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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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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화하는 일본을 들이받다

등록 2007-10-12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자이니치의 삶 정면으로 다룬 영화 〈박치기 Love & Peace>〉 감독 이즈쓰 가즈유키 인터뷰</font>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시리즈가 돌아왔다. 교토를 배경으로 조선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렸던 의 두 번째 영화 〈박치기 Love & Peace〉가 10월11일 한국에서 개봉한다. 1968년이 시대배경인 에서 고등학생이던 주인공 리안성(이사카 순야)과 그의 여동생 경자(나카무라 유리)는 6년이 흘러 성인이 되었다. 교토에서 도쿄로 가족이 이사온 이유는 안성의 아들인 창수(이마이 유우키)의 근육병 고치기 위해서. 안성은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밀수에 뛰어들고, 경자는 연예계에 진출할 기회를 얻지만 ‘창씨개명’을 요구받는다. 이렇게 여전히 일본 사회는 ‘자이니치’(在日), 재일동포에게 자유를 허락지 않는다. 자이니치의 시선으로 일본 사회를 보는 논쟁적인 영화를 만든 감독은 자이니치가 아니라 일본인이다. 에 이어서 〈박치기 Love & Peace〉를 감독한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은 어떤 자이니치보다 정면으로 자이니치의 아픔을 응시한다. 이즈쓰 감독은 자이니치 영화제작자 이봉우 프로듀서와 호흡을 맞춰 시리즈 외에도 등의 영화를 만들어왔다. 는 일본 최고의 권위를 지닌 영화지 의 2005년 베스트 영화 1위에 꼽힐 만큼 주목을 받았다. 2006년에는 한국에서 개봉해 관객과 평단의 호응을 얻었다. 이즈쓰 감독은 신랄한 영화평론가, 재미있는 방송인으로도 활약하는 ‘종합예술인’. 거리에 그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힐끔거리고 주변을 서성일 정도로 유명 인사라고. 감독이 본업이라는 그에게 “아르바이트로 너무 큰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니냐”고 농담을 건네자 “인생이 아르바이트 아니냐. 더구나 나는 샐러리맨도 아니니까”라는 ‘현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예술가가 반드시 프로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아마추어리즘 안에서 영화를 만들어도 좋겠다”고 덧붙였다. 쉰 줄을 넘긴 지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청바지를 애용하고, 일본의 우경화를 질타하는, 68세대 감독과의 만남은 영화만큼 뜨거웠다.

“자이니치는 크게 웃고 크게 운다”

<font color="#216B9C">자이니치가 사회적 소수자로서뿐 아니라 영화적으로 어떤 매력이 있는가.</font>

= 일단 말의 재미가 있다. 그들은 일본어와 한국어를 ‘짬뽕’(비슷한 발음이었다)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일본 영화지만 일본에서) 외국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생긴다. 그리고 뭐랄까. 자이니치는 감정 표현의 폭이 크다. 크게 웃고 크게 운다. 옷 입는 방식도 묘하게 다른데… 색깔이 과감하다. 정말로 싸움도 잘한다. 그래서 영화로 다루기에 매력이 있다.

이즈쓰 감독에게 자이니치는 낯선 타자가 아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감독은 조선인 밀집 지역에 가까이 살아서 그들을 보면서 자랐다. 그가 만든 시리즈는 일본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일본의 우익이 감추고 싶어하는 역사, 예컨대 일제의 징병과 일본의 차별이 생생하게 〈박치기 Love & Peace〉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자이니치를 이해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차별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랄한 묘사도 서슴지 않는다.

<font color="#216B9C">일본인이어서 자이니치 얘기를 하기에 장점과 한계가 있겠다. 무엇보다 ‘자이니치도 아닌 네가 왜 나서냐’는 비난이 있을 것 같다.</font>

= 내가 왜 나서냐고? 아무도 안 하니까. (웃음) 어쩌면 이런 영화는 나와 이봉우 프로듀서가 아니면 하지 못한다. 오늘의 일본 영화는 한가로운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러니까 더더욱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자이니치 감독은 오히려 자이니치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겠다. 역사를 왜곡하거나 고통을 과장한다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니까.

<font color="#216B9C">와 〈박치기 Love & Peace〉가 다른 종류의 영화처럼 보인다. 가 청춘영화라면, 〈박치기 Love & Peace〉는 역사영화, 휴먼드라마의 성격이 더 강하다. 역사에 밀착하면서 유머가 약화됐다는 평가도 있겠다.</font>

= 유머를 위해서 역사를 버리기 어려웠다. 〈박치기 Love & Peace〉의 배경인 1970년대는 참혹한 시기였다. 의 시대인 1968년에서 〈박치기 Love & Peace〉의 배경인 1974년까지, 일본이 많이 바뀌었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1960년대 말은 변혁의 시대였다. 정말로 혁명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프리 섹스를 하는 나라가 오는 것 아닌가 설레었다. (웃음) 하지만 1970년대 들어서면 갑자기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반체제라는 말이 순식간에 죽은 말이 됐다. 1974년은 정치적 보수주의, 파편화된 개인주의로 들어가는 초입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의 삶도 더욱 어려워졌다. 그들은 대도시의 한복판에 살지만, 광야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고립됐다.

이렇게 고립된 느낌은 영화에도 살아 있다. 〈박치기 Love & Peace〉에서 안성의 가족은 에서보다 훨씬 고립돼 보인다. 그들을 감싸던 자이니치 공동체가 희미해졌고, 그들을 둘러싼 현실의 벽은 더욱 견고해졌다. 안성의 가족은 도쿄라는 허허발판에 고립된 난민처럼 보인다. 한편으로 영화는 1940년대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에 살던 안성의 아버지 진성(송창의)은 일제의 징집을 피해서 배를 타고 도망친다. 안성의 가족이 일본에 살게 된 이유가 일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조선인의 눈을 통해서 보는 전쟁의 역사는 경자가 찍는 일제를 찬양하는 영화와 중첩되면서, 역사의 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일본 연예계의 자이니치 문제 건드려

<font color="#216B9C"> 자이니치 차별은 물론이고 일본 역사에 대한 비판이 선명하다. 일본에서 논란이 많았다고 들었다.</font>

= 감동도 많았지만, 비난도 많았다. 몰랐던 역사를 알게 해줘서 고맙다는 얘기도 들었다. 반면에 반일영화라는 비난도 받았다. 이런 영화를 (일본에서) 만든 적도, 본 적도 없었으니까 당연히 놀랐을 거다. 부끄러운 역사를 드러내고, 연예계 터부를 건드렸으니.

<font color="#216B9C">슬쩍 지나가는 정신대 동원 장면은 영화의 흐름과 직접 관련은 없어 보인다. 굳이 넣은 것 아닌가.</font>

= (일본 우익이) 굳이 지우려고 하니까 굳이 넣었다. (웃음) 실제 제주에서 정신대 강제 연행이 있었는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흔이 넘은 제주 출신 노인의 증언을 들었다. 그의 증언에 바탕해 재현했다. 이렇게 여배우 경자의 자이니치 커밍아웃만 빼면, 영화의 90%는 사실에 기반했다.

이즈쓰 감독은 “그런 사례가 아직은 없으니”라고 말했다. 경자가 자신이 주연한 영화의 시사회에서 자이니치라고 커밍아웃하는 장면을 말한다. 연예계에 진출한 경자는 본명 대신에 ‘료코’라는 이름을 쓰도록 압력을 받는다. 이처럼 〈박치기 Love & Peace〉는 소문처럼 떠돌던 연예계의 자이니치 문제를 건드린다. 영화에는 “자이니치가 빠지면 홍백전 팀 구성도 힘들다”는 말도 나오고, “미소라 히바리” 같은 이름도 언급된다. 그만큼 일본 연예계에 자이니치가 많다는 뜻이다. 이렇게 이즈쓰 감독은 터부를 향해서 박치기를 날린다.

<font color="#216B9C">일본 연예계에 자이니치가 많다는 말은 영화가 개봉하면 한국에서 또다시 화제가 될 수도 있겠다.</font>

= 그런가. 일본 연예계는 일본 사회의 축소판이다. 리버럴할 것 같지만, 오히려 보수적이고 차별적이다. 자이니치라고 밝힌 교수, 작가는 있어도 연예인은 거의 없지 않은가.

<font color="#216B9C"> 에는 물론 〈박치기 Love & Peace〉에도 자이니치 청년들은 주먹깨나 쓰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폭력에 폭력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가.</font>

= 폭력을 미화하기 위해서 폭력 장면을 만들지 않는다. 폭력 너머의 것을 보이기 위해서 폭력을 그린다. 폭력은 무참한 것이고 폭력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관객의 마음에 침전해가기를 바란다. 그런데 〈박치기 Love & Peace〉의 전반부에 나오는 싸움 장면은 사실이다. 실제 1970년대 당시에 조선인 사냥이 있었다. 자이니치를 찾아내서 폭행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대학 응원단이 조선인 학생을 폭행하는데, 실제 1970년대 신문에 나온 사건에서 대학의 이름만 살짝 바꾼 것이다.

이즈쓰 감독은 “영화적 허구는 경자의 커밍아웃밖에 없다”고 말했다. 징병을 피해서 태평양의 섬을 떠도는 이야기, 어느 날 갑자기 닥치는 폭력, 본명을 숨기고 사는 서글픔, 〈박치기 Love & Peace〉에는 영화 같은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90%가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자이니치가 영화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는 방증이 아닐까. 그러나 그것은 지나온 얘기가 아니다. 〈박치기 Love & Peace〉를 상영하는 극장에서도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영화의 후반부, 경자가 영화 시사회에서 자이니치라고 밝힌 이후에 극장에서 욕설이 오가는 장면이 나온다. 일부 관객이 “조센징 돌아가면 될 거 아냐!”라고 욕설을 퍼붓자 경자의 지인들이 “쪽발이”라고 받아치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런 영화를 보는 영화관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즈쓰 감독은 “실제로 극장에서 욕설이 오가서 관객이 긴장했다”고 전했다.

일본인에게 욘사마와 자이니치는 달라

<font color="#216B9C">자이니치 차별이 한류 열풍 이후에 달라졌다고 생각하는가.</font>

= 바뀌지 않았다. 납치 사건에 화내다가도 는 좋은 것이다. 욘사마는 욘사마고, 자이니치는 자이니치다. 그렇게 한국과 자이니치는 분리해서 생각한다. 외국 배우로서 한류 스타에 대한 열광만 있을 뿐이다.

<font color="#216B9C"> 영화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font>

= 평화는 쟁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일본인은 자신으로부터 반경 5m 안의 평화, 젊은이들은 1m 안의 평화만 생각한다. 평화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는 것이다.

이즈쓰 감독은 “〈박치기 Love & Peace〉를 통해서 의 몇 배의 충격을 한국 관객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우경화되는 일본 사회를 향한 그의 박치기는 동북아 평화를 지향한다. 그는 “역사는 두 개, 세 개가 아니다”라며 “동북아 공통의 역사적 인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 무력이 아니라 지력(知力)을 키우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그의 ‘박치기’는 차별을 부수고 평화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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