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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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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가을, 조용히 보내는 미술편지

등록 2007-09-21 00:00 수정 2020-05-03 04:25

진위 논란·권력 다툼 속 미술판 벗어나 ㄱ선생과 가보고픈 옛 그림 전시회들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화가 ㄱ선생께

가을 바다 보이는 남도의 산기슭 화실에서 붓질에 바쁘시겠지요. 지난봄 강원도 산악 답사 때 암벽을 스케치하면서 던졌던 당신의 이야기가 생각나 글월을 띄웁니다. 풍경이란 눈에 허깨비처럼 들어와 마음에서 (실체로) 불거져나오는 것이라고 선생은 그때 말했습니다. 마음먹어 세계와 우주를 빚어낸다는 ‘일체유심조’의 불교 교리를 저는 떠올렸지요. 정성 가득한 마음인 성심과 진정성이 그림의 요체라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짝퉁과 진짜, 권력과 감투를 둘러싼 논란과 의혹들이 미술판에 판치는 요즘 성심으로 이미지의 진실을 찾는 전시마당을 찾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선생의 말을 되새김하게 됩니다.

유럽 왕족·귀족, 조선 사대부들을 보며

덕수궁미술관에 차려진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전: 합스부르크 왕가 컬렉션’(9월30일까지, 02-2022-0600)과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관 회화실에 차린 테마전 ‘조선시대 초상화 초본’전(10월28일까지, 02-2077-9326)을 최근 보았습니다. 차분한 진홍빛으로 젖은 덕수궁미술관의 전시장 내부와 낮은 조명이 깔린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전시장에는 500~200년 전 유럽 왕족·귀족, 조선 사대부들의 인생사와 그들 내면의 뒤안길을 드러내는 초상 그림들이 다수 내걸려 있습니다. 신성로마제국, 오스트리아 맹주로서 유럽 최고의 권력을 자랑했던 합스부르크의 호화로운 바로크 그림 컬렉션을 이어받은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의 소장 그림들 64점 가운데 주류를 차지합니다.

우리는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을 호령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그림을 주문받은 당대 화가들이 대권력자를 위한 고용인이자 그를 추어주는 예술적 시종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권위나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하는 그림도 있지만, 왕가의 주문이나 왕가의 허장성세에 가려 그들을 잘 보이게 해달라는 일방적 주문만 수용했을 것이란 예상은 빗나갑니다. 동생에게 밀려 실권이 없었던 황제 루돌프 2세(1552~1612)를 그린 당대 궁정화가 한스 폰 아헨의 초상 그림을 봅니다. 근친 결혼의 결과로 주걱턱이 도드라지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같은 푸근하면서도 투박한 용모를 지닌 그의 눈길에 우울함과 우수가 차 있습니다. 섬세한 목 칼라를 두른 황제의 복식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를 황제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황제의 측근인 작가는 과감하게 그의 심약한 내면을 응시하고 예술을 좋아한 황제도 이를 허용하는 아량이 있었습니다. 거지, 서민들과 어울려 온천에서 휴양을 즐기는 그의 모습을 담은 다른 그림도 눈길을 끕니다.

제한된 창작의 자유 속에서 상당수 화가들은 자신이 독창적인 예술의 생산자임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인간의 내면과 혼을 담아내는 고투의 흔적들이 당대의 상당수 초상화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심지어 아헨은 그의 아내, 아들을 서양 신화 속에 나오는 포도주의 신 바쿠스, 곡물의 신 케레스, 아모르(큐피드)로 재현한 를 그려 가족들의 자태를 즐기기까지 했습니다. 17세기 플랑드르 작가 얀 판딜런의 는 담쟁이 넝쿨 화환을 쓰고 포도주잔을 그린 신화 속 신이지만, 영락없이 당시 거리를 휘돌던 술 취한 중년 한량의 모습입니다. 포도주 회사의 상표로 씀직한 이 초상을 소장한 레오폴트 대공이 직접 작가의 화실에서 그림을 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당시 바로크시대 궁중 수집가들이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서민적 취향의 인간적 그림도 즐겼다는 징표가 되는 것이죠. 그런가 하면 산중에서 악마에게 시험당하는 예수의 모습보다 숲의 기괴한 모습을 더욱 크게 확대한 16세기 화가 얀 브뤼겔의 는 우리 상식을 뛰어넘는 괴팍한 구도를 보여줍니다. 다른 북구 작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 알트도르퍼의 등에서 우리는 당대 북구 유럽 사람들의 의식에 자리잡고 있던 엽기적으로 비치기도 하는, 심연 같은 정신세계의 늪을 발견하게 됩니다.

초상화 밑그림 그리는 데만 7~8단계

한 걸음 나아가 저 유명한 스페인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의 걸작 에 이르면, 이제 작가는 그림 속의 뚜렷한 주체로 우뚝 섭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의 아내로 간택된 5살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그렸지만, 자세히 보면 작가는 초상을 주문 작품이 아닌 회화 자체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테레사의 드레스 표면의 윤택한 질감, 광택 등을 자글거리는 현란한 붓질로 묘사해놓았는데, 가까이 보면 그것은 번들거리는 추상 무늬나 혼란스러운 얼룩에 불과합니다. 20세기 추상회화의 느낌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이 그림에서 그림을 그림 자체로 생각하는 근대적 인식의 변모를 실감하게 됐습니다. (16세기 페르디난트 2세 대공부터 괴짜 루돌프 2세, 레오폴드 1세, 카를 6세,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등 유럽의 근세 역사를 뒤흔든 합스부르크의 통치권자들을 컬렉션의 수호자로 소개하면서 그들의 방을 별도로 꾸려넣은 전시 구성은 블록버스터 전시치고는 신선해 보입니다.)

‘조선시대 초상화 초본’전은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의 컬렉션과는 또 다른 조선 전통 회화의 철저한 창작 과정을 보여줍니다. 형상만 빼닮은 것이 아니라 인물 내면의 기운까지 그리기 위한 이른바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이상에 도달하는 길은 까다롭기 그지없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를 보면 초상화 밑그림 초본을 그리는 데만 무려 7~8단계의 과정을 거쳐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밑그림용인 기름 먹은 종이를 만들고, 버드나무 숯으로 인물을 모사해 스케치하고, 초본 앞면은 물론 뒷면에도 색을 입히고 음영을 잡고, 정본을 그릴 비단에 백반 섞은 아교를 발라 화폭을 만들고…. 기름종이 초본 위에 비단지를 놓고 먹선을 따라 그리고 본격적인 초상화를 만드는 과정을 전시해놓았습니다. 엄청난 시간과 공력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림 그리는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해 그들은 세부적인 붓질 한획 한획을 투시하고 따졌습니다. 영·정조 때 명재상 채제공의 초상 초본은 앞뒤 색깔을 해놓은 것은 물론이고, 어깨선을 잡는 데 여러 번 스케치해 공을 들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18세기 요절화가 임희수(1733~50)가 집안 어른들을 틈날 때마다 파파라치처럼 쫓아가 그린 초본은 18살짜리 청소년의 데생이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추운 겨울날 집 근처에서 손을 호호 불고 그렸을 그의 데생을 보면 술 마시고 불콰하게 취해 떠들거나, 수염에 허옇게 서리가 내려앉은 채 집으로 찾아와 가문의 일을 상의하던 문중 어른들의 모습이 영원으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비엔나 컬렉션의 작가들도 ‘대충대충’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또한 인간 영혼을 초상에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대가로 내건 숱한 수련의 절차를 필수적으로 인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렘브란트가 사랑하는 자기 아들을 그린 (1665년경)을 봅니다. 미약하지만 온화한 빛 속에 입을 조금 벌리고 안락의자에서 책 읽기에 골몰한 아들 티투스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의 장기인 빛과 어둠의 섬세한 마술적 대비가 드러납니다. 정말 일상적 풍경일 뿐이지만, 미약하게 얼굴과 손, 책을 내쏘는 빛 속에 성스러운 한 인간의 내면, 그것을 응시하는 작가의 따뜻하고 성스러운 영혼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이런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는 주문을 외면하고, 자기만의 데생 습작을 거듭했고, 말년 쓰라린 생활고 속에 살았습니다. 고화질(HD) TV를 보는 듯한 발타자르 데너의 은 잔뜩 골이 난 노파 얼굴의 땀구멍과 세세한 피부를 사진보다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모델을 그린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그린 가상의 인물을 스케치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페르메이르 그림 같은 테르보르흐의 또한 차분하고 정적인 일상 풍경 속에서 지금 사는 이 순간을 중시하라는 성스러운 메시지가 녹아 흐릅니다.

당대의 치열한 상상력, 우리 작가들은?

서양의 사실적 회화와 구별해 전통 회화는 혼과 기백을 옮기는 전신사조의 필법이라고 말합니다. 비엔나 미술사 전시를 보면서 전신사조는 동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양의 명화 속에도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들 티투스의 자태에서 위대한 인간미를 뽑아낸 렘브란트의 비범한 일상 그림처럼 영혼의 울림을 그림에 옮기기 위한 작가의 사투가 얼룩처럼 남은 명작들은 두 전시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작가의 내면, 자신의 인생을 담보로 바로크와 조선 후기 진경문화의 세계를 헤쳐나갔던 화인들, 그들이 남긴 성심의 명작들을 보면서 단순한 재기와 그림 아이디어로, 시장이 미친 듯 예술혼을 갉아먹는 지금 미술판의 세태를 생각해보았습니다.

9월이 가기 전에 선생과 서울에서 두 전시를 같이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당대 작가들의 치열한 상상력이 어떻게 허무가 아닌 실체로 남을 수 있었는지, 진위 감별로 시끄러운 우리 문화판과 견주어보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를 쓴 프랑스 문호 프루스트가 말했던 것처럼 “살아 있는 상상력은 모든 것에 활기를 주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며, 인격까지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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