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깔고 콘크리트에 물 쏟아붓고… ‘토목 문화 프로젝트’식 시각을 잡아줄 사람 필요해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야간상고 시절 교회를 가면 성가를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에 빠졌고, 기업 들어가서도 보너스만 받았다 하면 인사동 골목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니곤 했다. 당시 모르고 샀던 그림들 가운데 지금 꽤 비싼 값을 호가하는 그림도 있다….”
대선 직후인 12월21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홈페이지의 ‘e-매거진’난에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자랑 섞인 특별기고가 공개됐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발전을 기원하며 보내’왔다고 소개된 이 기고는 선거 두 달 전에 쓴 것으로, 그림을 보는 안목과 음악 사랑을 과시하는 내용들이었다. “프랑스 파리 출장 때마다 들른 현지 화랑 주인이 내가 눈여겨본 그림에 대해 ‘(언젠가) 동양의 눈 작은 사람이 사러 올 것’이라며 팔지 않고 기다렸노라”는 일화를 전하는가 하면, “거실·침실에 건 그림은 훌륭한 인테리어”라는 ‘소신’ 등도 나열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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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선자 쪽은 선거 뒤 언론에 문화인 이미지를 부쩍 부각시키는 낌새다. BBK 의혹을 대서특필하던 언론들이 대선 뒤 ‘인간 이명박’류 기사를 쏟아내면서 빠짐없이 문화적 소질과 취향들을 다룬다. 그의 취미라는 고전음악 감상은 그 수준이 연주하는 악단의 어느 부분이 약하다고 평할 정도라거나, 밤늦게 집에 와서도 케이블 방송 영화 채널을 켜놓고 보다 잠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등의 보도 내용이 그런 것들이다. 이 당선자는 투표 전인 12월5일에도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본관의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전시장을 가서 관람한 뒤 고인 자화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10월19일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는 문화예술인 10여 명과 대화하면서 “문화는 곧 돈 문제”라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문화정책 기조 ‘시간 맞춰 모양새 갖춰’
문화적 취향에 대한 이런 ‘주장’들이 문화인 이명박의 실체를 입증하는 ‘팩트’(사실)인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화랑주들은 미술에 관심 많다는 데 주목하지만, 수시로 인사동 화랑가를 출입했다는 ‘주장’에 대해 “소문이 날 텐데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어리둥절해했다. 음악 애호가들도 “감상 취향의 문제를 자질 덕목처럼 내세운 것 자체가 난센스”라며 웃는 이들도 있다. “영화를 일주일에 3, 4편은 보고 못 보면 새벽까지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잔다”는 그의 발언도 바쁜 일정과 60대의 체력을 감안할 때 납득하기 어려운 구석도 있다. 어쨌든 서울시장 시절 대중에게 청계천을 살린 생태문화 지도자로 이미지 홍보를 거듭했던 그가 대권 승부를 전후한 시점에서 유난히 문화인 면모를 과시하려 애쓰는 데는 배경이 있을 법하다. 일단 그가 2002~2006년 서울시장 시절에 벌였던 문화 시정 사업과의 연관성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문화정책 입안자로서의 철학, 미학적 식견과 한계가 낱낱이 까발려졌던 기간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시장 시절 ‘문화도시론’을 들고 나와 적지 않은 관련 사업들을 실행했다. 그러나 문화 시장으로서 성가를 쌓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사람들은 쉽게 잊지만, 시장 시절 그가 내놓은 문화정책과 프로젝트치고 시민단체, 전문가들과 대립과 논란을 빚지 않았던 것이 거의 없었다. 물론 결말은 거의 자신의 생각대로였다.
시장 시절 그의 문화정책 기조는 쉽게 말해 “(시설이든, 행사든) 철저히 주어진 시간에 모양새를 갖춰 만들어라. 눈에 띄는 명품이나, 유명 인사들로 콘텐츠를 채우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논의할 시간과 인문적 성찰을 요구하는 진보 시민단체와의 충돌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런 정책적 논란은 2004년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선임 과정의 논란으로 막을 올린다. 공모하겠다는 발표와 달리 측근인 배우 유인촌씨가 응모하지도 않았는데 이사장에 낙점해 ‘밀실 선정’ ‘날치기 선정’이란 문화계의 반발 속에 2년간 직무를 맡겼다. 같은 해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 논란도 불거진다. 건축가인 한양대 서현 교수가 시민들의 참여영상 수백 개로 마당을 꾸며 2003년 1월 당선된 ‘빛의 광장’안을 그는 2004년 대형 쇼 무대인 ‘하이서울 페스티벌’에 맞춰 잔디광장으로 바꾸었다. 시 관료들의 옹호에 힘입어 선정위원과 건축가의 동의도 없이 잔디광장을 만드는 괴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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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위대한 의자, 20세기 디자인’전에 이명박 시장의 사진이 내걸렸다. 스위스 비트라 디자인미술관 소장품 순회전인 이 전시에는 세계적인 문화예술인들이 디자인 의자에 앉아 찍은 사진들도 같이 나왔는데, 그의 사진이 끼어들면서 과잉 홍보 논란을 빚었다. 물론 그의 사진은 국내에서만 전시됐다. (사진/ 연합 성연재)
작품 훼손하며 이명박 홍보한 서울시립미술관
뒤이은 청계천 복원 사업은 사사건건 시민단체들과 충돌한다. 조선시대 석축 보존부터 주변 공간 디자인 문제까지, 민원인 시민단체들의 시위가 잇따랐으나, 그는 대부분 무시 방침으로 일관했다. 시 쪽의 일방적인 일정 추진에 항의해 2004년 5월 복원시민위원회에 참여했던 시민위원 20여 명이 사퇴하고 조선시대 석축 등 문화재 훼손 등을 시민단체가 고발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2005년 10월 콘크리트로 테두리를 바르고, 문화유산들을 시 쪽 판단과 구도에 따라 재배치한 물 흐르는 청계천 복원품을 시민들에게 봉헌한다. 당시 집을 고쳐주는 텔레비전 인기 프로그램 코너 ‘러브 하우스’의 도시판 ‘도시적 특수효과의 전시장’(건축가 황두진)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두 달 만에 관람객 1천만 명을 돌파했다.
이명박 문화 촌극 시리즈는 쉬지 않는 필름처럼 돌아갔다. 2005년 청계천 광장을 한 번도 걸어보지 않고 인도양 조개를 모델로 한 꽈배기 형태의 조형물 설계안을 보내온 미국의 늙은 팝아트 작가 올덴버그에게 6억원 이상을 안기며 청계천 상징 조형물을 맡겼다. 문화예술계의 공론화를 회피한 채 모두 합쳐 35억원이라는 국내 조형물 사상 최대 금액이 총건립 비용으로 들어간 올덴버그 조형물 은 미술인들의 반발 속에 2006년 완공돼 개운치 않은 명물로 자리잡았다.
그가 특별기고에서 사랑받는 나들이 공간이 되었다고 자평한 서울시립미술관은 자체 기획전보다 상업기획사의 블록버스터 전시에만 열을 올려 미술인들 사이에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바로 이 미술관에서 이명박 홍보물이 주연이 된 촌극이 두 건 일어났다. 2006년 4월 언론들은 서울시립미술관 현관 벽에 걸린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 의 일부 화면에 이명박 시장의 청계청 홍보 영상이 다섯 달 가까이 무단 방영됐고, 고인의 원본 작품은 아예 분실됐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상부 지시가 아니었다’는 강변이 있었지만, 백남준 작품을 훼손하고, 그의 청계천 치적을 동영상으로 끼워넣는 엽기적인 홍보 전술을 문화 참모 격인 미술관 직원들이 실행한 셈이다. 역시 같은 해 미술관에서 기획한 ‘위대한 의자, 20세기의 디자인’전에서는 외국 유명 문화예술인들이 의자에 앉은 모습을 찍은 사진 거장의 작품들 사이로 이명박 시장이 의자에 앉은 사진도 같이 끼워넣어, 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지원하되 간섭은 않겠다는 공언과 달리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대한 서울시 관료들의 과다한 간섭과 개입은 숱한 논란을 불러왔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이명박 홍보 해프닝은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시장을 치켜세우는 관료적 행태를 묵과 혹은 조장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이명박 시장은 임기 말년에 서울 한강 노들섬에 1만 평이 넘는 대형 오페라 하우스 건설과 서울시청 뒤편에 22층짜리 새 청사 건설 계획을 공표했으나 문화 환경 파괴 등 숱한 논란 속에 계획안은 지금도 가시화되지 못한 상황이다.
비판자는 비난하며 모방·포장에 능해[%%IMAGE6%%]
이명박식 토목 문화 프로젝트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언제나 전문가 집단과 논란 및 대결을 빚는다는 점과 창조 대신 모방과 포장 등 재활용에 매우 능하다는 점이다. 토목공사를 하듯이 문화 인프라를 속전속결로 건설하려다 보니, 적절히 해외 사례를 본떠 다듬는 공간의 정치학에 능했다. 그는 잘 모르는 대중에게 최대한 전시 효과를 증폭해 활용했다. 전시 효과의 촉매제로 동원된 것은 유명 예술인, 명품을 동원하는 문화 마케팅이었다. 서울시는 인공적으로 흘러내리는 청계천 물과 조경, 올덴버그의 꽈배기 조형물을 내세워 청계천 생태환경 문화 복원을 실행했다고 선전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백남준 소장품을 유례없이 훼손하고, 부하 직원들이 청계천 치적을 동영상으로 끼워넣어 켜는 ‘변태적 반달리즘’이 와중에 저질러졌다. 거장 정명훈을 서울시향 지휘자로 영입하면서 시드니에 필적하는 오페라하우스를 전용 홀로 짓고, 수년 안에 세계적 악단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 뒤 서울시는 타당성 검토도 없이 섬의 땅부터 사들이는 기민성을 보였다. 그는 도시계획을 할 때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대개조를 실행한 당시 시장 오스망의 근대적 방법론을 충실히 활용했다. 계획에 따라 부숴야 할 건 부수고 다듬어야 할 건 다듬고, 철저히 자신의 기준에 맞춰 모든 문화까지 재단했다. 그 성과의 총체가 바로 청계천 복원이었다. 그만큼 조직된 풍경의 스펙터클한 호소력을 절묘하게 활용할 줄 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진보 인사의 말마따나 “스펙터클은 체제의 조건과 목표를 총체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 문화 이야기를 할 때 말미에 돈을 빼놓지 않고 말한다. “예술가들이 돈 때문에 치사해지면 안 된다. 그들은 자존심으로 사는 것”이라고 열변을 토하고 나서 “문화는 역시 관객이 제일 중요하다”며 모순되는 말을 곧장 이어나가는 그다(10월19일 문화인 간담회). 문화도 경제이며 대중이 좀더 즐기고 편안하게 누릴 수 있는 실용주의, 실적주의가 이명박 문화론의 태반을 구성한다(공교롭게도 그의 최측근 정두언, 박형준 의원의 부인들은 모두 화랑업주다).
청계천 복원 공방에서 추상적인 여론 수렴, 문화우위론을 내세웠다가 ‘판정패’했던 시민단체, 지식인들은 이렇게 명료한 이명박 문화론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 중이다. 2006년 2월 문화연대가 이 시장 퇴임을 앞두고 열었던 평가토론회에서 활동가들은 ‘가장 말이 안 통하는 사람’ ‘비판자를 비난하며 상황을 돌파해간’ 이 시장의 시정이 되레 대중적 호평 아래 시민사회에 실패의 경험을 안겼다고 진단한 바 있다. “돈 가진 이가 누릴 수 있는 예술 행태와 문화를 연계시키는 수준”이라고 이명박 문화론의 허실을 짚어낸 도정일 경희대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선자 시각 잡아줄 ‘문화 측근’이 중요
“기본적으로 이 사람은 안 된다는 생각보다 좋은 참모, 좋은 정책 가이드를 받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개선된 문화정책을 실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언론과 시민사회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오리엔테이션을 해주는 것이 절실하다고 본다….”
지식인 사회 일각이 지적하듯 그가 문화정책에서 철학과 비전을 보여줄 것이란 기대감은 그리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다른 것 몰라도 문화정책만은 직접 챙기겠다”고 공언한 그에 대해 문화동네 전문가들은 당선자의 시각을 잡아주고 보필할 ‘문화 측근’들의 구실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새 대통령이 제발 선무당이 안 됐으면 좋겠습니다.” 대학로에서 일하는 공연연출가 ㅇ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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