 지시 공문을 내려 경주시 쪽은 작업설계까지 승인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정우택 동국대 교수 등 일부 문화재위원들이 비바람 등을 직접 받는 데 따른 암질의 풍화 변질을 우려하는 견해를 내비치면서 유보 쪽으로 바뀌었다. 서산 마애불의 경우 위쪽 석벽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비를 막아주는 반 지붕 구실을 하지만, 배리 석불은 원래 눕혀졌던 석불들을 모아서 세운 노천불이라 지붕을 그냥 걷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경주시청 쪽은 “철거는 보류하고 문화재청과 보완책을 협의할 방침”이라며 “당장은 석불 주변 수목들을 베어 통풍이 잘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온전한 얼굴상이 공개되면서 관심을 모았던 열암골 마애불 복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거꾸로 처박한 얼굴과 몸체를 누운 부처상(와불) 형식으로 먼저 돌려세우기로 했으나, 유물 안전을 확실히 보장할 공법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지난해 12월 제안설명회에서는 유압잭, 강철선보다 강한 원사(실)를 사용한 인양기법, 19세기 파리 콩코르드 광장의 오벨리스크 기념비를 들어올렸던 도르래 공법 등이 업체와 학계로부터 제시됐으나, 보류 결론이 났다. 문화재위원들은 마애불은 물론 세계 유산인 남산의 경관 등에 대한 안전 대책이 검증되지 않았다면서 제안 채택을 미뤘다. 지병목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소장은 “3~4월께 다시 제안을 받을 예정이나, 흙 속에서 잘 보존됐던 마애불이 복원 중 되려 훼손될까봐 부담이 크다”며 “숭례문 소실 등의 여파도 감안해 시간이 걸려도 더욱 신중한 안전대책을 세운 뒤 복원하자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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