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빅뱅이 아이돌이냐니, 촌스럽기는…

등록 2007-12-21 00:00 수정 2020-05-03 04:25

음악팬·소녀팬에 고르게 ‘음악에 대한 신뢰’받는 독특한 그룹 빅뱅

▣ 차우진 〈매거진t〉 기자

빅뱅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흥미로운 ‘아이돌’이다. 아니 그보다 먼저 촌스러운 질문부터 던져야 할 것 같다. 빅뱅은 아이돌인가, 아티스트인가. 지금도 여전히 음악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하는 이 구태의연한 질문에는 일단 함정이 숨어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먼저 아이돌과 아티스트를 구분하는 보편적 기준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질문이 성립한다고 해도 그보다 먼저 (대중)문화를 고급과 저급으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흔히 아이돌은 ‘기획사의 상품’이고 아티스트는 ‘자기 음악을 하는 작가’라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아이돌과 아티스트는 대척점에 설 수 있으며, 그 카테고리 안에 누군가를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이분법은 통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비틀스를 놓고 아티스트인가 아이돌인가를 질문하는 것과 같고, 조용필에 대해 진정한 음악가냐 TV 스타냐를 질문하거나 심수봉에 대해 트로트 가수냐 재즈 음악가냐라고 논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이건 모두 헛소리라는 얘기다.

엔터테이너의 모든 면 ‘레디메이드’

굳이 말하자면 비틀스는 전세계 소녀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던 아이돌이자 현대 대중음악의 기틀을 확립한 아티스트다. 조용필도, 심수봉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당대의 대중에게 사운드나 비주얼 혹은 그 어떤 것으로 큰 쾌락을 선사한 ‘엔터테이너’였으며 ‘음악가’였다. 그들이 작곡을 했든 안 했든, 비틀스든 비틀스 할아비든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대중음악의 가장 큰 매력은 그것이 순수한 쾌락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록음악의 모태가 됐던 1950년대 비트뮤직은 댄스음악이었고, 솔도 댄스음악이었다. 음악은 춤과 함께 발전했고, 그것이 대중음악의 시작과 끝이어야 했다. 빅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빅뱅에 대한 저 질문은 촌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빅뱅은 어떤 그룹으로 지금 여기에서 소비되고 있느냐는 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빅뱅이 무척 흥미로운 그룹이라는 전제가 성립된다. 이를테면 그들은 2007년의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엔터테이너의 모든 면을 연습실에서 준비하고 등장한 레디메이드 그룹이기 때문이다.

G드래곤과 TOP, 태양과 대성, 승리로 구성된 5인조 그룹 빅뱅은 여느 음악가들처럼 클럽 공연이나 싱글, 음반 발표로 음악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들은 10부작 리얼리티 다큐멘터리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획사 YG패밀리에서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연습생 시절을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이들은 제대로 된 노래도 공개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무대 공연을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정확히 말해 10대 음악팬들은 빅뱅에 관심을 가지고 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지켜봤다. 겨우 1년이 조금 넘은 과거의 일이다. YG패밀리가 빅뱅을 처음 등장시킨 곳이 TV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들은 TV가 강력한 파급력을 가진 매체이자 가장 적나라한 매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나 JYP엔터테인먼트와 달리 YG패밀리는 지금까지 양현석이라는 대표의 정체성과 맞물려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생성, 유지해왔다. 여전히 서태지라는 이름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단면을 상징하는 것이 YG패밀리라면, 소비자들에게 YG패밀리는 ‘신뢰할 만한 음악’을 만드는 곳이다. 여느 기획사와는 다르게 이해된다는 얘기다. 이런 판단의 근거는 앞서 거론한 ‘구태의연한 질문’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YG패밀리의 전략도 그 아래에서 가능하다.

리얼 다큐로 데뷔, YG패밀리의 선택

그래서 YG패밀리가 TV를 통해 빅뱅을 홍보한 것은 효과적이지만 위험할 수도 있었다. 자칫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회사의 신뢰도가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빅뱅은 곧 TV를 통해 놀라운 춤 실력과 래핑, 패션, 라이브를 선보였다. TV는 그 모든 과정을 대중에게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충실한 매체였고 YG패밀리는 회사의 이미지를 더 단단하게 굳혔다. 무엇보다 빅뱅이 TV를 통해 보여준 것은 다른 아이돌 그룹들과는 차별화되는 세련된 패션과 스타일이었다. 이들을 다룬 리얼 다큐 은 케이블 채널 시청률 1위의 자리에 올랐고 2006년 12월 정규 1집이 발매되기 전 4개월 동안 세 장의 싱글을 발표했다. 음반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빅뱅’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시사적이다. 일단 빅뱅의 홍보 포인트가 아이돌 그룹임에도 멤버들이 모두 작사와 작곡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빅뱅의 차별화 전략은 1차적으로는 ‘아티스트’ 이데올로기와 조우하고 있고, 2차적으로는 Mnet이나 MTV 같은 케이블 음악전문 채널과 베스티즈 같은 엔터테인먼트가 특화된 사이버 스페이스를 중심으로 지지층을 넓혔다는 점에서 트렌디한 아이콘으로 정체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빅뱅은 모호하지만 확실한 ‘음악성’이라는 기준을 일단 통과한 아이돌 그룹이자 지금 여기에서 가장 모던한 스타일을 선보이는 아이콘이다. 빅뱅의 이런 차별화 전략이 성공함에 따라 빅뱅은 웹 공간과 MP3가 잠식한 음반 시장에서 음악이 아닌 다른 것을 통해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생존한 대표적인 그룹이 되었다.

슈퍼주니어·원더걸스와 다르게 소비 돼

흥미로운 것은 빅뱅의 인기가 음악팬들과 소녀팬들의 고른 지지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빅뱅이라는 그룹은 같은 시기, TV를 통해 구성원들의 캐릭터로 승부를 걸었던 슈퍼주니어나 사용자제작콘텐츠(UCC)를 통해 ‘적극적 참여형 팬심’을 드러낸 원더걸스와는 다르게 소비된다.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운 ‘아이돌’의 처지에서 출발한 다른 그룹들과 달리 빅뱅은 음악을 근거로 다른 활동을 벌인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를 가지며, 이에 근거해서 그들을 지지하고 소비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빅뱅을 지지하는 근거에는 이들의 음악에 대한 신뢰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도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진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은 전형적인 백 비트를 기반으로 인트로(intro)와 버스(verse)의 매끈하게 다듬어진 질감, 귀를 감는 훅(hook)이 반복되는 코러스가 깔끔하게 조화된 멜로디의 곡이고, 이 곡은 빅뱅의 리더인 G드래곤이 작곡했다. 그런 점에서 빅뱅은 아이돌의 다른 기준을 제시하는 그룹이다. 빅뱅이 아이돌이냐 아니냐의 질문은 그래서 우문이다. 빅뱅은 이 시대가 낳은 가장 흥미로운 엔터테이너이고 이 사실은 당분간 유지될 예정이다.

▶바다 대신 무엇을 믿어야 하나
▶이태원은 누구의 땅인가
▶그분이 오셨네, 우리 누추한 삶에
▶‘인재숙’은 지방 교육의 숙명인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