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박진영·이승환 등 신곡 낸 가수들을 ‘추억의 대상’으로 만드는 프로그램들
▣ 강명석 〈매거진t〉 기획위원
유희열이라는 뮤지션이 있다. 프로젝트 그룹 토이를 이끌고 있는 30대 중반의 남자인데, 몇 년 동안 라디오 프로그램도 진행했고, 6년 전쯤 이라는 노래를 발표해 꽤 히트도 했다. 아, 그리고 물론 백발은 아니다. 유희열을 이리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은 지면 낭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이건 윤하 때문이다. 올해 19살로 이미 일본에서 홀로 데뷔해 나름의 성공을 거둔 이 당찬 소녀는, 유희열의 새 음반에 객원가수로 참여하기 전까지 유희열을 백발의 뮤지션으로 알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유희열이 누구인지 잘 몰랐다는 얘기.
‘다시 못 볼’ 황금시대 향한 그리움?
물론 윤하의 잘못은 아니다. 꼭 선배 가수라고 다 알 필요는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윤하가 알건 모르건 12월 음반 차트에는 적어도 1주쯤은 토이가 1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은 박진영이 1위를 기록 중이고, 서태지가 데뷔 15주년을 기념해 1만5천 세트 한정으로 내놓은 스페셜 음반 세트는 순식간에 매진됐다. 물론 지금 가장 인기 있는 가수는 빅뱅이나 원더걸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990년대의 인기 가수들에게도 여전히 몇만 장의 음반을 팔아줄 정도의 고정팬이 남아 있다. 그들은 전성기 시절, 몇만의 고정팬을 만들 정도로 몇십만에서 200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팔았기 때문이다.
한국방송 의 ‘불후의 명곡’은 그 시대에 대한 찬가다. ‘불후의 명곡’에 나오는 모든 가수들은 자신의 전설적인 과거를 말한다. “지금은 음반 시장이 불황이라” 음반이 잘 팔리긴 힘들지만, 그 시절에는 “100만 장도 거뜬”했고, 뮤지션이 직접 말하는 그 시절 비화는 1980~90년대에 팬클럽 한 번 가입했던 모든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그 시절에는 박진영이 고소영에게 전화를 걸어 〈honey〉의 뮤직비디오 출연을 부탁하자 고소영이 곧바로 수락했고, 이승환은 TV 출연 없이 라이브만으로 밀리언셀러를 달성했다. ‘7080’에 대한 향수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의 성격이 강하지만, ‘8090’의 가수들이 말하는 것은 10년 사이에 사라져버린 대중음악의 황금시대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있다. 그 시절 ‘국민가요’를 부르고 ‘국민가수’나 ‘라이브의 황제’ 소리를 들었던 가수들은 여전히 현역에서 맹렬히 활동한다. 그러나 더 이상 그들이 이끌었던 황금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2000년대 대중음악계에서 바라보는 90대 대중음악계는 다시 돌아올 것 같지 않은 황금기이고, 그때의 아이콘들은 현재의 나이에 상관없이 ‘불후의 명곡’에 오를 대상이 된다.
현재 음악(!) 프로그램 중 음악에 대해 이토록 디테일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불후의 명곡’ 밖에 없다. 의 창법이 왜 독특한지 공감하려면 그 노래를 알아야 하고, 박진영이 작곡한 에 대한 추억을 말하려면 의 ‘싫어! 싫어!’가 전국을 휩쓸던 그때의 분위기를 알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때론 ‘불후의 명곡’의 ‘선생님’과 큰 나이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제자’ 역할을 충실히 하는 신정환과 컨츄리꼬꼬의 활약은 코너의 재미와 음악의 포인트를 동시에 발견한다. 가수들이 말하는 노래와 춤의 포인트마다, 그들은 그것을 훨씬 더 과장하는 코미디 속에서 노래와 춤의 특징을 명확하게 기억하도록 만든다. 탁재훈이 아무리 연습해도 토끼춤을 제대로 추지 못하는 모습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은 무릎을 탁 치지 않았을까. ‘불후의 명곡’은 대중음악의 황금기인 80~90년대가 지금 대중의 향수를 자극하는 데이터 구실을 수행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시절엔 누구나 음악을 들었고, 그때 그 음악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모두 그때의 노래를 알고, 노래에 담긴 문화적인 코드를 기억한다.
의 ‘조로 고백’
문화방송 에브리원 도 마찬가지. 연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80~90년대의 스타들이 등장해 당시 있었던 무대 뒤 이야기를 고백한다. 투투의 황혜영은 당시 유명 그룹 누구와 사귀었고, 그룹 쿨의 초창기 멤버였던 유채영은 임창정과의 교제설이 거짓말이었다고 밝히기도 한다. 이니셜 토크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그때의 소문들이 를 통해 알려지고 잼, 투투, 쿨의 멤버들이 모두 잘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그때 그 시절 팬클럽에 가입하고, 오빠와 누나들의 공연을 쫓아다닌 사람들에게 즐거운 선물이 된다. 90년대의 가수들이 추억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고, 동시에 그들의 추억이 대중적인 TV 프로그램이 될 수 있는 건 90년대의 대중문화가 2000년대까지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불후의 명곡’과 는 동시에 한국 대중음악의 조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희열이 윤하보다는 나이가 많지만 백발은 아니다. 박진영은 지금 미국에서는 ‘신인’ 작곡가고, 무대 위에서는 10살쯤 어린 댄스가수들보다 더 빼어난 춤을 출 수 있다. 또 최근 미니음반을 내놓은 이승환은 여전히 록음악을 하며 3시간 동안 무대 위를 뛰어다닌다. 그들에게 ‘아이엔지’(ing)가 아니라 ’네버엔딩‘의 이름을 붙이고, ‘신곡’ 대신 ‘명곡’을 듣고자 하는 것은 지금의 대중문화가 이미 지쳐버린 것을 자백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사람들은 과거 처럼 음악 프로그램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음악에 배틀이라는 요소를 더해 신선한 재미를 준 문화방송 은 ‘음악 프로그램’으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오락 프로그램’으로는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지금 대중은 신인 가수들의 활기찬 무대건, 그래도 지금 우리나라의 각종 차트를 휩쓰는 인기 가수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건 요즘 음악은 좀처럼 듣지 않는다.
스페셜 음반보다도 신곡을 들어줘야
대신 시청자는 과거의 스타를 보고, 그들의 음악과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며칠 뒤에 새 음반을 발표할 현역들이다. 그들이 ‘불후의 명곡’에 오르는 것은 그들이 대중성에서 초월한 음반을 내고, 홍보를 위해 적성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에도 열심히 나가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개선된 뒤에 해도 될 일 아닐까. 얼마 뒤 열리는 서태지의 15주년 기념 공연에는 서태지를 존경하는 가수들이 그에 대한 헌정 공연을 한다. 에픽하이와 빅뱅 등 지금 가장 인기 있는 그룹들이 서태지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리고 서태지의 팬들은 그의 스페셜 음반 세트와 역시 한정 판매하는 MP3 플레이어를 샀다. 그 스페셜 음반 세트를 산 사람 중에는 필자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서태지에게 필요한 건 과거의 노래뿐만 아니라 내년에 낼 그의 새로운 노래를 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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