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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주류, 최선을 다해 부딪히기

등록 2008-01-11 00:00 수정 2020-05-03 04:25

여성이 ‘떼거지’로 나오는 비인기 종목 스포츠 영화 들고 온 임순례 감독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은 임순례 감독이 이후에 7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알려진 바대로 영화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핸드볼팀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경기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사람들이 있는, 어쩌면 우리 생애 다시는 만나지 못할 아름다운 명승부를 은 영화로 옮겼다. 물론 최고의 순간 뒤에는 최악의 시간이 있었다. 아테네의 그들도 우리처럼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기 위해 최악의 순간을 견뎌야 했다. 올림픽 금메달의 주역 미숙(문소리)은 남편의 사업 실패로 생계마저 위협당하는 형편이다. 밥줄이던 팀마저 해체되자 아이 딸린 아줌마 미숙은 생계를 위해서 대형 마트에서 일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미숙의 동료였던 혜경(김정은)은 일본 실업팀 감독으로 성공하고 여자핸드볼 대표팀 감독으로 부름을 받지만, 이혼 경력 등을 이유로 감독 ‘대행’ 꼬리를 떼지 못하고 퇴출당한다. 여기에 한평생 대표팀 선수가 소원이었다가 뒤늦게 은퇴할 나이에 처음 태극마크를 다는 정란(김지영)이 가세한다. 아줌마 선수들은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에 합류하게 되고, 유럽에서 돌아온 핸드볼 스타 승필(엄태웅)이 감독으로 부임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갈등과 눈물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오랜만에 작품으로 돌아온 임 감독을 만나서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심재명 대표 아니면 기획 못 할 영화”

영화화를 하게 된 계기는?

아테네올림픽 결승전 경기를 보면서 정말 감동을 받았다. 몇 달이 지난 뒤에 MK픽처스 심재명 대표가 그 선수들 얘기를 기획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방송 ‘히로시마의 두 여자’ 편에 임오경, 오성옥 선수의 얘기가 나왔는데 그걸 보고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하더라. 단순한 여자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면서 운동하는 아줌마들 얘기라서 더욱 힘이 있다고 판단했나 보다. 나한테 첫 번째로 얘기한 건 아닌 것 같고. (웃음) 다른 감독들에게 제안을 했는데 다들 시큰둥했나. 당시 라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캐스팅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심 대표가 시나리오를 보여줬는데 초고가 좋았다. 정서가 내가 했던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만 손을 보면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한국에서 스포츠 영화도 어려운데, 여성 스포츠 영화를 만드는 일은 더욱 힘들지 않았나?

그렇다. 스포츠 영화에다 비인기 종목이다. 거기에 여성들이 떼거지로 나오고, 연출도 나한테 맡기고. 이런 안 좋은 세 가지 조건을 고루 갖춘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심재명 대표가 아니면 기획할 수 없는 영화다.

미숙 역은 오성옥, 혜경은 임오경 선수가 연상된다. 사연이나 캐릭터를 그렇게 빌려왔나?

일본에서 감독 생활을 하다가 온 것 때문에 혜경은 임오경 선수이고, 아이가 있으니 미숙은 오성옥 선수가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진 않다. 선수들의 사연이나 캐릭터는 재구성하거나 창조하거나 분산했다. 애를 키우고 나이가 많고 생활이 녹록지 않다는 상황만 빌려왔다.

경기 장면을 찍으면서 어렵거나 결과에서 아쉽지는 않았나?

하면서 어려웠고, 결과는 아쉽다. 스포츠영화치고는 물량 지원이 넉넉하지 않았다. 할리우드 스포츠영화엔 최첨단 장비가 동원된다. 선수 몸에 카메라를 달고, 플라잉 캠도 쓰고. 그 정도는 바라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덴마크 프로팀을 불러서 경기 장면을 찍었는데 7일 동안 촬영을 끝내야 했다. 그 기간에 준결승, 결승전을 다 찍어야 했다. 장비도 아쉬웠지만 시간이 부족하니까 더 좋은 장면을 잡아내기 어려웠다. 더구나 외국인 선수들에겐 배우가 아닌데 연기를 요구해야 했고, 우리 배우들에겐 선수를 요구해야 했다. 그래도 괜찮은 결과가 나왔다.

문소리 “는 고생도 아니었네”

배우들이 세 달 동안 핸드볼 훈련을 했다고 들었다.

몸으로 부대끼는 사이에 배우들의 융화도 쉬웠다. 문소리씨도 영화 를 하면서 고생을 많이 한 배우인데, 우리 영화에 비하면 는 고생도 아니라고 하더라.

지금까지 만들었던 영화는 (굳이 나누면) 남자들의 얘기였다. 처음으로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업이 어렵진 않았나?

사실 작품 소재를 택할 때, 이건 여자 얘기다 남자 얘기다, 감독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내 영화 속의 사람은 여자든 남자든 주목받지 못하는 환경에 처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사회의 편견이든 열악한 환경이든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얘기에 관심이 있다.

감독인 승필은 유럽식 과학적 훈련 운운하지만 실제론 허점도 많아 보인다. 여기에 아줌마 선수들의 한국식 핸드볼이 충돌한다. 영화의 초반을 남성적 합리주의와 여성적 연대의 갈등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유럽식이냐 한국식이냐 전형적인 스포츠영화라면 그 갈등을 따라가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 부분이 중요하게 다뤄지진 않는다. 결론적으로 승필이 한국적 핸드볼을 받아들이고 선수들도 승필의 지도에 동의하는, 양보와 타협을 생각했다.

스포츠 영화와 휴먼 드라마 성격이 동시에 있고, 나오는 인물도 많다. 균형 맞추기가 쉽지 않았겠다.

이전의 영화들도 그랬지만, 관객이 주인공이 누구라고 얘기할 수 있어도 나는 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짧게 나오더라도 무언가 하나씩 각인이 되는 스타일을 좋아한다. 이번 영화도 할리우드 영화 같으면 한둘의 인물에 집중했을 것이다. 하지만 7명의 주전 선수 모두가 하나씩 이야기를 가지고 가도록 고려했다. 경기 장면에서 골을 넣는 것도 배분하고.

코미디가 탄탄하다. 시사회에서 큰 웃음이 심심찮게 터졌다. 특히 김지영씨가 맡은 정란은 웃음을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사실 정란 캐릭터가 시나리오에선 훨씬 터프했다. 김지영씨가 맡으면서 터프하지만 귀여운 캐릭터로 바뀌었다. 김지영씨는 굉장히 영리한 배우다. 스스로 이미지가 문소리씨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머리도 진짜 아줌마처럼 다르게 하고 나왔다. 여기에 경상도 사투리 연기도 해야 했다. 김지영씨는 운동에 사투리 두 개의 기능을 배우느라 더욱 노력했다.

이미 결론 알려진 마지막 장면에 고민

미숙에게 또다시 시련이 닥치는 마지막 부분은 조금 신파로 보인다.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의 구성이다. 사실 이전의 작품보다는 영화적 클리셰를 사용한 편이다. 다만 억지스럽게 보이지 않도록 유의했다.

반대로 마지막 경기 장면에 드라마가 부족하지 않은가?

이미 결론이 알려진 얘기를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이었다. 촬영 시간의 제한 때문에 굴곡을 섬세하게 표현하기도 쉽지 않았다. 관객에게 다가가기 쉽도록 편집했다.

여전히 비주류의 이야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대학교수에 영화감독이니까 남들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스스로를 비주류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가 환경이나 운, 학벌이나 그런 것들로 사람의 처지를 갈라놓는 것이 좀 심하지 않나. 그것에 대한 나름의 소심한 반발이다. 더구나 갈수록 최선을 다하는 가치가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투박하지만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몸을 던지는 사람이 있구나, 이런 가치가 소중하구나,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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